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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모레노의 전술적 이상과 대표팀의 현실
서대구방랑자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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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 감독은 젊은 감독답게 패기와 강한 목표의식, 성공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하며,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 축구에도 능하다.
포지셔널 플레이에 기반한 모레노 감독의 ‘공격적 다양성과 빠른 템포’라는 전술적 지향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자신이 예찬하는 4-4-2 전술을 현재의 한국 대표팀에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여러 가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모레노 감독은 과거 감독이 되기 전 《나의 4-4-2 레시피(My Recipe of the 4-4-2)》라는 전술 서적을 직접 집필했을 정도로 4-4-2 시스템의 구조와 전술적 완성도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우루과이전에 이어 베네수엘라 전에서도 고전했던 이유는
첫번째로, 대표팀이라는 짧은 훈련기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전술 난이도 때문이다. 모레노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바르셀로나나 스페인 국가대표팀 시절에 기반을 둔 '정교한 포지셔닝 시스템'과 '유기적인 공간 창출'이다. 훈련 기간이 고작 며칠에 불과한 단기 임시 감독 체제에서 선수들에게 소화하기 벅찬 복잡한 역할을 부여했다.
두번째로, 상대 전술 대응에 한계를 보였다. 베네수엘라 전반전 당시, 상대가 전방에 6명을 일렬로 길게 배치하는 특이한 대형으로 강하게 압박하자, 경기장 안에서 즉각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하프타임이 되어서야 전술을 수정하는 아쉬운 대처 능력을 보였다.
4-4-2 포메이션 특성상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너무 넓었다. 강한 압박 속에서 패스 미스가 잦아졌고, 전방으로 공을 찔러주는 '빌드업의 줄기'가 막히면서 이강인과 손흥민 같은 에이스들이 고립되었다.
미드필더진이 헐거워지다 보니 우루과이전과 베네수엘라전 모두 상대의 역습이 수비진에게 곧바로 직접 배달되었습니다. 핵심 수비수 김민재가 과감하게 전진 수비를 하다가 뒷공간을 노출하는 위기가 잦아졌다.
모레노 감독의 4-4-2는 전방 투톱(손흥민·오현규)과 양 측면 미드필더가 동시에 라인을 올려 압박해야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후방에서 공을 돌리며 압박을 한 번 벗겨내자, 중앙 미드필더(황인범·박진섭) 두 명만 남은 중원 공간이 텅 비어버리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 섣부르게 계속 전방 압박을 시도하다가는 역습 한 번에 수비진이 노출될 위험이 크다 보니, 선수들이 전반 10분 이후로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압박을 자제한 것이다.
또한 선수들이 약속된 공간을 점유하며 짧은 패스로 상대를 가두고, 수적 우위(Overload)를 만들어 세밀하게 공간을 공략하는 축구는 이론적으로는 좋다. 하지만 이러한 전술은 손흥민과 오현규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팀 전체의 공격력까지 약화시켰다. 직선적인 스프린트와 넓은 공간 활용에 강점을 지닌 공격수들이 좁은 투톱 체제에 갇혔기 때문이다.
즉, 모레노의 4-4-2 전술은 대표팀의 짧은 소집 기간 안에 소화하기에는 전술적 난이도가 높고, 수비 리스크도 크다는 단점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모레노 감독 축구 철학이 선수 개개인의 감각이나 기량보다
‘모든 선수의 기계적인 타이밍과 완벽한 공간 동기화’
를 요구하는 고난도 클럽팀 전술이기 때문에 1년에 고작 몇 번 모여 3~4일 훈련하는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이 정도로 엄격한 공간 규칙을 뇌와 몸에 완벽히 입력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 모레노와 데 라 푸엔테 ― 같은 포지셔널 플레이, 다른 해법
현재 스페인 대표팀을 이끄는 데 라 푸엔테 감독은 실리적인 ‘와이드 4-3-3’ 또는 ‘4-2-3-1’ 전술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팀은 클럽팀과 달리 선수들이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데 라 푸엔테는 라민 야말이나 니코 윌리엄스처럼 빠르고 파괴력 있는 전문 윙어들을 터치라인 가까이에 넓게 배치해 1대1 돌파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며, 수직적이고 빠른 템포의 공격을 구사한다. 또한 로드리를 중심으로 수비형 미드필더가 원 피벗 또는 더블 피벗 형태로 중심을 잡아 공수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포지셔널 플레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점유와 압박이라는 전술적 뿌리는 모레노와 유사하다. 그러나 데 라 푸엔테가 선수 개개인의 능력, 특히 이른바 ‘크랙’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보다 직선적인 축구를 추구한다면, 모레노는 철저하게 계산된 대형과 패스 경로를 우선시하는 시스템 중심의 축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대표팀은 클럽팀에 비해 훈련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의 장점을 보다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데 라 푸엔테식 접근법이 대표팀 축구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손흥민과 황희찬의 직선적인 침투와 질주, 이강인의 정교한 킥과 패스 능력을 살리는 데에도 비교적 적합하다.
압박도 마찬가지이다.
스페인 축구의 본질인
"선수가 아니라 공이 움직이게 만든다(Positioning)"
는 핵심 원리는 두 감독 모두 완벽히 공유한다.
하지만 그 공간을 점유하고 압박을 가하는
‘세부적인 방식과 대형의 유연성’
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하며, 이 차이가 바로 모레노호는 짧은 소집 기간에 과부하가 걸리고 데 라 푸엔테의 스페인은 곧바로 조직력을 갖추는 승부처가 된다.
두 감독 모두 선수들에게 무작정 경기장 전체를 뛰어다니는 무식한 체력 소모를 요구하지 않는다. 스페인식 게겐 프레싱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공을 잃어버렸을 때 무리하게 자기 자리를 이탈해 멀리 투지 있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던 그 자리에서 주변 5m 안의 패스 길목을 촘촘하게 동시 차단하는 압박 철학
은 완벽히 같다.
처음부터 선수들이 약속된 간격(포지셔닝)을 유지하고 서 있기 때문에, 공을 뺏기자마자 촘촘한 그물망이 저절로 형성되어 선수가 많이 뛰지 않고도 공을 다시 가져올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왜 모레노는 삐걱거리고, 데 라 푸엔테는 국대에서 즉시 통할까?
문제는 "공격 시 선수를 배치하는 구조(뼈대)의 난이도"에 있다. 이 차이 때문에 짧은 국대 준비 기간에서 두 감독의 성패가 갈렸다.
(1) 모레노 감독: 유동성이 너무 높은 '가변형 4-4-2'
모레노 감독의 전술이 짧은 기간에 소화하기 힘든 이유는, 위치 원칙을 주되 경기 중에 선수들의 자리를 끊임없이 바꾸는 가변성(하브리드)을 지나치게 섞기 때문이다.
공격 시 풀백 한 명을 극단적으로 올리고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을 내리는 등 대형이 시시각각 바뀐다.
선수들이 내 주변 5m 공간을 차단하고 싶어도, 경기 중 대형이 계속 바뀌다 보니 "내가 지금 순간적으로 어느 구역의 5m를 막아야 하지?"라며 인지 과부하가 걸린다. 촘촘해야 할 4-4-2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베네수엘라전처럼 압박 그물망이 통째로 찢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2) 데 라 푸엔테 감독: 직관적이고 안정적인 '고정형 와이드 4-3-3'
반면 데 라 푸엔테 감독은 국대 환경에 맞춰 위치 원칙을 훨씬 직관적이고 단순하게 준다.
명확한 구역 분할
윙어(손흥민)는 터치라인 끝 구역에 고정, 중앙 미드필더(황인범)는 하프스페이스 구역 고정, 수비형 미드필더는 후방 구역 고정처럼 선수들이 경기 중 이동해야 하는 동선과 구역을 아주 명확하고 심플하게 묶어둔다.
조직력 급조의 비결
선수들이 굳이 복잡하게 자리를 바꾸지 않아도 처음부터 완벽한 삼각형 대형으로 경기장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공격 시 정해진 위치 유지 → 공 점유 → 뺏기면 제자리에서 주변 5m 압박"
이라는 공식이 단 몇 일의 훈련만으로도 로봇처럼 즉각 발현될 수 있다.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의 전술은 현대 축구의 최첨단 데이터와 기하학적인 공간 분할을 집대성한 클럽팀 기반의 초고난도 시스템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지나친 정교함'이 단 며칠만 주어지는 국가대표팀 환경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모레노의 전술은 데 라 푸엔테의 전술보다 더 현대적이고 정교하지만, 훈련 기간이 짧은 대표팀에 그대로 이식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대표팀에 이식하기 힘든 치명적인 이유는
훈련 시간의 절대적 부족
맨체스터 시티나 바르셀로나 같은 클럽팀은 이 톱니바퀴를 맞추기 위해 매주 수개월 동안 훈련장에서 발을 맞춘다. 반면 국가대표팀은 시차 적응과 경기 회복을 빼면 순수 전술 훈련 시간이 사흘 남짓에 불과하다.
인지 과부하와 불협화음
정교한 규칙이 몸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 강팀의 강한 압박을 받자,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 "내가 지금 어느 구역으로 가변 침투해야 하지?"라며 순간적인 판단 과부하에 걸린다. 그 결과가 최근 우루과이전과 베네수엘라전에서 나타난 치명적인 패스 미스와 공수 간격 벌어짐, 그리고 수비진의 독박 과부하였다.
현재 스페인 대표팀을 이끄는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이 유로 2024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연이어 제패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모레노보다 전술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대표팀이라는 환경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스페인식 선진 포지셔닝(위치 원칙)의 틀은 유지하되 선수들의 동선을 직관적으로 단순화 시켰기 때문이다. 야말이나 니코 윌리엄스, 그리고 한국의 손흥민, 이강인 같은 '크랙'들에게 억지스러운 전술 부품 역할을 강요하기보다, 가장 잘하는 1대1 돌파 공간을 시원하게 열어주는 실리주의를 택한 것이다.
물론 라민 야말과 니코 윌리엄스는 손흥민, 이강인과 플레이 스타일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전술을 단순화하고 직관적으로 구현하는 해법 역시 달라질 수밖에 있으며, 결국 그 해법은 모레노 감독이 찾아야 할 것이다.
모레노는 데 라 푸엔테의 전술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감독이다. 데 라 푸엔테의 전술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실용적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모레노 감독이 자신만의 정교한 4-4-2 전술로 성공하고자 하는 야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팀이라는 특수한 환경과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전술적 이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약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이 4-4-2 포메이션을 고집할 생각이라면, 공수 밸런스를 위해 손흥민과 이강인 중 한 명에게 확실한 프리롤을 주거나 둘 중 하나를 벤치로 내리더라도
송민규나 정승원 같은 하드워커를 측면에 배치하는 것이 가장 정석적이고 명쾌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송민규와 정승원 선수 역시 모레노 감독의 복잡한 유기적 스위칭 전술을 전술판 그대로 완벽히 소화해 낸 것은 아니다. 에콰도르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그들이 전술을 완전히 이해해서라기보다는, 선수 본연의 성향이 전술의 구조적 약점을 몸으로 때워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모레노 감독이 요구하는 공격 시 변칙 3백 전환, 인버티드 풀백의 움직임에 따른 스위칭은 송민규와 정승원에게도 분명히 낯설고 생소한 고급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강인·손흥민 조합과 결정적인 차이는 '동선이 꼬였을 때의 대처'
였다. 송민규와 정승원 두 선수는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나 공간 이동 타이밍을 완벽히 맞추지 못하더라도, 엄청난 주력과 체력으로 상대에게 다시 달려들어 공을 빼앗아오는 집념(카운터 프레싱)을 보여주었다. 전술의 허점을 활동량으로 지워버린 셈이다. 어제 김민재 선수가 인터뷰에서 지적한 것도 이러한 측면공격수의 수비가담과 활동량이다. 결국 모레노 감독의 4-4-2는 "테크닉보다 먼저 강력한 수비가담과 활동량"이 기반이 되어야 단단해지는 전술이다.
"수비가담과 활동량이 테크닉보다 먼저다"
라는 명제는 현대 축구의 지독한 규칙이 맞다. 2022년 월드컵 우승, 2026년 월드컵 준우승의 아르헨티나도 메시에게만 프리롤을 부여하고 나머지 9명의 선수들이 경기장 전체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메시의 몫까지 커버하는 형태였다. 현대축구에서 수비 부담에서 자유로운 프리롤은 한 명뿐이어야 한다.
압박이 핵심인 현대축구에서 상대적으로 체력적 부담에 취약한 한국 대표팀에 스페인식 전술이 적합한 이유는, 스페인식 압박이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여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레노 감독이 성공하려면 결국 수비가담과 활동량이 좋은 하드워커를 측면에 배치하고 전술을 직관적으로 단순화 하여 선수들간에 인지 과부화와 불협화음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본다.
모레노 감독은 대표팀이라는 특수한 현실을 고려해 자신의 전술적 이상을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축구팬들 역시 변화의 과정과 시행착오를 지켜보며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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