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이 총탄을 쏜 직후의 상황.
대통령 경호실 수행계장 박상범이 권총을 들고 연단을 호위하고 있다.
오른쪽에 총탄을 맞은 육영수 여사와 이를 살피는 김정렴 비서실장이 보인다.
조선일보 임희순 기자의 특종 사진이다. /조선일보DB
지난 23일 개봉한 영화 ‘암살자(들)’이 26일 누적 관객 130만명을 넘기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국 정부 측의 자작극’이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실제 사실에 부합하냐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주요 이슈를 문답 형식으로 팩트체크해 본다.
Q1: 육영수 여사는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서거했나?
그렇다. 국립극장 1층 객석 왼쪽에 앉아 있던 문세광은 실수로 방아쇠를 당겨 왼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다(1탄).
2탄은 앞으로 달려 나오던 중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쐈으나 연단에 맞았고, 3탄은 불발탄이었다.
문세광이 조준한 4탄이 18.2m 떨어진 곳, 단상 오른쪽에 앉아 있었던 육영수 여사의 오른쪽 측두부에 맞은 것으로 당시 수사 결과 발표에 나온다.
5탄은 연단 뒤의 태극기에 맞았다.
육 여사를 이 위치에서 저격할 수 있었던 사람은 객석 뒷열에서부터 달려 나오며 단상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총을 겨눌 수 있었던
문세광 뿐이었다. 단상에 있던 경호원의 위치에선 이 궤적이 나오기 어렵다.
이날 경호원의 오발로 피격당한 사람은 객석에 있던 여고생 장봉화였다.
6~7발의 총성이 녹음됐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실내 극장의 반향음, 철제 의자 소리, 마이크 노이즈 등이 총성과 겹쳐 왜곡됐을 뿐 실제 총격음은 장봉화가 맞은
총탄을 포함해 5발이 맞으며, 탄두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인멸이 아니라 현장 혼란 속의 유실이라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Q2: 문세광은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상황에서 어떻게 달려갈 수 있었는가?
수사 기록 등에 따르면, 문세광이 입은 제1발의 총상은 주요 혈관이나 운동 신경의 손상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를 움직이는 신체 기능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실제로는 신체가 아닌 곳을 쐈으며 ‘지금부터 연극이 시작된다’는 신호였을 수 있다는 영화 속 의혹은 근거가 없다.
Q3: 어떻게 권총을 지닌 채 국립극장 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나?
당시 문세광은 고액의 포드 택시를 빌려 일본 고위층으로 위장했는데, 마침 청와대 경호실에 외국인에게 무리하게 검문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진 상태였다. 유창한 일본어로 “일본 대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문세광을 일본 고위 인사로 착각한 경호원은
그를 비표 확인 없이 통과시켰다. 결국 ‘총체적 경호 참사’였다.
Q4: 문세광이 일본 파출소에서 권총을 훔쳤다는 것이 허위인 것처럼 묘사되는데.
아니다. 문세광은 오사카의 고즈(高津) 파출소에 잠입해 실탄이 장전된 리볼버 권총 2정을 탈취했다.
문세광은 파출소 내 상황과 권총 케이스를 던진 강물 위치 등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한국 측이 이 내용을 전달한 뒤 일본 경찰은
문세광이 강에 버린 권총 케이스를 찾아냈다. 문세광의 진술이 사실과 부합한다는 것을 일본 측도 인정했다.
Q5: 문세광의 배후는 누구인가?
조사 결과 문세광은 북한 만경봉호에 승선해 조총련 간부 김호룡으로부터 공작금 50만엔을 받고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북한은 발뺌했다. 기밀 해제된 구 동독 외교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은 1974년 10월 신임 소련 대사에게
“문세광은 민단의 좌익인데, 이들은 김대중을 추종하는 자들”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북한의 ‘자백’으로 볼 수 있는 외신 보도가 나온 것은 사건 28년이 지난 2002년 5월 13일의 일이었다.
김정일은 당시 방북한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에게 문세광 사건에 대해 “하급자들이 관련된 것으로
(나는)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