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농촌공동체주의 정서로 사회를 정죄하던 감각에 살아야 하나
-함석헌이 왜 2014년 우리에게 극복해야 될 ‘낡은 것’인가? -
60년대 미국은 한국 엘리트들을 일제히 초청합니다. 마치, 한국이 아프리카 엘리트 초청하는 것과 비슷한 행사입니다. 미국은 한국 엘리트에 미국을 맛보게 하며, 미국을 모델로 따라오게 원합니다. 박정희 시대 ‘따라잡기 근대화’에는 이런 바탕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 엘리트는 미국에서 비인간을 본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문화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오래된 상투적 표현으로, 백낙청의 [창작과 비평]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논쟁으로 재탕, 삼탕, 오탕, 육탕, 사골에 진국까지 폭 국 끓여 먹은 바 있죠.
그래서, 엘리트가 바라본 인간은 바로 농촌 공동체 정서 속에서 나온 겁니다.
함석헌은 유신론도 무신론도 아닙니다. 물질과 정신 어느것을 택해서 잘못이다. 즉, 90년 이전 권위주의 정권의 반공 메인 텍스트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함석헌을 설명하는 것은 함석헌 저작집을 통해서며, 함석헌에 대해서 다루는 좌익 진영 학술논문을 해설서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문화를 농촌공동체주의 정서로 세뇌하고 대중을 그렇게 넣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이웃에 대한 연민 투사만 강조됩니다. 그리고, 아담스미스의 자본주의 심리학인 [도덕감정론]인 공정한 조건에서 자기보기가 아니라, “우덜만 궁물 먹고 잡아라”의 관점이 넘치게 됩니다.
이미, 온 사회는 이런 민중신학 샤머니즘 굿장단에 오염됐죠. [조선일보]도 그러하고, 조갑제기자의 징기스칸 타령도 정확한 의미의 샤머니즘 무속신앙 서사무가 문화에 연결되는 겁니다. 그런 영웅 설화는 지극히 의타적이고 腦가 멈춘 대중들의 막연한 소망 투사 놀이가 전부입니다.
함석헌은 대중들에 박힌 무교(무속신앙)과 기독교를 조인트 시킨 사람으로 정리해야 합니다. 무교를 통해서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와 국꿇여 먹게 결합하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 결합은 뻔하죠. 권력 장악하려면 표가 필요한 겁니다.
그런 권력장악에 대중들은 반만년 농촌살이로 이웃에 정을 주는 습관이 있으니, 어느 정도 되면 조직은 자연히 늘어나게 됩니다. 엘리트는 대중이 돼지몰이가 딴데로 가지 않게만 신경쓰는 사육사처럼 하는 기능에 머무는 거죠.
이게 자유일까요?
이런 속에서는 끝없이 대중들을 우민화 마비시키며 당근으로 조종해야 합니다.
이런 구조. 결국은 대중을 우민화시키고 그것을 엘리트가 조종하게 하여 권력장악하고, 권력을 씨알의 이름으로 대한민국기둥뿌리 뽑자는 거.
그것을 막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공적 가치의 복원이고, 그것은 기독교 신앙 복원을 통한 함석헌을 통해온 무속신앙과의 전쟁을 요구합니다.
결국, 세월호 시위는 간단합니다.
(1) 야당은 농촌 공동체 정서로 정부가 매정하다는 것이고
(2) 우덜 보수는 농촌 공동체 정서로 대중을 묶어 세우는 야당이 뭐냐?
이걸로 정리됩니다.
농촌 공동체 정서로 정죄하는 것도 웃기지만, 더 이상 정죄받을 이유도 없죠. 그러면, 민중신학의 창시자인 함석헌이 엘리트 사회에서 배제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