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학 시인 칼럼니스트
영화 '암살자들'의 끝은 김재규였다
'암살자들'이라는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을 다룬 영화를, 필자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리고 이 영화의 등장이 이재명 집권 2년째라면, 영화는 이재명 집권이시작되자마자 즉시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정말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다루고자 한 것인가. 또 다른 의도는 없는가. 의문이 짙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화적 목적이 단순히육영수 여사로 끝난다면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자본을 업고 국책은행을 동원하여 제작비로 수백억을 들인 그들이 단순히 오락 목적의 흥행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들은 보다 깊은 음모를 위한 선무공작(宣撫工作)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영화를 영화로만 봐달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하얀 목련꽃을 보는 듯한 단아한 영부인.그분의 죽음을 남편 박정희의 음모로 각색한, 그 어이없는 전개과정에서 필자가 본 것은 '박정희 무너뜨리기'였다.
2026년 8월 14일 필자는 페이스북에 올라있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그것은 이재명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에게 국가유공자로 인정한다는 국가유공자 증서였다.증서엔 2026년 7월 24일자 보훈부장관 권오을의 성명과 직인이 찍혀 있었다.
증서의 진위는 곧 확인되었다. 그 사진을 복사하여 보내자, 곧 AI로 작성된 것 같다는 응답이 왔다.다시 확인한 결과 증서에 씌여있는 김재규의 출생년도가 거짓이었다. 김재규는 1930년생이 아니라 1926년 생이었다.
아마도 인터넷 곳곳에 떠돌고 있는, 이 AI로 만든 사진을 보고 분기탱천한 어느 페친께서 보낸 것으로 보였다.사진과 함께 적힌 그분의 글은 거의 피를 토하듯 분개하고 있었다.
필자도 지난 문재인 시절, 역대 국정원장 사진이 걸려있는 국정원에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던 김재규 사진이 부활했다는 말을 들었다.검은 천이 치워진 것이다. 문재인은 김재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상식 밖의 사건에 필자 역시 피를 토하였다.
이 나라 대한민국 5000년 역사에서 오직 단 한 분, 가난으로부터 백성을 구제한 분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박정희 대통령은 한글 창제의 위업을 이룬 세종대왕 이후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 받는 분이시다.등소평마저도 정신적 멘토로 삼았다는 박정희 대통령 아니신가.
6.25 전쟁으로부터 발생한 수많은 비극 속에서도, 배고픔은 몸부림치도록 헤어나오고 싶었던 절망이었다.부모형제를 잃고 떠도는 부랑아, 구걸하며 다니던 행려병자들은 전쟁 이후에도 수없이 길거리에서 죽어갔다.시체와 원한이 가득한 산천에 보릿고개는 븜들판을 떠나지 않고 유령처럼 맴돌고 있었다.
어린시절 잘 먹지 못하여 키가 작았던 박정희는 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독일을 찾아갔다.그리고 빌브란트 수상 앞에서 지원을 요청했다.탄광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던 동포의 손을 잡고, 눈물 젖은 눈으로 반드시 부강한 나라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육영수 여사도 당신의 세 남매의 도시락에 보리쌀을 넣었다.문세광의 흉탄에 서거하신 날, 여사의 속옷을 본 간호사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속옷은 여러군데 기워져 있었다.박정희 대통령께서도 낡아빠진 헌 허리띠를 매고 계셨다. 이 두분의 검소가 말하는 것은 '삶의 깨끗함'이었다.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성공리에 끝나자 돈이 조금 모아졌고,대통령께선 첫 문화사업으로 한산도에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충무사를 건립하였다.
도로와 항만을 정비하여 기간산업을 육성하고, 석유화학 공단을 만드는 한편 수많은 기업을 양성하여 부국을 향한 꿈을 견인하게 하였다.그 기업들이 오늘의 삼성이고 현대이며, LG이고 한화이다.
메아리도 살지 못하던 민둥산을 보면서 자란 필자는 우거진 산이 무엇인지 몰랐다.일년에 잘해야 한두번 먹던 돼지고기는 그냥 꿈이었다. 그렇게 자란 우리는 원조로 나온 가루분유를 먹고 설사를 했다.우리들의 위는 우유를 소화시킬 만한 능력이 없었다. 기름진 음식도 설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와집에 산다는 것도 꿈이었다. 1년에 한번 지붕을 갈고 이을 때마다우리는 노오란 황금색 지붕을 보면서 배부른 세상을 향해, 얼마나 간절한 희망을 가졌는지 모른다.
김재규는 조국근대화를 위해 신명(身命)을 다한 영웅의 가슴을 쏜 것이다.도도히 흐르던 강물의 역사를 멈추게 만든 역사의 배반자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꿈을 쏘았다.
김재규도 한때 건설부 장관이었다.그는 고속도로와 항만 등 건설사업이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를 잘 알았던 사람이다.김재규는 도로와 항만 등 건설의 희망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이었다.그는 북한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대한민국 파괴를 위해 간첩을 남파시키는지, 남로당 잔존세력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지, 이런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다.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생명을 노리는 북한간첩들이 끈질기게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다.육영수 여사의 암살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박정희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주군의 심장을 쏜 것이다.
그의 행위를 가장 기뻐했던 자는 북한의 김일성이었다.김일성은 박정희 죽음을 통일의 기회로 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공작이 이루어진다.
김일성의 지도없는 남한의 소요와 사태는 단언코 없었다.김일성은 남한적화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6.25 전쟁범죄자였다.그가 벌인 적화를 위한 설계는 남한에 벌어진 온갖 시위와 혼란이었다. 소위 민주화란 이름의 혼란이었다.
따라서 박정희의 죽음을 간절히 바란 자는 김일성이었다.수많은 테러와 암살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김일성은 남한적화의 꿈이 자기 생전에는 이룰 수 없음을 초조해 하고 있었다. 이때 김재규가 나타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불과 7개월만에 5.18이 발생한다. 김일성이 소원하던 남한적화, 바로 그날이었을 것이다.그러므로 김재규는 5.18을 발생시킨 비극의 주동자가 분명하였다.
김재규는1980년 5월 24일, 광주 5.18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형이 집행되었고, 그리고 잊혀졌다따라서 이러한 김재규를 오늘날 다시 부활시키려는 자들이 바로 문재인과 민주당 중심의 주사파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김재규를 5.18과 연결시키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김재규 국가유공자론이 괜히 나온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출연배우들은 입이 열 개가 있어도 귀와 입을 닫아야한다.음모의 깊이에 반역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5.18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김재규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5.18과 어떤 관련도 있을 수 없다.
김재규는 차지철과의 불화를 해결하려다가 대통령까지 시해한, 강상(綱常)의 윤리를 범한 범죄자다.이런 자를 '박정희를 처단한 민주화 열사'라고 미화할 수는 없다.
박정희를 저주하는 그들은 사상과 이념의 외눈박이 정신병자들이다.지금 대구역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허물고자 하는 자들이 누구이겠는가.
우리는 일방적인 박정희주의자가 아니라 역사를 바로 보고자 하는 구국(求國)의 민초들이다.우리는 역사를 편견으로 보지 않는다. 역사에서 빛을 찾고 자랑과 긍지를 찾는 사람들이다.우리가 찾아낸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움 속에 박정희 대통령은 거인(巨人)의 모습으로 서있다.
그러므로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박정희 죽이기'로 몰아간 자들은 누구이겠는가. 김재규? 그는 어둠이다.따라서 나라가 뒤집힌다 해도 우리는 배신과 반역을 두둔할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함이다. 그 위대함은 우리의 행복이다. 박정희라는 시대의 위인을 보유했던 행복.그리하여 위대한 행복을 바라보는 너와 나는, 역사를 바로 보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다.
2026. 10. 6.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