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민족정서’를 그런 식으로 본질화해서, 기득권이 아닌 국민에게 “혼란을 감수하고 잔소리 말라”고 강요할 이유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식의 씨족·파벌 중심 사고, 자기 기준의 규칙을 절대화하면서 타자의 기준을 외면하는 습속은 분명히 조선 후기 붕당정치와 성리학적 군자·대동 담론에서 강하게 나타났고, 오늘날에도 정치·언론·종교·지역 네트워크에서 변형되어 반복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문화적 잔존이 법치와 비인격적 시장 규칙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민족정서’ 전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동시에
도 존재합니다. 한국이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시장경제 성장과 민주화, 법치 제도화를 이룬 사실 자체가 그 반증입니다. “씨족주의 때문에 법치·시장경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정론은 역사적 성과와 맞지 않습니다.
인용하신 시정연설의 핵심 프레임(“소수의 성장 → 모두의 성장”, “성장이냐 분배냐의 낡은 이분법 탈피”)은 한국 정치에서 30년 가까이 반복된 레토릭입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집권세력이 자주 사용하는 “포용적 성장”, “균형 발전”, “양극화 해소”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담론이
는 별개의 실증·정책 문제입니다. 후자에 가깝다면, 말씀하신 “군주와 당파색이 맞는 것만 취합하고 ‘모두’라고 말하는” 패턴과 겹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어권 경제원론에 대한 공식적인 엿먹어 선언”이나 “성리학적 음양론의 원색적 권력주의”로 바로 환원하는 것은 해석의 비약입니다. 비슷한 포용 성장 담론은 서구 진보·보수 양측에서도 나타납니다(inclusive growth, stakeholder capitalism 등).
K자형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적하신 “부채를 통한 자본시장 확장”이 근로소득을 앞지르는 구조는 한국만이 아니라 많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이를 단순히 “호남 동학·유교 대동 모델로의 회귀”로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문화결정론입니다.
질문의 핵심에 대한 직접적인 답입니다.
아닙니다.
한동훈·오세훈 지지층이든, 장동혁 지지층이든, 이재명 지지층이든, “자기들끼리의 세계”를 절대화하고 보편 규칙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면 같은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이 맞습니다. “중립 언어가 사도덕 세상에선 안 통한다”는 지적도 일부 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 규칙과 사실 기반 논쟁을 포기하면 남는 것은 더 강한 파벌 대결뿐입니다.
특정 정치인이나 진영의 옹호/비난이 아니라, 제도가 사람을 제약하는 방향이 강화되느냐, 사람이 제도를 파벌적으로 도구화하느냐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생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