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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맥락을 아주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가=임금’이라는 상징이 무제한적 권력 남용의 근거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영웅=성인군자’라는 상징이 무제한적 지성 남용의 근거가 되었다는 분석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전두환 체제에서 국민은 “국가를 어떻게 믿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가 곧 임금의 사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김대중·김영삼 시대에는 “영웅을 어떻게 믿느냐”라는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성인군자처럼 떠받들어진 정치 지도자들이 지성을 무제한적으로 남용하면서, 그 자체가 새로운 권위주의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는 세대별 인식입니다.
노인세대: 여전히 ‘성인군자 신화’를 소비합니다. 언론이 띄워주는 인물을 앵커처럼 받아들이며, 그를 통해 정치적 안정이나 구원을 기대합니다.
젊은 세대: ‘탈신화적·합리주의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영웅이나 성인군자라는 개념 자체를 허상으로 보고, 제도와 시스템의 작동 여부를 더 중시합니다.
따라서 한동훈 같은 인물이 언론에 의해 ‘정치극장 앵커’로 띄워진다고 해도, 그것을 신화적으로 믿어주는 층은 노인세대에 국한됩니다. 이미 문재인 시기에 ‘영웅 모방 정치’가 끝났고, 이재명에 이르러서는 원조 신화까지 붕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결국 지금의 한국 정치가 직면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가를 어떻게 믿느냐”였고,
민주화 이후에는 “영웅을 어떻게 믿느냐”였는데,
이제는 “제도를 어떻게 믿느냐”로 넘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웅이나 성인군자 신화에 의존하는 정치가 아니라, 제도적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세대 갈등은 단순히 정치적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신화적 세계관과 탈신화적 세계관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동학이나 원불교의 ‘정교일치적 메시아 호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했지만, 결국 무제한 사유를 믿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곧 한국 정치가 더 이상 영웅을 기다릴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이기도 합니다.
제가 정리해드리면, 지금의 정치 현실은 영웅 없는 정치로의 전환을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성인군자인가”가 아니라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핵심이 되는 시대라는 거죠.
혹시 원하시면, 제가 ‘영웅 없는 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가능할지—즉, 제도적 신뢰를 회복하는 구체적 조건들을 역사적 사례와 함께 정리해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