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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일본에서 작은 상점이 하나 생긴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닌텐도이다.
당시의 닌텐도는 지금과는 달리 화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이었다.
마침 당시 전국적으로 야쿠자들이 도박판을 늘리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화투의 수요도 급격히 늘었고
품질 또한 좋았던 닌텐도의 화투는 불티나듯이 팔려 나갔다.
몇 년 후 닌텐도는 화투를 만들던 노하우로 트럼프 카드를 생산하기 시작 헀고 그 역시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그렇게 닌텐도는 사업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잘나가는 카드 생산 회사가 되었다.
수 십년이 지나 1963년 닌텐도는 주식 회사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주식 회사도 되었겠다 새로운 사업을 벌려나가는데
즉석밥,러브 호텔,택시,유모차,복사기,클레이 사격 체험장,가정용 복사기..... 와 같이 엄청나게 사업을 벌렸지만
전부 실패하고 상장 당시 980엔이었던 주가가 60엔까지 추락 할 정도로 경영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리고 1965년 그가 들어오면서 닌텐도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요코이 군페이 그는 닌텐도 안에서도 희귀한 대졸 스펙을 가진 신입 사원이었지만
생산 라인의 관리직이라는 업무는 그에게는 너무나도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요코이는 공장에 남아 도는 재료로 장난감을 하나 만들어서 가지고 놀았는데
그것을 마침 공장 시찰하고 있던 당시의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에게 딱! 걸려버리고 만다.
그리고 사장은 요코이를 사장실로 오게 하는데.....
'ㅅㅂ 좆됐다....'
그런데 웬일인가? 사장은 그를 혼내지 않고 오히려 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연말까지 완성해서 출시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시발 개꿀
그리고 나온 물건이 바로
울트라 핸드
이것은 140만개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망해가던 닌텐도를 기사회생 시키며
닌텐도라는 회사의 방향을 확고하게 결정 짓는다.
엔터테이먼트
엔터테이먼트 회사로서의 첫 발걸음이었던 것이다.
그 후 야구공을 던져주는 피칭 머신인 울트라 머신(1967)
아이들이 높은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잠만경인 울트라 스코프(1971)
와 같은 히트작을 냈고
후에 닌텐도를 먹여살린 패미컴시리즈의 개발자인 우에무라 마사유키를 영입하여
광선총 장난감을 개발해 당시 2,000~4,000엔에 달하던 고가품임에도 불구하고 100만대 이상을 판매한다.
하지만 1973년 전세계에 불어닥친 오일쇼크는 그렇게 잘나가던 닌텐도조차 흔들리게 만든다.
전기를 쓰는 장난감인 광선총도 오일쇼크 때문에 판매량이 뚝 떨어져버렸고
역시나 광선총을 활용한 아케이드 게임장 사업에 과감히 투자했었지만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큰 손실을 입고 사업을 접게 된다.
닌텐도에게 찾아온 다시 한 번의 위기.
때마침 미국에서 마그나복스의 오디세이와 아타리의 퐁이 출시 되면서 비디오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된다.
닌텐도는 오디세이와 퐁을 수입하여 판매하다가
1977년, 미츠비시와 협업하여 닌텐도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인 컬러 TV 게임 6와 컬러 TV 게임 15를 발매하면서 완전히 비디오 게임 회사도 탈바꿈 한다.
간단하게 하키,볼링,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게임기였고
그 뒤로 컬러 TV 레이싱 112, 컬러 TV 게임 블록깨기, 컴퓨터 TV 게임이라는 시리즈를 연달아 발매하여
시리즈 누계 총 300만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히트를 한다.
하지만 그것도 닌텐도에게 회복의 기회가 되지는 못했다.
다른 회사들과의 경쟁을 위해서 싼 가격으로 많이 팔았기에 큰 이득을 볼 수가 없었고
당시 닌텐도가 지고 있던 빚이 무려 70억엔에 달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 슈퍼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뺵으로 입사한다.
ㅇㄱㄹㅇ 뺵으로 입사함.
당시 닌텐도는 좆망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신입 사원을 뽑을 여력도 없었다.
하여튼
1979년, 울트라 핸드의 개발자 요코이 군페이는 신칸센을 타고 가다가 희한한 장면을 하나 보게 된다.
심심했었는지 휴대용 계산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한 회사원.
요코이는 그것을 보고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게임기에 대한 영감을 얻게 된다.
요코이는 사장에게 아이디어 한 번 말해봤고
그의 똥꼬를 빨다 못해 박으려 들었던 사장은 역시나 그의 아이디어를 추친시켜버린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닌텐도 최초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워치(1980)
한 손안에 들어올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를 가졌고
저글링 하는 게임과 전자 시계가 내장 되어있었다.
이 게임기는 전작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일본에서 1300만대
해외에서 3000만대
총 4300만대를 팔아치웠다.
산소 호흡기 달고 연명하고 있던 닌텐도는 이 게임기로 빚을 모두 청산하고 흑자 기업이 된다.
그 뒤로 레이저 스코프의 실패가 있었지만 (솔직히 좆망할만 함.) 자금이 빵빵했던 닌텐도는 그거 좆까고 또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아버지 빽으로 들어왔던 미야모토 시게루가 등장한다.
그가 사내 공모전에 낸 아이디어가 발전한 것이 바로 동키콩이다.
닌텐도는 동키콩을 바탕으로 게임&워치의 후속작을 내며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그때 나온 것이
십자키와 듀얼 스크린이다.
십자키는 수많은 게임기에서 활용이 되었고
듀얼 스크린은 후에 나올 닌텐도 DS에 적용이 된다.
1983년 아타리 쇼크(참조:http://www.ilbe.com/3297730291) 로 좆망해가고 있던 비디오 게임 시장을 살리는 구세주가 등장한다.
패미컴
일본에서는 패미컴, 미국에서는 NES, 한국에서는 현대 전자에서 수입하여 현대 컴보이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패미컴은 역사상 가장 히트한 게임기중 하나일 정도로 엄청나게 팔렸으며
슈퍼 마리오,파이널 판타지,젤다의 전설과 같은 장수 시리즈의 시작도 패미컴때 시작 되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똥같은 주변기기를 발매하기도 했다.
파워 글러브와 패밀리 컴퓨터 로봇이 그 예.
파워 글러브는 장착하면 마치 사이버 전사가 된 것 같은 간지를 뿜어 주었지만
똥과 같은 조작감으로 망했고
패밀리 컴퓨터 로봇은 어디다 쓰는 건지 난해한 모습으로 유명했다.
다만 파워 글러브에 비해서 기능성 게임 시장의 확장이라는 역할로 쓸모는 있었다.
닌텐도는 아타리 쇼크를 교훈삼아
게임을 먼저 심사하여 일정 퀄리티 이상의 제품만 닌텐도 라이센스를 얻게 해주는 서드파티 제도를 도입 시켰으며
패미컴 출시 지역에 따라 할 수 있는 게임의 차이를 두는 지역 코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두가지는 저질 퀄리티 게임의 난립을 막으며 또한 게임사의 이익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하지만 후에 닌텐도는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인 서드파티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욕만 먹는 지역 코드 시스템만 유지시키게 된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