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오늘날의 인류를 토대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그렸다면 이처럼 그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항상 과학 기술에 의해 변화해 왔다.
우리는 이미 기계와 공존하는 사이보그이고, 이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생명공학을 통해 인류를 향상해가며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을 것이고,
나노 과학기술을 통해 물질을 원자 단계까지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것들이 다른 모든 것들에 연결되고,
우리의 창의력, 창조적 능력은 무한으로 가속하며,
결국, 우리는 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종교는 그저 이것을 위한 연습일 뿐이었다.
레이 커츠와일의 특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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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드 샤르댕의 오메가 포인트,
티머시 리어리의 "인류가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화하는 과정"들은 모두 이 형용할 수 없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처럼 인간 대 기계의 관점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항상 기계를 필요에 의해 사용하며 우리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기계는 인류 그 자체이기 때문에 적대적 관계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