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25일까지의 베를린 공방전 진행상황으로
파란색 선이 독일군의 진격로 및 방어선이며
붉은색 선이 소련군의 진격로이다.
독일군은 이미 3월경부터 오랜 시간동안 베를린 시내를 철저히 요새화 하고 노인이든 학생이든 징집해 방어태세를 확실히 대비했다.
베를린 동남쪽에 보병사단으로 구성된 9군과 4기갑군의 잔여병력이 퇴각하려다 그대로 고립된것이 보인다.
4월 26일 교전 10일차에 포위된 베를린이다
지도 정 가운데의 검은색 사각형이 베를린 방어군 사령부인 퓌러붕커(Führer bunker)이며
바로 왼쪽의 커다란 수목림은 베를린 동물원 겸 공원으로 그 유명한 동물원대공포탑이 배치되어있던 '티어가르텐'이다.
베를린 함락 직전이던 4월 30일~5월 2일의 지도.
총통은 4월 30일 벙커에서 자살한다...
가운데의 긴 도로모양 파란색 선은 독일군이 인위적으로 만든 대전차 수로이다.
놀랍게도 이곳을 방어하던 부대는 다름아닌 11SS 의용군사단 비킹으로
오른쪽 아랫부분의 브란덴부르크 문을 거쳐 조금 밑으로 내려가 거의 지도 오른쪽 아래의 끝 꼭짓점 부분이 베를린 방어사령부이던 퓌러붕커다.
11SS 사단 휘하에는 그나마 SS503 중전차대대 소속의 제국의사당(라이히스탁) 정면에 배치된 쾨니히스티거 2대와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배치된 훈련용 구형 티거 한대가 있었다.
사실 6대의 쾨니히스티거가 베를린 공방전 당시 활약했지만
4월 30일에는 2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제국의사당 앞의 쾨니히스티거는 4월 30일 하루동안에만 시가전의 이점을 활용해 방어하는 입장에서 골목을 돌아오는 소련군 전차들을 일방적으로 포격할수 있었던 이점덕분에
30대가 넘는 적 전차를 격파할수 있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앞에서 찍힌 사진의 구형 티거는 해치의 관측창 부분이 초기형이며
반대로 차체는 중기형이 결합된 형태인데
박살난 전차에서 멀쩡한 부분을 뜯어 이어붙이고 고친 재생차량이다.
또한 지도의 주 무대가 바로 위에서 말한 동물원 대공포탑으로 요새화된 티어가르텐이다..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라이히스탁으로 향하는 유효 진격로중 하나인 티어가르텐으로 투입되는 소련군들은 은엄폐가 될리 없었고
(사진의 왼쪽에 흐르는 강은 슈프레 강이고 ,정 중앙에 솟은 탑이 베를린전승기념탑이이며 탑에서 큰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브란덴부르크문 ,거기서 아래로 조금만 가면 퓌러붕커
사진의 구도상 왼쪽 윗부분의 슈프레강이 n자로 꺾이는 부분 안쪽에 있는 크롤 오페라하우스와 제국의사당도 보인다.)
독일군의 티거와 대공포탑에 실컷 고전한다....
4월 30일 대공포탑이 항복하자 라이히스탁은 그대로 소련군의 표적이 되었고 SS의장대의 피터지는 저항으로 인한 12시간의 고전끝에 5월 1일 점령되지만
라이히스탁이 점령되어 옥상에 소련 국기가 내걸린 직후 지도 왼쪽부분의 크롤 오페라 하우스에서 곧바로 11SS사단이 쾨니히스티거를 필두로 반격해 일시적으로 제국의사당을 재점령했으나 곧 당일오후 7시경 밀려났다.
(사실 방화사건 이후로 나치당의 주요 회의는 대부분 크롤 오페라 하우스에서 개최된지라 ,사실상의 제국의사당은 크롤 오페라하우스였다.)
5월 2일 총통의 뒤를 이어 베를린 방어군 사령관직을 이어받은 '바이틀링 상급대장'은 베를린에 배치된 독일군 전 병력에게 적대행위를 중지할것을 고지하지만
5월 6일까지 시내 곳곳에서 독일군 잔존병력들과 소련군간의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1분으로 보는 베를린 공방전
소련군 포위망을 뚫고 동남쪽에서 서쪽으로 기어코 철수하는 부대가 바로 '테오도어 부세 대장'의 독일 국방군 9군단과 4기갑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