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점령한 히틀러는 멈추지 않고 영국에까지 손을 뻗치려 한다(바다사자 작전)
영국 본토에 대한 해상 공격과 공수부대 투입을 위해서는 우선 영국의 제공권을 독일이 확보해야 했다
제공권 장악 외에 영국의 각종 산업 기반 시설을 폭격함으로서 영국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휴전이나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독일의 공군력은 세계 제일~!]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 사령관 괴링은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영국의 900여대 전투기 중 당장 가용 가능한 전투기는 670여대로 추정되었으며
독일 공군은 매달 300여대의 영국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공업력으로는 매달 200대의 전투기를
새로 생산해 낼 수 있으므로 달이 지날 때마다 영국 전투기는 100대씩 사라질 것이다
이 계산대로라면 3개월 내에 영국의 제공권은 독일이 확보하게 될 것이었다
1940년 7월 영국 본토 항공전이 개시된다. 비행장이 폭격되며 영국 공군은 내륙으로 후퇴해 간다
항속 거리 문제가 있었으므로 독일 공군은 이후 소모적인 런던 폭격을 감행한다
1주일간의 항공전에서 영국은 120대의 전투기를 잃었으나 독일은 오히려 300여대의 전투기를 잃는다
[이...이게 아닌데...]
독일의 계산과 달리 영국은 매달 500여대의 전투기를 생산하고 있었으며 1400명이 넘는 파일럿을 유지했다
잘못된 예측으로 빚어진 전력 소모는 엄청났고 독일은 9월까지 1800여대의 전투기를 잃는다
더군다나 독일의 런던 폭격은 오히려 영국인들의 분노를 자극해 휴전이나 항복은 커녕
전 영국 국민이 전의를 불태우며 독일에 거세게 저항하는 결과를 낳는다
영국 항공전의 패배는 패전의 위기감에 빠져 있던 영국을 구하는 동시에 독일 공군은 우수한 파일럿들과 전투기를 잃으며
이후 개시되는 소련 침공에서 그 공백을 여실히 드러내게 된다
[베니토 무솔리니]
한편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는 독일의 추축 동맹에 가입하여 해외 식민지 확장을 노린다
주요한 자원인 중동의 석유를 확보하려면 북아프리카 지역을 점령한 영국을 몰아내야 했다
1940년 9월 13일. 이탈리아 군은 이탈리아령 리비아에서 수에즈 운하와 알렉산드리아를 목표로
영국령 이집트를 공격한다. 북아프리카 전투의 시작이었다
50만명의 이탈리아군과 3만 5천명의 영국군이 격돌한다. 영국은 오히려 과감한 반격 작전을 개시해
이집트 국경 100km 지점에서 이탈리아군을 격퇴하고 1941년 2월 그들을 벵가지 지역까지 후퇴시킨다
아예 영국군은 800km를 더 전진해 이탈리아령 리비아를 점령하고 이탈리아군 13만명을 포로로 잡는다
이탈리아군은 이 충격적 패배를 감추며 독일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뭐 이런 병신들이...]
독일은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편성하고 사령관으로 롬멜을 임명해 리비아 트리폴리로 보낸다
북아프리카의 패권을 두고 영국 및 동맹 연합군과 추축 독일군은 이집트 국경 지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게 된다
진정한 북아프리카 전역이 시작된 것이다
간단하게 보는 2차대전사 (1)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전역
http://www.ilbe.com/2076906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