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게이들아~ 일전에 ‘ (보충 / 씹스압) 2006년 청소년축구 국가대표들의 근황을.araboja’ 를 썼다가 일베간 게이야.
링크 : http://www.ilbe.com/6546103631
해당 자료에 몇몇군데 틀린 자료가 있었는데, 특히 박주호 소속팀 관련해서 엄청나게 ㅁㅈㅎ를 받았어.
운마한테 수정요청하니 오타만 수정해준다해서 다른 자료는 하나도 안고치고 수치만 고쳐줘서 더 운지해버렸지 ㅋㅋㅋ 존나 고맙다. 운마야.
여튼 오늘도 별 필요없는데 읽어볼만한 자료를 들고 왔어. 내가 한때 살았던 동네이고, 머게로 유명한 그곳!
맞아. 영덕이야(울진 ㅁㅈㅎ). 수도권이나 타 대도시, 기타 지역, 혹은 호남(네다홍) 사는 게이들은 그냥 촌동네 중
한 곳 같겠지만 사실 이 작은 촌구석에 의외로 축구선수 출신들이 많아.
너네 혹시 영덕 갈 일 있으면, 특히, 강구가서 횟집 아재들한테 ‘아재 축구부 출신?’ 라고 물어봐봐.
10에 7~8은 ‘우째 암?’ 할거야. 그만큼 축구를 잘하고 좋아하는 동네지.
지금부터 영덕군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축구와 관련된 배경, 출신 선수들에 대해 알아볼게. 시작한다.
그럼, 먼저 3줄 개요 간다.
1) 경북의 자그마한 어촌 동네 영덕에서 태어난
2) 축구선수들이 있다던데 한번
3) 알아보자
1. 영덕군에 대한 간략한 소개
어디 지식백과에 나오는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간단하게 소개할게.
영덕군은 경상북도 동해안에 위치한 곳이야. 위로는 울진, 아래로는 포항, 좌로는 청송, 우로는 동해바다가 있어. 인구는 내가 살 때만해도 6만이었는데
2014년 기준 39,000명이네. 나 같은 경우도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포항이나 경주로 나가서, 대학을 또 서울, 머구, 부산으로 간 뒤 애들이 돌아오질 않으니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나봐.
행정구역으로는 1개의 읍(영덕)과 8개면.(강구, 남정, 달산, 지품, 축산, 영해, 병곡, 창수)으로 이뤄져 있는데,
영덕, 강구, 영해 나름 ㅅㅌㅊ, 남정, 축산, 병곡 ㅍㅌㅊ, 달산, 지품, 창수 ㅎㅌㅊ야. 대부분 관광 오는 사람들은 강구나 축산에서 게를 먹거나,
영해, 병곡으로 해수욕을 하러와.
오고 싶은 게이들은 동서울에서 영덕으로 오는 직행버스 있으니 타고와라. 4시간 30분 걸린다.
포항에서 갈아탈 경우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1시간 걸림.
2. 영덕과 축구
그럼 영덕과 축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말했다시피 영덕 인구는 4만이 채 안돼. 내가 살던 1990년대 후반에도 6만에 불과했어.
그런데, 당시 영덕읍과 강구면, 영해면 초등학교에 각 1개씩 축구부가 있었고(영해는 노팩트다. 기억이 가물),
중학교도 영덕읍과 강구면에 하나씩 있었지. 특히 영덕초와 강구초가 축구를 하는 날에는 학부모들 기싸움이 장난이 아니었어.
여튼, 영덕초 나오면 영덕중, 강구초 나오면 강구중으로 진학했는데, 중학교 축구부를 하나만 운영하자는 의견이 나왔나봐(당시 급식충이라 자세힌 모름).
그래서 강구중 축구부로 통합이 돼.
촌에 있는 학교지만 도 대회에서 나름 입상도 하고,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해. 촌이라 그런지 카퍼레이드까지 했어 ㅋㅋㅋ
카퍼레이트 ㅍㅌㅊ?
또한, 고등학교도 영덕고등학교(옛날에 영덕종합고등학교라고 쫑고라고 불렀는데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지..)에
축구부가 있어서 진학을 해.(물론, 우수한 애들은 포항이나 안동으로 진학하고, 타지로 못가는 애들이 영덕고로 진학을 많이 해.
하지만, 그곳에서 지원을 많이 받고 열심히 해서 전국대회에서도 종종 4강에도 진출하고 있어)
여튼, 그런 분위기 탓인지 아재들도 도민체전 행사가 있으면 다른건 져도 축구는 절대 못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축구에 목숨을 걸었고,
도민체전 1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또한, 영덕군에서도 지속적인 투자를 해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산 중턱에 ‘강구대게축구장풋살장’ 이라는 풋살장도 만들고, 다른 축구팀에도 지속 건의해서
프로팀은 물론 대학, 타 고교, 중학교 축구부들도 전지훈련을 오고 있어.
3. 출신 선수
그럼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영덕 출신 축구선수들에 대해 알아볼게. 여기서 영덕 출신이란건 중학교까지 영덕을 다닌 사람 기준이야.
타지에서 살고 생활하다 영덕고 축구부를 다닌 사람은 제외하고. 그럼 시작한다.(나이순)
1) 박태하(1968년 5월 29일생) : MF / 중국 갑급리그 연변FC 감독
촌아재의 인자한 표정
박태하는 영덕 강구에서 태어났어. 어릴적부터 축구를 즐겨했다네. 하지만 요새도 그렇듯 당시에도 박태하 부모님은 박태하가 축구하는 걸 반대했어.
그래서, 박태하는 강구중학교에 진학 후 축구를 잠시 그만뒀다고 해. 하지만, 다시 축구화를 신은 박태하는 경주종고(現 경주정보고)로 진학을 해.
그곳에서 전국대회 4강에도 진출하지만 폭발적인 메리트가 없었던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스카웃을 받지 못해.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지.
그가 바로 초대 머구머학교 손종석 감독이야. 박태하의 강점은 뛰어난 심폐기능과 넓은 시야, 그리고 성실함이었는데 그의 성실함이 손감독의 이목을 끌었지.
그런 손감독의 머구머에서 박태하는 다소 부족한 기술적인 부분을 업그레이드 시켜. 그리고, 89년 10월 전국체전에서 머구머에 우승 트로피를 안기지.
이런 그의 실력을 인정받아 박태하는 포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을 해. 당시 최순호, 공문배 등 날고 기는 축구선수들이 많았지만
머구머에서 익힌 기술과 특유의 심폐기능 및 성실함으로 1991년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31경기나 출전을 했고, 1992년에는 2년차 징크스가 무색하게
35경기에 출전 5골-7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우승에 일조를 해.
이후 상무에 입대를 했고, 전역 후 다시 포항으로 복귀하면서 그는 2001년 선수로서 은퇴를 할 때까지 K리그 9년간 261경기 46골 37도움을 기록했는데,
전부 포항에서 기록을 했어. 이런 그를 축구팬들은 원클럽맨이라고 불러.
그리고, 그의 배번이 17번이었는데, 17번은 당시 하석주가 달고 있는 걸로 더 유명했지만, 박태하의 원클럽맨이라는 별명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017광고모델도 했어.(자료는 못찾겠다)
국가대표로는 1994년 루마니아와의 친선경기를 시작으로 2000년 2002월드컵 공동개최 기념경기 일본전까지 11경기 출전했고
해트트릭 포함 7골을 휘몰아쳤어. 골결정력 ㅆㅅㅌㅊ?(그 중 괌 3골, 대만 2골, 베트남 1골ㅋㅋ)
선수를 은퇴한 후 그는 포항스틸러스에서 스카우터를 하다가 조광래, 허정무 밑에서 국가대표 코치도 역임하면서 2010년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에도 기여를 하지.
월드컵 후 FC서울 수서코치를 맡은 그는 2014년 12월, 중국 연변FC와 감독 계약을 맺어.
계약 당시 그는 ‘제가 이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습니까?’ 라는 말을 남기고 중국으로 진출해.
결과는 현재 갑급리그 1위 및 임대해 온(현재는 계약체결한) 하태균 갑급리그 득점 1위로 조선족들의 에이스로 우뚝!! ㅋ
2) 박지호(1970년 7월 4일생) : DF / 한려대학교 축구부 감독
호성성님 아님
박지호는 나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처음 안 선수야... 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 위주로 이야기할게.
수비수로 활약한 박지호는 마계 대학교를 거쳐 1993년 현재 FC서울의 전신인 안양LG에 입단을 해.
입단 첫 해 26경기를 나서면서 팀의 주전으로 발돋움하고, 이때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어 이 해에만 A매치 2경기에 출전해
(캐나다와의 친선경기로 이틀간 2경기에 출전).
그! 러! 나! , 이듬해 리그 4경기 출전에 그치고 그 뒤로 국가대표도 ㅃㅇㅃㅇ야. 그리고 포항으로 이적을 하고.
포항에서는 1995~1997 3년간 뛰었는데 첫 2년간은 6경기, 9경기에 그치지만 마지막해인 97년에는 20경기 5골을 기록해.
98년에는 중국 광저우 타이양선(현. 광저우 에버그란데 FC)에서 20경기 5골을 기록을 하지.
수치상으로 봤을때 97년, 98년 성적이 나름 괜찮았는데 99년 일화 천마(현. 성남)로 이적해서 5경기 출전 후 기록이 없어. 아마 은퇴했나봐.
지도자로는 2001년 따랑은 돌아온다는 권땅우님의 모교 한남대에서 코치로 활동했고, 경남 대교, 충남 일화 천마 등 주로 여자축구에 헌신을 했어.
위키디피아를 보니 2005년 대한민국 코치도 했다던데 KFA 홈페이지에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어.
현재는 그곳 광양에 있는 한려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고 있어. 올해 전국체전 전남대표로 뽑힐 만큼 팀을 어느정도 궤도에 올려놓은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음.
3) 신태용(1970년 10월 11일생) : MF / U-23 감독
오른쪽 빨간 쫄쫄이가 신태용 감독
이 짤은 다들 한번씩 봤을거야... 스폰서의 차이라고 나도는 짤인데, 저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신태용이야. 저 짤에 대해 먼저 소개하자면
2009년 성남 일화 감독으로 있을 때 홈경기 첫승 이벤트로 절친한 심권호와 함께한 이벤트야.
원래는 아래처럼 쫄쫄이만 입고 춤추는 거였는데, 심권호가 맥콜을 흔들어 뿌린거지.
신태용은 영덕출신 축구선수 중 선수로나 감독으로 가장 성공했다고 볼 수 있어. 영덕군 영해면에서 태어난 신태용은 머구공고, 영남머를 거쳐
1992년 천안 일화천마에 입단을 해.
이미 고3 시절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수상하고, FIFA U-16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코트디부아르, 미국과의 경기에서 각각 한 골씩 넣으며
팀의 8강 진출에 기여하면서 대표팀 엘리트 코스의 스타트를 화려하게 끊어. 이후 U-17, U-20, U-23을 거치고, 92년 올림픽 국가대표도 거친 그에게
K리그 또한 만만한 무대였나봐. 입단 첫 해 23경기 9골 5도움이라는 신인으로서 ㅆㅅㅌㅊ한 성적으로 신인상을 거머줘.
이후 2004년 호주진출 전까지 13년간 박태하처럼 한 클럽에서만 뛴 원클럽맨이야.(영덕 축구선수 의리 ㅍㅌㅊ?)
천안 일화인데 성남으로 이적한거 아니냐!! 라고 빼액하는 축알못 게이들이 있겠지만 그 천안 일화가 성남 일화야.
여튼 K리그 13년간 401경기 99골 68도움을 기록하고, K리그 최초 3연패 달성(1993 - 1995), 5년 연속 K리그 베스트 일레븐(1992 - 1996) 등을 기록해.
K리그에 남긴 발자취가 엄청나게 많은데 아래에 정리해볼게
[개인기록]
1992년 K-리그 신인상 수상
199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5년 프로축구 골든볼 수상
1995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1996년 K-리그 득점왕 수상
1996년 디아도라 프로축구 대상 수상
1996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0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1년 K-리그 MVP 수상
2001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2년 험멜코리아 - 스포츠투데이 선정 올해의 선수상 미드필더 부문상 수상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2003년 K-리그 베스트 11 선정
[팀 기록]
K-리그 우승 6회 (1993년, 1994년, 1995년, 2001년, 2002년, 2003년)
K-리그 준우승 1회 (1992년)
FA컵 우승 1회 (1999년)
FA컵 준우승 2회 (1997년, 2000년)
아디다스 컵 우승 2회 (1992년, 2002년)
아디다스 컵 준우승 2회 (1995년, 2000년)
하우젠 컵 우승 1회 (2004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1회 (2002년)
대한민국 슈퍼컵 준우승 1회 (2000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 1회 (1996년)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97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2004년)
아시아 슈퍼컵 우승 1회 (1996년)
[기타]
1995 K리그 통산 11번째 20-20 클럽
1998 K리그 통산 7번째 30-30 클럽
2000 K리그 통산 3번째 40-40 클럽
2001 K리그 통산 2번째 50-50 클럽
2001 K리그 최초 MVP 2회 수상(1995, 2001)
2003 K리그 최초 60-60 클럽
2004 K리그 최초 400경기 출전
K리그 통산 득점 9~10위(8위가 101골이라 짐작)
K리그 통산 도움 1위
K리그 통산 출전경기 2위(1위 김병지)
그리고, 국가대표에서도 성인 A매치 23경기 3골을 기록하지.
이렇듯 K리그 레전드인 그는 2004년 나이와 높은 연봉 문제로 재계약에 실패하고 호주로 진출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단 1경기만 출전하고 현역 은퇴를 해.
지도자로는 은퇴했던 팀인 호주 퀸즐랜드에서 잠시 코치를 맡았다가 2008년 12월, 김학범 감독의 후임으로 성남 감독으로 취임해.
09시즌 초반 부진으로 팬들의 우려가 많았는데, 후반기에 승승장구해서 팀을 4위에 안착시켜.
또한, 출전정지를 당했을때도 관중석에서 팀을 무전기로 지휘하여 무전기 매직이라는 호칭을 듣기도 했어.
그리하여 10시즌 정식으로 감독계약을 맺게 되지. 당시 성남은 팀 자금문제와 AFC 챔스 출전 병행 등 여러 악수가 많았지만,
신태용은 챔스 조별 1위를 기록하고, 우승도 차지해버려. 이 우승으로 신태용은 AFC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챔스를 우승한 선수가 되지.
그! 러! 나!, 2012년 팀이 12위라는 성적을 기록하게 되고, 성남 감독직에서 사임을 해
하지만 박규남 단장의 사표 제출 지시에 따른 타의에 의한 사임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경질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아.
그리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 후 홍명보가 국대감독에서 사퇴를 하자 신태용이 감독대행으로 경기에 나섰고 알다시피 베네수엘라 전에서 3:1 완승을 기록해.
신태용은 감독대행으로 선정되었을때 부담없이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겠다고 인터뷰를 했고, 경기 후 결과에 만족한 팬들이 신태용 ㅆㅅㅌㅊ라고
국대감독으로 임명하자는 여론이 일었지만 본인의 고사와 국내감독은 또 협회에 휘둘릴 수 있다는 여론으로 다시 코치로 돌아와.
그러다, 올해 2월 올림픽대표팀 이광종 감독이 지병으로 갑자기 사퇴하고 신태용은 현재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어.
올림픽대표팀을 맡은 후 7경기에서 5승 2무라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고,
감독으로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2010년), FA컵 우승 1회 (2011년),
코치로 AFC 아시안컵 준우승 1회 (2015년) 기록이 있어.
4) 김도균(1977년 1월 13일생) : MF / 울산 현대 코치
김도균이 고등학생때 영덕에서는 축구신동 나왔다는 소리가 들렸었어.
그도 그럴 것이 1996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MVP를 받았거든. 강구초.중 - 안동고를 졸업하고
울산대학교를 진학한 그는 당연하게 1999년 울산 현대로 입단을 해.
그리고 2000년에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주장도 역임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였지만 이 선수 아는 사람 없지?
맞아.
생각보다 성장하진 못했어. 허정무가 기대했는데 성정하지 못한 선수를 2명정도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한명이 김도균이야.
김도균은 울산 현대 입단 후 5년간 활약하면서 82경기에 출전을 해. 나름 주전으로 활약한거지.
그리고 2004년에 J리그 교토퍼플상가로 잠시 임대를 갔다가(그곳에서도 17경기 출전 ㅍㅌㅊ?) 성남으로 복귀 후 전남으로 이적해.
아마추어 시절에는 날렸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그저 그런 선수로 활약하다 은퇴 후 현재는 울산에서 코치를 하고 있어.
A매치 기록만 봐도 통산 44경기 출전 했는데, 성인대표팀은 10경기에 불과해. 그것도 99~00년에 집중되어 있어.
그래도 우리 일게이들보단 성공한 삶이 아닐까? ㅋㅋㅋ
5) 김진규(1985년 2월 16일생) : DF / FC서울 선수
요시!
자 이번에 알아볼 선수는 일게이들도 많이 들어봤을거야. 얼마전 ㅇㅂ에서 몸매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그녀
홍진영의 전 남친 김진규야.
짤을 보면 알겠지만 거친 성격과 언행으로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있어.
여튼 김진규는 영덕초 - 강구중을 졸업하고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해. 강구중을 졸업하면 보통 잘하는 애들은 안동고나 포철공고로 진학하고,
그저 그런 애들은 영덕종고로 진학을 했어. 안동고를 졸업한 그는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을 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게 돼.
U-20, U-23, 성인 대표팀을 왔다가며 하며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받지. 전남에서도 2년간 20경기에 출전하며 나름 입지를 다져.
그리고, J리그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해서 2년간 47경기에 출전하면서 승승장구 하지. 또한, 2006년 월드컵 대표팀으로 활약하면서
박토템과 함께 세리에A 토리노 이적설이 나돌지만 결국 전남으로 복귀해.
그 해 바로 FC서울 곽태휘와 트레이드 되어 4년간 FC서울에서 활약해. 2008년부터 10년까지 매년 30경기 가까이 출전하면서 주전으로 입지를 다지고,
FA 선언 후 중국 다롄으로 이적해. 하지만, 중국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 시즌만에 J리그 반포레로 임대되지만
그곳에서도 부상으로 고작 4경기 출전에 그치지.
결국 2012년 다시 FC서울로 복귀를 하고 37경기에 출전하면서 주전으로 맹활약해. 그리고 군복무 해결을 위해 상주상무에 입대하려하지만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면제를 받고 13년 35경기, 14년 33경기 잘 뛰고 있어. 2014년엔 FC서울 주장으로도 임명되었지.
국가대표로는 2004년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회와 2008년 하계 올림픽의 주장에 선임되기도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등에 참가했어.
U대표팀에서 53경기 3골, 성인대표팀에서 43경기 3골을 기록하지.
그런데, 2008년 국가대표팀에 허정무 감독이 취임한 이후 약 4년간 대표팀 명단에 선발되지 못했어.
여기엔 카더라 통신이 있는데, 김진규가 전남에 있을 당시 감독이 허정무야. 그래서 김진규를 아꼈는데 김진규가 서울로 보내달라고 한거지.
서로 안좋게 헤어진거야. 그 상황에서 허정무가 국대감독이 되니 안뽑았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사실 김진규는 국대경기에서 자동문이라는 별명으로 중요한 순간에 실수와 느린 발 때문에 위기를 많이 초래했어. 이것 때문에 안뽑혔다고 보는게 맞아.
여튼 김진규는 전남에 입단한 이래 영덕에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있어.
또한, 자신이 나온 학교는 아니지만 친구가 감독으로 있는 강구초등학교 축구부에 후원금을 내어 해체될 뻔한 축구부를 살리는데 기여를 해.
그라운드에선 더럽고 난폭한 이미지지만 영덕 축구계에서는 한줄기 희망이자 천사나 마찬가지지.
6) 손준호(1993년 1월 28일생) : MF / 포항스틸러스 선수
전은하(1993년 1월 28일생) : MF / 대전스포츠토토여자축구단 선수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할 선수는 손준호와 여자축구선수 전은하야. 왜 이 둘을 따로 묶었나면 영덕 출신이지만 영덕 출신이라는게 다라서 그래.
손준호는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한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레 축구를 시작했고, 포항스털러스 유소년팀인 포철중학교와 포철공고에서 선수생활을 했어.
영덕출신이지만 포항 유소년 시스템 아래에서 자란거지. 고교에서 학교를 백록기대회 우승으로 이끌면서 MVP도 거머쥐었고,
이후 영남대에 진학해서 U리그 우승으로 또 MVP를 차지하지.
그리고 작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했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 군 면제를 받았어.
전은하는 여자선수라 기록이 별로 없는 점 양해해. 내가 영덕에 살 때 여자축구선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걔갸 얘인거 같아
남자애들이랑 매일 축구한다고 했고, 아버지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지원을 한다고 했거든.
여튼, 전은하는 2012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의 5골 중 4골을 몰아치며 8강 진출에 견인하면서 주목을 받아.
그해 대한축구협회 최우수선수 및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WK리그 머전에서 활약중이야.
4. 결론
저번 글에 이어 2탄째인데 정보글을 역시 오래 걸리네 ㅋㅋㅋ
전편과 마찬가지로 위키랑 인터넷 참조했으니까 적극적인 태클 환영해.
물론, 이번 주제에 대해 태클 걸 게이들 많을 거야. 서울 출신 축구선수가 더 많고, 부산, 강원, 충천 등등
타 지역 출신 축구선수들도 많겠지만, 경북의 작은 어촌인 영덕의 축구사랑과 인구수 대비 ㅆㅅㅌㅊ치는 출신선수들을 소개함으로써 영덕은 대게뿐 아니라
축구로도 유명하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어.
전에 이런 내용으로 알레고양 김현회한테 칼럼소재를 제공하니 사뿐하게 묻혀서 내가 한번 써봤어
5. 후 3줄요약
1. 동해안의 작은 어촌 영덕출신 축구선수들은
2. 국가대표 감독도 해보고, 국가대표로 뛰어도 보고,
3. 촌놈(년)들 출세했다이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