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집으로 똘똘 뭉친 노해(老害) 세이콘이 결국 짤렸다. 한화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한화팬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포스트세이콘 한화를 보다보니 한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장문의 글을 쓰기로 했다.
야구에서 승리하는 방법에는 두가지가 있다. 점수를 많이 벌어들이는 팀과 점수를 내주지 않는 팀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후자가 더 승률이 좋다. 세이콘도 점수를 내주지 않는 팀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런데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팀은 한번쯤 통념을 뒤집어보는 것도 좋다.
점수를 많이 벌어들이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짠돌이 구단과 명장, 그리고 명장의 제자
킨테츠 버팔로즈라는 구단에 대해 알아보자. 1949년 오사카에서 '킨키일본철도(近畿日本鉄道, 줄여서 近鉄, 즉 킨테츠)'라는 민영철도기업이 스폰서가 되어 만든 '킨테츠 펄즈(Kintetsu Pearls)'가 그 시작이다.
본래 킨테츠는 럭비팀을 후원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사업을 면밀히 검토한 후, "럭비보다 야구가 더 수익성이 좋다드라"는 결론이 나서 허겁지겁 야구단으로 수정한 것이 시작이다. 그러니 프론트에 야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하긴 킨테츠에 미국 문화에 밝은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섹스토이를 의미하는 Pearl을 팀 이름으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킨테츠는 졸라 약했다.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모기업이 철도회사이기도 했기에) 성적이 바닥 정도가 아니라 아예 땅밑으로 간다고 '지하철 구단'이라는 조롱을 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오사카 팬들을 경쟁 구단인 오사카 타이거즈(지금의 한신)에 빼앗겼다.
이러던 상황이었으니 킨테츠 팬들은 자연히 독종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쿄)에게 빌붙지 않고 끝가지 도요토미 가문(오사카)에 충성한 사람들처럼 그들은 끝까지 킨테츠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그러다가 1958년, 이대로 지하철 구단으로 살 수 없다고 각성한 킨테츠는 팀 이름을 펄즈에서 버팔로즈로 바꾸고 자신들을 맹우(猛牛)군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독을 새로 모셔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세련된 야구'를 경험한 치바 시게루였다.
비록 원수 도쿠가와 가문의 땅 도쿄를 연고지로 삼는 요미우리 출신이지만 치바 시게루는 에히메현 출신이었다. 게다가 (조원진 지지자들도 깨달았겠지만) 신의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승리하지 못한다. 킨테츠 팬들도 오사카의 자존심 같은 거 찾기 전에 일단 승리를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Shigeru Chiba
치바 시게루는 킨테츠를 개혁한 인물로 불린다. 도쿄에서 요미우리를 경험한 그는 킨테츠가 너무 짠돌이 기업라는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야구는 선수가 재산이다. 도쿄에서는 선수들을 이따위로 취급하지 않는데!"하고 모기업에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의 킨테츠는 선수들에게 "연봉 주었으니 그만 아님?"이라는 마인드로 호텔이나 이동 수단은 죄다 싸구려로 퉁치고 있었다. 오사카 상인들은 짠돌이들로 유명하지만 치바 시게루의 일갈은 확실히 가슴에 와닿는 것이었다. "전용 버스도 아니고 열차 삼등석 좁은 좌석에서 부대끼며 원정을 간 선수들이 무슨 수로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치바 시게루는 앞으로 외국인 용병 제도가 도입될 것이고 더더욱 구단에의 투자가 필수조건임을 설득하여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했다.
하지만 오사카 짠돌이들의 지갑을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야구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비판인 "어? 이만큼 투자했는데 왜 성적이 안 나옴?"하는 질타는 오사카에서는 더욱 심했다. 게다가 정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가 배출되면 "거 보셈. 야구 잘하는 건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정신력임. 성적이 이 모양인 것은 선수들 정신력이 썩어빠졌기 때문임"하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타팀에 비해 투자가 적다는 근본적인 악조건 속에서 킨테츠를 거쳐간 감독들은 모두 고생만 하다가 사라져갔다.
그러던 지하철구단이 드디어 우승을 달성했다. 1979년의 일이었다. 1949년에 창단된 팀이 1979년에 첫 우승을 했으니 얼마나 약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적같은 일을 이룩한 그 감독이 바로 니시모토 유키오이다.
명장 니시모토에 대해서는 나무위키에서 설명해놓은 항목이 있다.
https://namu.wiki/w/%EB%8B%88%EC%8B%9C%EB%AA%A8%ED%86%A0%20%EC%9C%A0%ED%82%A4%EC%98%A4
그런데 역시 좆루저집단 나무위키답게 선수들에게서 받은 무한한 신뢰로 자금난을 극복한 명장 니시모토 감독을 무슨 콩라인이니 뭐니 상당히 비웃는 태도로 묘사하고 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정신승리가 체질화된 나무루저들답다.
니시모토 감독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일본군의 비효율적인 운영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는 선수들 한명 한명의 개성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플레이를 고안하고 감독 개인의 카리스마로 격려를 하는 아주 혁신적인 리더쉽으로 팀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니시모토에게 발탁된 주전 포수가 바로 나중에 설명하게 될 나시다 마사타카이다.
니시모토 감독은 일본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모든 선수들에게 큰 신뢰를 받았다.
신바람야구를 위해서는 선수들과의 거리가 짧아야 한다.
'죽여버려 타선'의 탄생
니시모토 감독의 야구는 '신바람야구'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킨테츠의 경우는 그 명칭이 살벌했다. 공포의 '이테마에 타선'이라 불리웠는데 '이테마에'는 오사카 방언으로 '죽여버려'라는 의미이다. 타자들의 공격력을 극대화한 타선으로 버팔로즈 유니폼을 입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킨테츠 팬들이 "이~테마에~ 이~테마에~"하고 외치곤 했었다. 야구 응원단이 한 목소리로 "죽~여버려~ 죽~여버려~"하고 응원한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무서운 일이다. 그 정도로 킨테츠 팬들은 당시 가진 건 부랄 두쪽과 해태 타이거즈 밖에 없다던 80년대 시절의 전라도인들처럼 야구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아니, 설마 그래도 전라도인들이라 해도 해태 선수가 등장하는데 "담~가부러~ 담~가부러~" 이러진 않았을 것이다.
1979년 처음 선보인 죽여버려 타선은 주전 9명이 모두 두자릿수 홈런을 치고 모두 2할8푼 이상의 타율을 올린 경이적인 공격력으로 우승을 달성했다. 비싼 투수를 사올 수 없던 킨테츠로서는 그렇게 타선의 공격력을 극대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니시모토 감독이 나무위키 따위에게 콩라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던 이유도 투수력이 다른 구단에 비해 워낙 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30년만의 우승에 기분이 좋아진 킨테츠는 돈을 후하게 풀었고 79년 죽여버려 타선의 주력 선수들과 재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80년에도 살벌한 빠따는 건재했고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포수 나시다 또한 2할9푼의 타율과 15홈런을 때려내며 죽여버려 타선에 힘을 보탰다. 1980년대의 죽여버려 타선은 팀 타율, 팀 타점, 팀 홈런수 모두 퍼시픽리그 1위를 기록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지만 킨테츠는 오로지 빠따만으로 그걸 극복한 것이다.
한편 세월은 흘러 죽여버려 타선의 영웅들도 팀을 떠났고 명장 니시모토도 떠났는데... 또 한명의 불세출의 명감독이 킨테츠에 부임하게 된다. 이치로의 은사로 널리 알려진 오우기 아키라 감독이다. 그리고 오우기 감독도 니시모토처럼 선수 개개인의 동기부여를 통해 타격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1989년, 킨테츠는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이것이 제2차 죽여버려 타선이다. 2차 죽여버려 타선은 공포의 선풍기 랄프 브라이언트(https://www.ilbe.com/8850596374)를 중심으로 도루는 버리고(도루는 리그 최하위) 오로지 장타력만으로 승부를 내는 엽기적인 작전으로 우승했다.
킨테츠 시절의 오우기 감독은 극단적으로 공격력을 주문하는 야구를 했기 때문에 우승 여부에 관계없이 오우기 감독 휘하의 타선이 전부 죽여버려 타선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1989년 우승을 맛본 일로 또 지갑 끈이 조여졌는지 그때부터 다시 킨테츠의 짠돌이 근성이 발휘되었다. 죽여버려 타선의 붙박이 3루수로서 활약했던 카네무라 요시아키(한국계로서 한국이름은 김의명)는 자신의 킨테츠 시절을 회상하면서 "프론트가 와서 하는 말이, 우승하면 모든 선수들의 연봉을 인상해야 하니까 우승은 하지 말고 준우승을 해달라고 하더군요"는 엽기적인 사실을 전했다.
2차 죽여버려 타선의 중심이었던 김의명과 랄프 브라이언트. 킨테츠 버팔로즈 팬미팅에 등장. 야구에서 은퇴한 브라이언트는 현재 인터넷 보안업체에서 일하고 있으며 킨테츠 팬들과의 팬미팅을 위해 자주 일본을 방문한다. 오사카 지역에서 브라이언트의 인기는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나시다의 제3차 죽여버려 타선
그렇게 우승을 하지 못한 채로 90년대를 쓸쓸히 보내다가... (공교롭게도 이 시절은 한신 타이거즈의 암흑기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오사카인들에게는 괴로운 시기였다) 2000년에 새 감독 나시다를 맞아들이게 되었다. 나시다는 포수 출신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니시모토와 오우기 밑에서 야구를 배운 사람이다. 투수놀음보다 빠따질을 선호하는 지도자였다.
현역 시절의 나시다
나시다는 킨테츠 버팔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며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위대한 포수였다. 당대 최강의 강견 포수였지만 곤약 타법으로 알려진 흐느적거리며 치는 타격폼으로 더 유명했다. 이런 괴상한 타격이 허용되던 것도 선수의 자율을 중시하는 니시모토의 스타일 덕분이었다.
전성기 때에는 3할 타율, 두자릿수 홈런을 칠 수 있는 안방마님으로 팀을 지탱했다. 은퇴 후에도 킨테츠의 코치로서 들소 유니폼을 입었고 2000년에는 킨테츠 감독에 취임했다. 그리고 2001년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2004년 킨테츠가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하여 오릭스 버팔로즈가 될 때까지 감독을 맡았다.
이것이 곤약타법
니시모토와 오우기 밑에서 제대로 리더쉽을 배운 나시다는 죽여버려 타선을 재건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특유의 명랑함과 에너지로 선수들을 격발시켰다. 그러나 패배에 찌든 선수들은 감독의 신바람야구에 잘 따라오지 못했고 2000년에는 지하철구단답게 꼴찌를 했다.
그러나 2001년에는 감독의 뜻이 선수들에게 전달되기 시작되었고 (2000년과 같은 선수들로 구성된 타선인데도) 타격력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그 최하위 방어율을 기록한 투수진으로 킨테츠는 우승을 이룩한다. 제3차 죽여버려 타선의 탄생이었다. 리그 최하위 방어율을 기록하고 우승한 것은 전세계 야구사에서 2001년의 킨테츠가 유일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불방망이였다. 3번타자 터피 로즈와 4번타자 나카무라 노리히로 단 두명이서 101개 홈런을 때려냈다. 팀 타율 1위, 팀 홈런 1위, 그리고 시즌동안 총 770점을 벌어들인 불방망이로 "투수진이 10점을 내주어도 빠따질로 11점을 벌어들인다"는 야구를 실천했다.
빠던의 달인 나카무리 노리히로
일본야구계 최강용병에 늘 거론되는 터피 로즈.
지하철구단을 이끌고 우승을 달성한 나시다
죽여버려 타선의 인기를 반영하는 버블헤드 인형. 왼쪽부터 터피 로즈, 나카무라, 나시다 감독, 스즈키 케이시 투수.
더욱 엽기적인 사실은 2차 죽여버려 타선에 비해 도루 수가 더 줄어들었다는 점. 클린업을 맡은 타자들이 "주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사인을 너무 많이 보내시면 저희는 타격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고 말한 것을 계기로 나시다 감독은 기동력도 다 내버리고 오로지 장타력으로만 승부를 걸었다. 1번타자가 16홈런을 기록했는데 도루는 고작 5개이다. 이게 나시다 감독의 진짜 신뢰야구였다.
선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말하기는 쉬우나 실제로 선수를 믿고 맡기는 일은 어렵다. 세이콘은 그것을 해내지 못했고 나시다는 해냈다.
나시다 감독과 2009년 니혼햄
하지만 2001년의 분발은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발하는 빛에 불과했다. 지속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는 21세기 야구와 짠돌이 기업 킨테츠는 맞지 않았다. 3차 죽여버려 타선을 지탱하던 터피 로즈와 나카무라 노리히로는 킨테츠의 짠돌이짓에 빡쳐서 결국 팀을 떠났다. (로즈는 요미우리로 이적했고 나카무라는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그리고 버팔로즈의 계보를 잇는 나시다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킨테츠 버팔로즈라는 팀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시다는 2008년 니혼햄 파이터즈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의 니혼햄은 다르빗슈 유, 타케다 마사루를 비롯한 두터운 투수진을 갖고 있었으나 전형적인 투고타저팀으로 우승을 놓치고 있었다.
나시다는 2008년에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선수들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2009년을 맞아 선수들을 'Nashida Men'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보강은 요미우리에서 (불륜을 저질러 물의를 빚었던) 니오카 토모히로를 영입하는 게 전부였다.
2009년 니혼햄이 보유한 선수들 면면을 보자면,
이토이 요시오 (https://www.ilbe.com/9662166592)
이나바 아츠노리
코야노 에이이치
소총부대였던 니혼햄에 홈런을 공급했던 터멜 슬래지 (흑인과 한국인 혼혈이다)
등등, 투수진 뿐만 아니라 타율과 장타 모두 기대할 수 있는 인재들이 있었다. (늘 말하지만 킨테츠가 상식을 초월하는 짠돌이였던 거다)
그리고 그다지 팀에 큰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롯데 히메네스도 이때 니혼햄 선수였다. (https://www.ilbe.com/9596138460)
넉넉한 투수 자원이 없어서 하여간 선수들의 빠따질을 독려해야 했던 킨테츠와 달리 공수, 투타 균형이 잘 잡힌 팀을 맡아 나시다는 자신의 친화력과 리더쉽으로 과감히 공격하는 야구를 주문했고 결국 나시다는 킨테츠 시절처럼 감독 취임 2년째에 또 우승을 달성했다.
이때 나시다 감독은 '포텐셜은 있지만 실력은 미지수'라던 이토이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남겼다.
"사람들은 이토이가 둔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토이는 오히려 매우 섬세하다. 주변사람의 도움에 따라 활약할 수도 있고 부진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토이는 자신과 죽이 잘 맞는 한신 타이거즈 카네모토 감독을 만나 물만난 고기처럼 활약하고 있다.
나시다 감독의 선수를 파악하는 안목은 세이콘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2017년 라쿠텐
현재 라쿠텐을 총괄하는 호시노 센이치 회장은 2015년 오프 때, "라쿠텐에는 나시다 같이 적극적인 야구를 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는 나시다 감독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고 선언했고 나시다를 모셔왔다.
나시다의 스타일이 투수진을 길러 수비하는 야구가 아니라 일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바람 나는 공격진을 육성한다는 것을 잘 아는 호시노는 2016년 보강은 야수 위주로 했다. 야구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뛰는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기레기들의 특성 그대로, 센다이 언론들은 '야구는 투수놀음인데 왜 야수들을 데려옴?'하고 나시다를 엄청 공격해댔지만 호시노 회장이 잘 막아주었다.
그리고 2016년 오프 때, 호시노 회장은 "이제는 투수를 보강할 차례다"는 말과 함께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FA자격을 얻은 에이스 키시 타카유키를 영입해왔다. 사실 키시는 세이부에 남고 싶어했지만 호시노 회장은 마치 과거 카네모토를 영입했을 때처럼 키시를 찾아다니며 엄청나게 설득을 했다. 호시노 회장은 키시가 센다이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제 고향 사람들에게 자네의 늠름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나"하며 향토애를 들어 설득했다고 한다. 키시가 라쿠텐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하자 호시노 회장은 "내가 나시다 감독에게 큰 선물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하며 기뻐했다.
FA보강의 성공 사례. 키시 타카유키.
라쿠텐에는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실력파 투수 노리모토 타카히로가 있다. 국대팀에 빠지지 않는 인재이며 다나카 마사히로가 떠난 공백을 훌륭히 메꾸는 에이스. 하지만 역시 한 명의 힘만으로 지탱할 수 없는 게 야구이다.
키시의 영입과 함께 라쿠텐은 토종 투수들로 원투펀치를 가진 강력한 마운드진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시다 감독은 용병들도 타자 위주로 보강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01년의 죽여버려 타선까지는 아니지만 2017년 라쿠텐은 야구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공격적인 타선을 구축하고 있다.
1번타자 모기 에이고로. 키는 170cm지만 장타력을 갖춘 1번타자. 현재까지 홈런 8개, 24타점. 모기처럼 작아서 모기가 아니라 그냥 이름이 모기.
2번타자 칼로스 페게로. 192cm의 큰 체격을 지닌 거포. 홈런 8개, 25타점 기록 중. 도미니카 출신인데 라틴사람 특유의 명랑함은 없고 매우 과묵하다고 한다.
3번타자 제라스 윌러. 나시다 감독과 죽이 잘 맞는 흑형. 2016년부터 라쿠텐에서 활약 중. 현재 5홈런, 14타점 기록
4번타자 야페트 아마도르. 멕시칸리그에서 온 135kg의 거한. 현재 4홈런, 15타점 기록.
멕시코시티 레드데빌스에서 카림 가르시아와 팀메이트였다. (https://www.ilbe.com/9591039171)
5번타자 긴지. 홈런은 현재까지 2개이지만 14타점 기록 중.
6번타자 시마우치 히로아키. 5홈런, 14타점 기록 중.
모든 타순의 타자들이 고르게 타점을 생산해내고 있다. 즉, 역할분담을 나누는 게 아니라 그냥 열심히 치는 것이다.
특히 모기와 페게로의 '공포의 테이블세터' 콤비는 퍼시픽리그를 뒤흔들고 있다. "1,2번은 출루에 전념하고 타점을 벌어들이는 건 3,4,5번의 역할"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근본부터 바꿔버리는 것이다. 나시다 감독은 "개막 직전에 키시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투수전을 벌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타격 컨디션이 좋은 순서대로 1번부터 놓았다. 그랬더니 잘 먹힌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신나게 빠따질을 하는 순서대로 배치시킨 '라쿠텐판 죽여버려 타선'에는 노무상도 "이런 타선이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상상도 못하던 것이다"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센다이는 야구 인기가 비교적 낮은 지역이다. 짠돌이 구단 킨테츠에서 야구를 했던 나시다 감독은 관객 동원에 매우 민감하다. 관객들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하여간 득점을 많이 내는 야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감독의 구상을 인정해준 호시노 회장, 그리고 호시노 회장의 결정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라쿠텐 구단의 자세 등이 합쳐져 지금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손정의 회장의 통큰 투자로 투타 모두 강한 소프트뱅크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다. 라쿠텐판 죽여버려 타선은 투수진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한 타선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현재 다승순위에서 10위 안에 들어가는 투수를 4명이나 보유하고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아낸다는 일의 중요성
나시다 감독이 항상 취임 2년째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그의 리더쉽과 무관하지 않다. 죽여버려 타선을 고안해낸 두 명장 니시모토 유키오와 오우기 아키라 밑에서 야구를 배운 그는 자유방임주의가 몸에 배어있다. 나시다가 취임 1년째에 하는 것은 선수들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접근하면 그 선수가 자신의 뜻에 따라 신바람야구를 할 것인가 연구한다. 별다른 보강 없이도 2년째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선수들과 새 감독의 거리가 가까워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죽여버려 타선에 대한 놀라운 전설이 있다. 타격코치들은 "직구를 노리고 있다가 변화구가 (눈에) 보인다 싶으면 그것도 쳐라" 이것만 가르쳤다고 한다. 너무 많은 지시를 내리면 선수들이 개인 기록에 집착하고 긴장할까봐 일부러 그렇게 가르쳤다는 설이 있고, 또 상대 투수를 연구하는 것은 코치가 아니라 선수 개개인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죽여버려 타선은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직구를 노릴지, 뚝 떨어지는 공을 노릴지 각자 판단했고, 번트나 히트앤런 같은 복잡한 전략은 (그런 전략을 가르쳐서 이길 정도로 선수층이 두터운 팀도 아니라서) 생략했다. "너희들은 일단 힘껏 쳐라, 나머지 작전은 감독인 내가 생각할게"가 니시모토와 오우기의 공통점이었다.
죽여버려 타선은 자유방임형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선수들에게만 전부 맡겨놓는 것도 아니었다. 감독은 성적의 변화를 면밀하게 체크했고 죽여버려 타선의 기세를 떨어뜨릴 정도로 부진하다 싶으면 타선에서 빼버렸다. 특히 오우기 아키라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늘 체크하고 타선을 수시로 바꾸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시다는 오우기 보다는 인내심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자기가 판단한 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기용하는 점은 오우기와 같다. 특히 죽여버려 타선은 주전뿐만 아니라 대타로 나오는 선수들도 장타력이 출중했다. 그만큼 감독의 역할을 '중간 체크'에만 한정시켰다.
물론 이것은 나시다의 성격이 죽여버려 타선의 자유방임주의에 맞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완벽주의자인 오치아이 히로미츠(https://www.ilbe.com/6594804947) 같은 감독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자유방임주의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오치아이는 자신의 뜻에 따라 선수들을 모조리 개조하는 정밀한 조직야구를 추진했다. 하지만 나시다는 나시다에게 적합한 스타일이 있다. 나시다가 취임 1년째에 하는 일은 자신과 뜻이 맞는 선수를 찾아내는 것뿐이다. 즉, 기업으로 치면 오치아이식은 직원 개개인의 능력을 키우라는 것이고 (오치아이 자신도 선수들에게 "다른 팀에 가도 억대연봉을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라"고 말했다) 나시다식은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테니 마음껏 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실적이 나오지 않거나 경영자와 맞지 않는 직원은 조직에 둘 이유가 없다.
취임 2년째에 뭔가 보여주는 남자, 나시다
어느 리더쉽에나 장단점은 있고 낙오되는 자는 생긴다. 오치아이식이 군사정권 같고 나시다식이 우리이니처럼 소통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단세포가 없기를 바란다. 나시다식은 필연적으로 특정 능력(예를들어 장타력)을 모든 직원들에게 요구한다. 미야모토 신야 같이 장타력이 없는 선수는 나시다 밑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오치아이식은 능력이 고르지 않은 직원들을 적재적소에 쓰는 리더쉽이다. 다만 적재적소에 투입되기 전에 오치아이에 의해 혹독한 단련 과정을 거친다. 어느쪽이든 남 핑계나 대는 게 습관화된 꼴페미년들과 문슬람들이 설 곳은 없다.
과제는 적게, 인내는 길게
물론 모든 선수들이 나시다에게 동조한 것은 아니다. 장타력을 요구하는 나시다 스타일에 맞지 않아 팀을 떠난 선수도 있다. 혹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선수들도 있다. 나시다는 기대한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야말로 감독의 진가가 드러나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까지 인내할 것인가, 어느 정도까지 기대치를 낮출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팀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등등 변수에 대처하는 것이 곧 리더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나시다는 분명 인내심이 강한 편이다. 파워풀한 스윙을 모든 선수들에게 과제로 내렸으되 동시에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연습 때 스윙을 힘차게 하는 선수들은 인내를 갖고 기다린다. 연습 때 시키는대로 했지만 시합 때 결과가 좋지 않다고 이리저리 바꾸면 감독의 권위는 보이지 않게 추락한다. 라쿠텐의 3번, 4번타자인 윌러와 아마도르는 4월에 매우 부진했지만 나시다 감독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현재 두 용병은 타격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몰라주거나 협력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때가 수시로 온다. 자신은 큰 비전을 갖고 계획을 추진하는데 사람들이 몰라준다. 궁예처럼 "미륵인 나는 달리려고 하는데 너희 똥막대기들이 쫓아오질 못해!"하고 말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리고 정말 유능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처음 기대에서 30% 정도에만 부응해주어도 ㅅㅌㅊ인 셈이다. (야구에 4할타자는 없다) 유능한 감독의 역할이란각 사람의 30%를 모아 어떻게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는가 하는 그 점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인내심은 필요하고, 설명도 하고, 혹은 당근과 채찍도 쓴다.
나이지리아인과 일본인의 혼혈인 '루이 오코에'라는 신인을 지켜보는 나시다 감독. 오코에는 호타준족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2017년에는 부상으로 2군에 머물러 있다. 나시다는 작년에 입단한 오코에에게 큰 기대를 걸었는데 금년에는 이례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몸상태가 1군 플레이어로서 충분하지 않다. 프로답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나시다가 결코 무조건 오냐오냐하는 감독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해두고 싶다. 무능을 감싸주는 감성팔이는 '소통'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소수의 믿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지우지 않고 선택지를 많이 늘려두는 것이다. 모기가 삼진을 당하면 페게로가 나간다. 페게로가 아웃당해도 윌러가 있고 아마도르가 있다. 혹은 하위타선에서 적시타를 쳐줄지 모른다. 죽여버려 타선이란 결국 감독이 원하는 자질을 확실하게 해두고, 그 자질이 발휘될 가능성을 높여나가기 위해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배치하는 타선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타저투고 팀인 라쿠텐에서 도루, 번트, 안타, 홈런 등등 너무 많은 것을 하려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거 같으니까 하여간 강하게 빠따를 휘두르는 것만 요구하고 그게 가능한 순서대로 줄을 세운 것이다. 즉, 죽여버려 타선은 경우의 수와 연관이 있다. '경우의 수'는 당장 눈앞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볼땐 확실히 효험이 있다.
한화는 세이콘의 잔재에 집착하지 말고 죽여버려 타선 같은 단순명료한 야구를 해야 할 것이다.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세이콘의 저주를 떨치는 것이 목표이다.
(한화 이외에) 죽여버려 타선 같은 삶의 방식이 맞는 사람들
1. 고민을 깨끗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부족한 사람들 (많은 일게이)
2. 자존심을 굽히기 싫은 사람들 (대부분의 일게이)
3. 한가하면 자꾸 쓸데없는 생각이 나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게 훨씬 생산성이 좋은 사람들 (모든 일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