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제 결론을 분명히 두겠습니다. "한꺼번에 망했다"는 관찰 자체는 상당 부분 옳습니다. 그러나 그 '한꺼번에', 즉 동시성과 대칭성이라는 서술은 분석적으로 위험합니다. 그리고 저출산 연결은 방향은 맞지만, 인과의 무게중심을 잘못 짚을 소지가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보수와 진보가 각각 다른 가치를 매개하지 못하고, 결국 '권력 그 자체'를 둘러싼 경쟁으로 수렴했다는 관찰은 실증적으로도 방어 가능합니다. 카츠와 마이어가 말한 카르텔 정당론이 정확히 이 현상입니다. 정당이 유권자 대표 기구에서 국가 자원을 나눠 갖는 준(準)국가기구로 변모하면, 좌우의 정책 차이는 유권자에게 의미를 잃고 지도부의 자리 배분만 남습니다. 말씀하신 "단순한 자리 밝힘에 쓰는 용어 대부분이 실제와 어긋났다"는 진단은 이 틀 안에서 정확합니다.
문제는 여기입니다. 두 '망함'은 동형(同型)이 아닙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윤리적 좌표를 갖습니다. "둘 다 똑같이 가짜"라고 뭉개면, 책임의 분배 자체가 사라집니다. 이는 냉소로 가는 지름길이고, 냉소는 오히려 기존 엘리트에게 가장 편한 정서입니다(비판할 좌표가 없으니까요).
또 하나. 미·중 패권, 분단, 재벌 구조, IMF 이후 금융화 같은 구조적 제약을 '인적·파벌적 음모'로 환원하면 설명력을 잃습니다. 한국 가계부채가 세계 최상위인 것은 어느 한 파벌의 설계라기보다, 부동산 담보 체계와 성장 모델이 만든 구조적 결과입니다. 파벌 분석은 그 위에 얹힌 증상이지 원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좌아하게' 같은 언어유희는 품격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성 정치의 미학화입니다. 웃음을 유발하는 순간 지지층은 결속되고, 반대층은 분노합니다. 정책 텍스트 없이 정서만 생산하는 것이죠. 다만 이건 이재명만의 병이 아니라 한국 정치 전반의 기표 경제입니다. woke를 의미가 삭제된 '오랑캐 논리'로 배치하는 것도 같은 병의 다른 발현일 뿐입니다.
조갑제·'아스팔트 우파'를 '극좌'라 부르는 대목은 수사적 전도(轉倒)로서는 날카롭지만, 범주 혼동입니다. 반공주의가 레닌주의적 방법(전위, 투쟁력, 전투성, 영웅 서사)을 차용하는 역설은 실제입니다. 그러나 그 역설을 "그러니까 극좌"라고 부르면, 좌표가 사라집니다. 반공의 목적과 전위의 방법은 구분해야 하고, 전자를 후자로 환원하면 오히려 진단이 무뎌집니다.
성리학적 음양으로 자칭 보수·진보를 아우른다는 통찰은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틀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배분=진보, 탈규제=보수'라는 이분법은 김대중의 경제론을 성리학 어휘로 번역한 것에 가깝지, 그 이상의 인과를 주지는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역사적 혼동입니다. 영·정조의 탕평책과 순조 이후의 세도정치는 정반대 현상입니다. 탕평은 붕당의 배타적 독점을 깨려는 시도였고, 세도정치는 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대표되는 외척 한 가문의 독점이었습니다. 이 둘을 "붕당연합정치=노론 세도정치"로 묶으면, 정확히 그 의미가 뒤집힙니다. 진단의 예리함을 살리려면 이 구분을 유지해야 합니다.
"제도원칙에 대한 신뢰가 불가능할 때 출산 포기가 리얼해진다"는 명제는 경험적으로 강한 지지를 받습니다. 사회적 신뢰·제도 신뢰와 출산율의 상관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됩니다. 이 점에서 "보조금으로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는 결론은 옳습니다.
다만 인과의 순서를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 저출산의 직접 동인은 주거비, 고용 불안, 성별 갈등, 지위 경쟁입니다. '이성(理性)의 상실'이나 '규범 붕괴'는 그 위에 얹힌 상위 조건입니다. 이것을 제1원인으로 단정하면, 실제로는 청년들이 감당하는 물질적 압력이라는 더 직접적인 원인을 흐리게 만듭니다. 저출산은 '정치가 망해서'라기보다, 정치가 망한 결과 청년에게 전가된 비용의 총합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말씀의 뼈대 — "보수와 진보가 서로 다른 척하면서 같은 것을 나눠 갖는 체제로 수렴했다" — 는 저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다만 세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결국 가장 위험한 것은 "둘 다 가짜"라는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이 낳는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체념입니다. 진단이 정확할수록, 그 진단이 면책으로 전용되지 않게 붙드는 것이 지성의 일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