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서울 청량리역 승강장에 겉면 도장이 갈라지고 일부가 떨어져 나간 무궁화호가 정차해 있다.
최근 무궁화호의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승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독자 제공
지난 19일 오후 4시 50분쯤 서울 용산역 승강장. 전남광주 광주역에서 출발한 6량짜리 무궁화호 1462편이
서서히 역으로 진입하자 열차 겉면이 낡은 벽지처럼 갈라지고 들뜬 객차들이 눈에 띄었다.
흰색 표면에는 누런 물때가 30㎝ 이상 길게 흘러내려 있었고, 표면이 깊게 긁히거나 패인 흔적도 곳곳에 보였다.
열차 문이 열리자 화장실에서 나는 지린내가 취재진이 서 있던 출입문 앞까지 퍼졌다. 일부 승객은 얼굴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며 열차에서 내렸다.
다른 무궁화호도 사정은 비슷했다.
본지 취재진이 19~20일 이틀간 서울역과 용산역, 청량리역에서 살펴본 무궁화호 10편 중 8편은 겉면 도장이 벗겨지거나 내부 시설이
파손된 채 운행되고 있었다. 한 열차는 금이 간 창문에 가로 약 1.2m, 세로 약 60㎝ 크기의 대형 필름지를 붙인 채 운행하고 있었다.
코레일 직원은 “운행 중 돌이 튀면서 창문이 깨졌는데 아직 정비하지 못했다”며 “이중창이라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민의 발’ 무궁화호 열차가 급격하게 노후화되고 있다.
무궁화호 등을 운영하는 코레일에 따르면 현재 무궁화호 객차 중 도입된 지 20년이 되지 않는 객차는 1칸도 없다.
무궁화호 객차 총 459칸 가운데 150칸(32.7%)이 도입된 지 20~24년, 309칸(67.3%)은 25년 이상 지났다.
보통 객차는 25년 정도 사용하는데, 무궁화호 객차는 3칸 중 2칸이 사용 연한을 넘긴 것이다.
노후화가 심해지면서 승객들이 느끼는 불편함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무궁화호 이용객은 총 3127만명. 하루 평균 약 8만6000명이 이용하고 있다
. 고속철도역이 없는 지역 주민에게는 여전히 필수 교통수단이다.
무궁화호를 타고 매주 서울과 원주를 오가는 송수진(38)씨는 “화장실은 악취 때문에 이용하기 힘든 수준”이라며
“객실 앞까지 냄새가 새어 나와 복도를 지나갈 때는 숨을 참는다”고 했다. 서울역에서 만난 멕시코인 관광객 카를로스(65)씨는
“KTX보다 저렴하길래 선택한 건데, 멕시코 기차만큼 낡고 지저분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미관이나 편의 문제를 넘어 일부 열차는 창문과 내부 시설이 파손된 채 운행되면서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수원행 무궁화호를 탄 박성우(31)씨는 “외관만 봐도 ‘관리가 안 되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며 “운행 도중 멈추기라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코레일은 정밀 안전 진단을 통과한 열차는 안전에 직접적인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지만,
겉면이 벗겨지거나 편의 시설이 파손된 노후 객차가 점점 늘어나면서 승객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코레일은 당초 2028년까지 무궁화호를 모두 폐차하고 신차인 ‘ITX-마음’으로 대체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차가 제때 납품되지 않으면서 퇴역 예정이던 무궁화호를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코레일은 2018년부터 철도 차량 제작사 다원시스와 세 차례에 걸쳐 ITX-마음 474칸 구매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 납품된 차량은 144칸에 그쳤고, 코레일은 지난 3월 계약을 해지한 뒤 다른 제작사에 재발주했다.
추가 차량은 2029~2030년에 차례로 도입될 예정이다. 당초 계획보다 최대 7~8년 늦게 들어오는 것이다.
노후 열차를 충분히 관리하지 못한 배경엔 코레일의 취약한 재무 구조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무궁화호 등 열차 운임은 2011년 이후 동결됐지만 그사이 전기요금과 인건비, 차량 유지비는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코레일의 총부채는 전년보다 1조원 가까이 늘어난 22조1533억원에 달했다.
비용과 빚이 불어나면서 노후 무궁화호를 관리할 여력도 줄었다는 것이다.
코레일은 노후 무궁화호를 2028년까지 새 열차 수준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이다
. 하지만 2년 이상 남은 만큼 당장 화장실과 창문 등 기본적인 시설이라도 먼저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경택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무궁화호는 아직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필수 교통 인프라”라며
“대체 차량 도입까지 기존 차량 유지 관리뿐 아니라 서비스도 적극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