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거 읽고 와라.
http://www.ilbe.com/698464860 - 김치년들을 가지고 노는 방법
http://www.ilbe.com/717138577 - 투자썰 1
http://www.ilbe.com/763688281 - 투자썰 2
98년 임프 때 였다.김03 이 망쳐놓은 상황을 도요타 다이쥬가 이어받았던 딱 고 때 였지.구제금융 받을 때 말야.
임프가 98년 겨울이었을 거야.그리고 이듬해 99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노스트라다무스를 신봉하는 병신 무리들이 지구가 망하느니 어쨌느니 병림픽 하던 때다.근데 그 상황을 2012년에 또 하고 자빠졌드라.
99년에부동산이 떡실신 폭락했다. 거래 실종되니 호가가 점점 내려가고 정말 그게 그 가격일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싸졌다.
난 그 때 부동산을 사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을 했다. 더 이상 쌀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99년도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이 1984년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게 정확한 내 기억이다.
임프의 영향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이자제한법도 한시적으로 폐지되고, 어떻게든 경기를 살리겠다고 부동산 거래도 상당히 완화해줬던 기억이 난다. 양도세를 아예 감면 해주는 등 부동산을 이용한 경기부양을 하고자 했고 실제로 이는 상당한 효과를 봤다. 취득세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것도 감면해 줬던 것 같다.
그래서 난 99년에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으고 거기에 모자라는 돈을 대출을 1억을 땡겨 부동산을 샀다. (그 부동산이 아파트인지 상가인지 오피스텔인지 단독주택인지는 묻지 말자. 나 일밍아웃하고 싶지 않다.)
난 그 때 모 기업에 근무하고 있었다. 금융계였다. 그리고 사원복지가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기업의 중개로 상당한 저리로 전세자금이나 주택자금 대출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 난 솔직히 대출 받으려고 기업에 입사 했다.
당시 LTV 비율 (모르는 게이 있냐?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말하는 거다. 집값이 얼마면 그 최대한 얼마까지 대출이 가능한가) 이나 당시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가 지금 처럼 (주택가격 - 해당지역 방공제)X방개수/2X60% 도 아닌 100% 까지도 가능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집값이 1억이면 1억을 다 대출해 주던 시절이 바로 임프 시절이다.물론 난 부동산의 가격의 일부만 대출을 받았다.
그 땐 DTI (총소득 대비 상환 가능 비율) 따윈 따지지도 않았다.월급을 100% 다 상환에 꼴아박아도 말리는 놈이 없었단 이야기.
LTV 나 DTI 라는 말이 생긴게 노짱 시절이다. 그 전에는 그런거 있지도 않았고 돈만 갚는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왜? 어차피 근저당이야 걸어놓는 거고 돈 안갚으면 경매 부쳐버리면 되니까.
그리고 놀라지 마라. 난 1억 대출을 3년만에 다 갚았다. (그게 우스운 일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넌 고수다.)
지금 시절의 대부분의 하우스푸어들이 착각하는게 2억이고 3억이고 주택담보 대출을 땡겨서 아파트를 사면 몇 년간은 거치기간으로 이자만 갚다가 대출기간 만료되면 나중에 원금을 한 방에 갚는 방식으로 많이 하는데 대출기간 만료되면 원금을 한 방에 갚을 수 있을 거라 착각들을 한다.
한 마디로 꿈 깨라. 절대 원금을 한 방에 갚는 날은 안 온다. 지금도 없는 목돈이 그 때는 있을 거 같냐? 평생 대출 연장만 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자만 평생 무는 거다.
부동산이 낀 대출은 무조건 원금분할 상환을 해야 한다. 고통스러워도 매월 쪼개서 갚다 보면 언젠가는 볕들 날 온다. 그리고 원금이 까져 나갈 수록 이자도 줄어든다.
난 비슷한 신입사원들이 술처먹고 다니고 영업하며 법인카드로 룸사롱 가고 상무 전무들이랑 붙어 다니면서 룸사롱 갈 때 난 월급을 거의 100% 꼴아박아서 상환했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20대 중반에 연애도 안하고 3년을 차비 빼고 모조리 월급으로 대출금 상환하던 생활. 혼자였으니 부모님이 집에서 밥은 줬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껌사먹을 돈도 없었다.
다행히 좋은 조건의 저리 대출이었고 금융계 직장이라 급여가 좀 되는 편이라 그걸 갚을 수 있었지 임프 시절 웬만한 대기업도 내 기억에 초봉이 1800 이었던 거 같은데 그랬으면 3년안에 다 갚을 수 없었다.
솔직히 얼마나 오를 거다 라는 그런 감까진 없었다. 그냥, 지금이 저점이니 지금보다 조금만 더 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다이쥬 시대를 거쳐 (무슨 도쿠카와 막부 시대 이름 같다 씨바)노짱시대까지 서울의 부동산이 왜 그리 미친 듯이 올랐는지 난 솔직히 잘 모른다.그게 다이쥬 시대의 실정때문인지 노짱의 실정때문인지 원인은 모른다.
하나 확실한 건2006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부동산 장사는 끝났다는 것이다.강남에 30년 넘은 그 낡은 아파트들 (반포 압구정 신사 등등) 이 15억 20억 까지 올랐지만 난 그게 절대 100 억은 될 수 없다고 봤다. 집값 상승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무한히 오를 수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하우스푸어 곡소리 나기 시작하고 미분양사태 속출하고 노짱 운지하고 MB 들어서고 부동산 경기를 살려보려고 노력하지만 미적미적한 채로 지금에 이르고 있잖은가?이제 대한민국에서 대출껴서 집사는 건 병신이나 하는 짓이다.
난그 분위기를 감지하고 2006년 부동산이 상투를 쳤을 때 부동산을 팔았다.정확히 6배였다. 물론 양도세 중과세를 피하기 위한 보유기간 조건도 클리어 한 상태라서 산뜻하게 팔았다.
그 돈으로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인증해야 하냐? 귀찮다 2006년도 일이다.)
지금 하고 있는 내 사업자금과 화려한 파생상품 이력이 시작되는데 그건 담에 하겠다.
사업 말인데 난 솔직히 원단과 의류부자재와 모피 밖에 모른다.
모피때문에 북구와 러시아를 드나들었고 그래서 발트 3국도 아는 것이다. 러시아에선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최고급 밍크는 친칠라도 밍크도 아닌 바로 자연산 세이블 (흑담비) 다.
난 주식도 그렇지만 원자재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솔직히 철강이나 철광석 보석 같은 것도 해보고 싶었고
어쩌다 알게 된 게이가 카카오 장사를 하는데 아프리카에서 갖고와서 롯데제과에 넘기는 중개무역을 했었다.
나도 그런 거 해보고 싶지만 누가 그런 노우하우를 쉽게 알려주나. 그래서 결국 다른 분야는 손도 대보지 못한채 오늘 날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