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보병사단 사단가
철원뜰 백마고지 싸움터로 삼고서싸우고 도 싸워서 대승을 이룬그 용맹 길이지켜 나라겨레수호에나가자 9사단의 깃발을 높이 들고오너라 풍진아 정의의 방패앞에우리들의 백마부대 9사단의 용사다십만의 오랑캐를 한칼에 쳐 무찔러개가를 높이올린 북진능선에무훈도 찬란하다 역사의 백마용사힘내자 9사단의 불멸의 전승기를오너라 풍진아 정의의 방패앞에우리들의 백마부대 9사단의 용사다중부전선 금화뜰에 터전을 굳게 닦은혈전의 저격능선 이름도 높다다같이 마음엮어 무쇠같이 뭉쳐서받들자 9사단의 찬란한 우리 전통오너라 풍진아 정의의 방패앞에우리들의 백마부대 9사단의 용사다
12·12 군사반란
1979년 전두환.유학성.황영시 등 일련의 정치군인들이 박정희 대통령 사후, 정승화 사령관 등의 비 정치군인들과 군의 주도권을 놓고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 김재규 공모와 관련한 불법체포가 있었다. 이에 당시 육군본부의 정식 라인에서는 이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로 규정하여, 예하 군 병력을 동원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전두환 측의 합동수사본부는 전 군의 하나회 인맥을 동원하여 이에 대응하여 육군본부 중앙청 국방부 등을 기습 점령하였다. 당시 신군부 측에 가담한 노태우 9사단장은 예하 부대인 9보병사단 29연대 병력을 중앙청 앞으로 진주함에 따라, 12.12사태가 성공하는데 큰 일조를 하였다.
출처: 위키백과 9사단편, 파주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