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의 근본적 허약함, 특히 조선왕조 후기에 나타난 허약함은 원천적으로 귀족의 권력 때문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끌어내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문서상으로 국가는 강력한 수세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금을 잘 거둬들이려면 미국 도시들처럼 재산의 범위와 가치에 대한 조사를 빈번히 해야 한다. 그런데 시골 귀족들은 어떤 때는 수십년 동안이나 地籍조사나 토지조사를 못하게 하는 데 성공해다. 실제로 19세기 전반기에 지적·토지조사는 전혀 없었다. (국가는 1663-1669년, 1718-20년, 1820년에 대폭적인 토지조사를 실시했는데, 마지막 조사는 아주 불완전한 것이었다.) 그 원인은 “귀족적 지위와 토지소유권이 융합하여, 진짜 봉건귀족 계급만큼이나 중앙정부의 재정적 잠식에 저항적이었던 혼합체”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행정기구는 중국에서처럼 중앙에서 시골 차원에 이르기까지 강력했다. 지방 행정관들은 중앙정부의 임명을 받았고 지방 소재지에 너무 긴밀히 연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주 임기를 옮겨 다녀야 했다. 하지만 군 이하에서는 지방유지(강력한 씨족과 마을 어른들을 의미함)가 모든 것을 통제했다. 그들은 자기 토지가 세금 명부에 오르지 않도록 지방 서기에게 압력을 가했다. (종종 뇌물을 주기도 했다.) (부르스 커밍스, 76-77쪽)
부르스 커밍스, 김동노·이교선·이진준 역, 『부르스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2001.
*. 국민은 이게 민주팔이 시대와 함께 부활한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