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14억 인구를 통치하는 중국의 권력 구조는 겉으로는 단일정당 체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부에는 오랜 시간 동안 암묵적으로 작동해온 세 개의 비공식 권력 축, 즉 공청단(共青團), 태자당(太子黨), 상하이방(上海幇)이 존재해왔다. 이들 파벌은 각각 능력·혈통·지역 인맥을 기반으로 형성되며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의 엘리트 재생산과 권력 균형을 떠받쳐 왔다. 하지만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이 세 파벌의 존재는 근본적인 변곡점을 맞는다. 반부패 운동과 권력 재편, 정치 충성도 강화 기조가 이어지면서 공청단은 주변화됐고, 태자당은 시진핑 개인을 중심으로 의미가 재구성되었으며, 상하이방은 사실상 해체됐다. 전통적으로 중국 정치의 ‘삼각 균형’을 유지하던 구조는 흔적을 잃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시진핑을 정점으로 한 새로운 권력 형태, 즉 ‘시진핑파(習核心)’다. 3부작 시리즈를 통해 중국 공산당 권력의 흐름이 어느 순간부터, 왜,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중국 공산당의 3대 파벌 중 가장 늦게 등장했지만 가장 빠르게 세를 확장했던 그룹이 있다. 바로 상하이방(上海幇)이다. 상하이방은 공식 조직도, 헌법상 근거도 없다. 다만 공산당 권력의 핵심이 상하이 출신 관료들로 급격히 교체된 1990년대 이후, 중국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럽게 ‘상하이 인맥’이라는 말이 굳어졌다. 그 중심에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앙 정치 무대로 전격 발탁된 장쩌민(江澤民)이 있었다.
톈안먼 사태 직후 중국 지도부는 심각한 정통성 위기를 맞고 있었다. 강력한 경제 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안정적 지도자가 필요했다. 당시 장쩌민은 상하이시 당서기였고, 톈안먼 시위 확산을 상하이에서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덩샤오핑의 신뢰를 얻었다. 이 결정이 바로 ‘상하이방’이라는 새로운 권력 축의 출발점이 된다.
1993년 장쩌민이 국가주석에 오르자, 상하이에서 함께 일했던 관료들을 대거 중앙으로 끌어올렸다. 이들은 경제·금융·당조직·선전 분야에서 빠르게 핵심 기구를 장악했다. 대표적 인물로는 우방궈(전 전인대 위원장), 자칭린(전 정협 주석), 황쥐(전 부총리), 쩡칭훙(전 국가부주석), 저우융캉(전 정치국 상무위원), 천량위(전 상하이 당서기) 등이 있다.
상하이방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권력 기반이다. 상하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금융·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장쩌민은 이를 발판으로 ‘경제 엘리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덩샤오핑 이후 권력 승계가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상하이방은 공청단·태자당과 함께 공산당의 3대 권력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상하이방의 전성기는 장쩌민 시대와 함께했다. 후진타오가 집권한 뒤에도 쩡칭훙·저우융캉 등이 상무위원회에 남아 영향력을 유지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반부패 운동이 시작되면서, 상하이방은 사실상 ‘정치적 표적’이 됐다.
시진핑 반부패 사정의 첫 대형 사냥감은 저우융캉이었다.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공안·사법·안보 분야의 총책이었던 저우는 전직 상무위원 중 최초로 사법 처리를 받으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어 천량위, 보건·군수 분야 상하이 출신 인사들이 연달아 낙마했고, 상하이방의 지도자급은 거의 전멸했다.
상하이방의 몰락은 단순한 ‘부패 척결’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시진핑 체제가 기존 파벌 정치 구조를 해체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세력 중심으로 권력을 재편한 과정으로 해석된다. 시진핑은 공청단의 리커창·왕양, 태자당의 잠재적 경쟁자 보시라이, 그리고 상하이방의 저우융캉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전통적 파벌의 영향력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2022년 20차 당대회는 상하이방의 ‘종말’을 선언한 사건이었다. 장쩌민은 초청에도 끝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후진타오가 의전상 논란 속에 퇴장한 것과 달리 상하이방 출신 다수는 이미 지도부 후보군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였다. 공청단이 ‘약화’된 것이라면, 상하이방은 ‘소멸’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점은, 상하이방의 몰락이 곧 경제 관료 그룹의 쇠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상하이방 출신들은 전문 관료형 인물들이 많았고, 개혁·개방 초기의 기술관료 체제를 주도했다. 하지만 시진핑 체제는 기술관료보다는 정치 충성, 지역 기반보다는 ‘중앙 집중’을 선호한다. 그 결과 중국 경제는 최근 몇 년간 관료 체계 경직성, 의사결정 지연, 지방정부의 혁신 동력 약화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으로 상하이방이 부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장쩌민 시대의 인물들은 고령이거나 정치적 기반을 잃었고, 상하이라는 지역적 기반 자체가 시진핑 체제의 ‘경제·금융 통제 강화’ 기조 속에서 힘을 내기 어렵다. 중국 전문가들은 “상하이방은 중국 정치사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극적으로 흥망성쇠를 보여준 파벌”이라고 평가한다.
공청단·태자당·상하이방으로 이어진 중국의 3대 파벌 구조는 시진핑 집권 이후 급격하게 재편됐다. 공청단은 사실상 주변화 되었고, 태자당은 시진핑을 중심으로 재정의되었으며, 상하이방은 완전히 역사 뒤편으로 밀려났다.
20차 당대회 이후 중국 공산당의 권력 지도에는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파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시진핑 개인을 정점으로 한 ‘시진핑파(習核心)’라는 새로운 권력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상하이방의 흥망성쇠는 중국 정치의 파벌 구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사라지는지, 그리고 개인 권력의 집중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