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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연합군에게 털린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유배를 가게됨.
그 사이 나폴레옹이 개판쳐놓은 유럽을 수습하기위해 빈 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유럽에서 힘 좀 쓴다는 열강들을 모아놓은 빈 회의..
제대로 진행도 안되고 다들 똥꼬쇼만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나폴레옹은...
진압하지 않을 수 없잖아?
엘바섬을 탈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체포하려 달려온 네 원수와 슐츠 원수까지 포섭하여
1815년 3월 20일 파리를 입성, 민심은 나폴레옹한테 기울고
나폴레옹은 제국의 부활을 선언함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영국,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신속히 병력을 집결
나폴레옹은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입장인지라
12만 8천명의 병력과 366문의 대포를 가지고 먼저 쳐들어가 각개격파 하는 전략을 내세워.
연합군의 만남의 광장 벨기에로 올라감
나폴레옹은 먼저 네 원수에게 2만 4천의 병력을 나눠주어
카트르 브라(빨간색)에 있던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중심의 연합군을 급습하게 하고
자신의 본 병력은 블뤼허 장군이 이끄는 프로이센군을 치기로하고
각각 카트라 브라(빨간색),리니(파란색)에서 싸웠고
블뤼허는 절반이상의 병력을 잃고 자신도 중상을 입어
ㅂㄷㅂㄷ한 심정으로 퇴각했고
나폴레옹은
고문관 끼가 다분해 보이는 그루시 원수에게 3만의 병력을 주어 프로이센군을 추격하여 괴멸시키라고 명령했으나......
미끼병력에 낚여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추격했던 것이다.
이것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참패한 가장 큰 원인이 됨
한편, 네 원수의 기습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프로이센이 털렸다는 소식을 접한 웰링턴은 몽-생-장 까지 병력을 후퇴시키고
방어를 목표로 산등성이를 등진 유리한 지형에 병력을 주둔시키는 한편
우그몽 농가(좌) , 라 에상트 농가(우)
전장의 가운데 위치한 두 농가를 요새화시켜 나폴레옹을 맞을 준비를 하지
이제 두 명장의 만남만이 남겨져있는 상태야
다음날이면 유럽의 역사가 바뀌는 날이지....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