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상황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분파적 행동 유형 때문에 한국에서는 내각책임제 정치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이승만의 말을 마치 입증해 주는 것 같았다. 이승만정권 하에서 각료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9개월 이었던 데에 당혹감을 느꼈던 사람들은 민주당 정부의 장면 내각에서의 평균재임기간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민주당은 이처럼 조직기반이 급속히 붕괴되어 가고 있는 한편, 다른 효과적인 정치수단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내건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이승만의 ‘독재’에 반대하고 내각책임제를 지지한다는 것이 그 전부였다. 따라서 이승만정권이 무너지고 내각책임제가 도입된 시점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민주당원들을 결속시킬 이데올로기가 없었다. 1960년대 말 정부는 예산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매수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한 업저버가 지적하고 있듯이, 민주당은 사욕을 채우는 데 권력을 이용하고 있었으며, 행정 집행 과정에서 자신들의 권력 소외에 분노를 느끼는 다수 세력과 발전지향적 목표를 가진 소수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더욱 ‘민주적’, 다시 말해서 이승만정권보다 더 ‘자유주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민주당 의원들의 40% 이상이 구지주계급의 자제들이었고, 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의원들이 일제 때 총독부의 관리를 지낸 자들이었다. 결국 이데올로기적 구심력의 결여라는 요인은 민주당정권의 결정적인 약점의 하나가 되었다.
민주당이 뚜렷한 이데올로기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민주당 정권이 집권기간 동안 독자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단지 대중의 압력에 순응하는 정책 지향을 취했다는 점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정권이 내세운 제1목표인 ‘경제개발 제일주의’도 독자적으로 설정된 정책이 아니라 1960년 11월 내각 사무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나타난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취해진 것이었다. 이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할 분야는 국가의 경제문제라는 견해를 보였던 것이다. (김정원 1, 79-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