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난적 유교는 古소설 상에서 얼만큼 힘이 있었나?
-新종교로 읽는 ‘박정희’, 이미 대중이 조작한 神話변조-
예전엔 古소설은 정보를 그리 주지 못했다. 거, 유치한 거 같으니라고. 그러나, 이젠 상징기호학 중심으로 중세 사람들의 인성구조를 파악하는 텍스트로 본다. 풍부한 현실정보를 전달한다.
사문난적 유교는 고 소설 상에서 거의 힘이 없다. 영화 ‘사도’도 은근히 대궐조차도 사문난적 유교가 아닐 것이라고 유아인의 ‘사도’를 통해서 드러냈다. 그러나, 유교의 일정한 가치관은 충신 효녀 열녀문 등의 기제 탓인지 깊숙이 민중의 무의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실 말단까지 간 것은 그게 전부다. [소학] 지배체제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박정희 체제는 국민주권론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내세운 정부다. 반면에, 민주화 이후 박정희 드립은 대부분 新종교인에 의했다.
박정희체제는 경제가 곧 독재라고 주장했다. (오원철 주장, 김향아, [양날의 칼]) 박정희 체제는 씨족 파벌주의를 제어하는 것은 권력의 중앙집중 밖에 없다는 신념의 체제다.
그러나, 김영삼 시대에 박정희는 경제는 잘했는데 정치는 권위적이었다는 주장을 내세워, 박정희는 산업화 혁명하고 김영삼은 민주화 혁명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일게이야, 박정희 시대 산업화란 표현은, 이런 취지다. 임마!! 철저하게, 조갑제 信者란 뜻이다.)
대구 시민은 이미 그 자체가 혼돈이다. 종편은 조갑제주의처럼 박정희를 新종교 영웅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新종교 특유의 광폭적인 나열(무교조화주의. I SEOUL U)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맹 공격한다.
대구 시민이 기억하는 박정희는 역사적 박정희가 아니라, 이미 조갑제-조선일보-종편이 합창하는 “新종교 교리 선교 도구”로서 박정희였다. 新종교는 종교와 정치가 일치되고, 그런 취지로 영웅을 내세우되 영웅은 씨족 연고를 드러내는 상징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의 공천은 최소한 박정희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공천의 관행인 상층에서 어떤 결단이 없으면 물갈이가 없고, 물갈이가 없으면 민생의 불만 누적이 일어나는 현상을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팔이 정권이 고의로 힘을 빼버렸기에 정치귀족에 의한 불만누적이 있고, 조선일보와 종편이 이를 고의로 크게 터뜨렸다.
박정희 시대 神話는 처음부터 조갑제의 것이었다. 이렇게 종편과 조선일보가 이용해 먹을려고 만든 것이다. 1985년 이후에야 경제성과가 나왔고, 90년대 초반에 김영삼 정부의 失政이 있자 그 신화가 힘을 받았다.
그러나, 조갑제가 만든 박정희 神話는 이미 제작자 의도에 과잉 왜곡돼 버렸다.
박정희 시대는 근대화다.
그 당시의 국민교육을 들었던 어린이는 가장 당혹해하는 게 있다. 박정희 정권 이념은 엘리트 사회는 거의 설득 못했다는 것이다.
교육받은 것은 일반인 뿐이다.
새 신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