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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역사이다
[박정희 왜곡 바로잡기 ⑤] 박정희는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그대로 베꼈는가?
이재훈작가
15: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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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그대로 베꼈는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이 장면(張勉) 정부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 실행했다는 주장은
사료적 근거가 결여된 단선적 비판
에 불과하다. 우선 어떤 계획을 ‘모방’하거나 ‘표절’했다고 주장하려면 비교의 기준이 될 원본(原本)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비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장면 정부의 공식적인 최종 경제개발계획안은 현재까지 성안(成案)의 실체가 사료적으로 확정된 바 없다
4). 지금껏 확인된 것은 계획 수립 요강이나 미국 측에 제출했던 초안(草案), 그리고 이를 평가한 미국의 보고서와 같은 단편적인 2차 자료들뿐이다. 결국 ‘그대로 베꼈다’는 주장은
비교할 원본 자체가 부재(不在)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근거 없는 비판
에 불과하다.
물론 5•16 직후 독자적인 경제계획을 곧바로 입안할 여유가 없었던 박정희 군부는 장면 내각의 구상과 초안 자료뿐 아니라 이승만 정부의 경제개발 3개년 계획 등을 바탕으로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5). 그러나 이는 이전 정부의 내용을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국가 성장 목표의 명확성, 행정 체계의 일원화, 집행을 위한 권한 집중 등 실천 지향적 요소를 대폭 보완한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수정 계획이었다. 연간 성장률 수치는 장면 정부안의 5.6%에서 7.1%로 상향 조정되었고, 계획의 중점 과제, 투자율, 산업별 목표 등도 현실적 필요에 따라 새롭게 조정되었다 6).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이 단순한 ‘계승’의 수준을 넘어, 두 단계에 걸친 뚜렷한 질적 전환을 통해 전략적으로 진화한 정책이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전환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외환 부족과 심각한 인플레이션 등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하자 기존 계획을 고집하지 않고, 보완계획을 통해 목표와 사업의 우선순위를 전면적으로 조정한 것이었다. 두 번째이자 더욱 근본적인 전환은
자립경제를 지향했던 내향적 발전 노선에서 벗어나 수출을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으로 방향을 돌린 것
이었다. 이는 선행 정부의 구상에 기초했던 자립경제 지향의 내향적 발전 노선을 과감히 폐기하고, 대한민국의 절박한 현실과 잠재력에 입각해 세계 경제 속으로 뛰어든 전략적 결단이자 국제경제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산업화 모델
이었다.
결론적으로 제2공화국의 구상이 정치적 불안 속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필요성을 모색한 탐색적 시도였다면, 박정희 정부는 그 미완의 구상을 실질적으로 발전시켜 제1차 계획 → 보완계획 → 제2차 → 제3차 → 제4차 계획으로 이어지는 장기적•계단식 발전 전략을 구축하고 이를 실질적인 성과로 완수했다. 특히 제3•4차 계획에서 본격화된 중화학공업화, 새마을운동을 통한 농촌 근대화, 국토종합개발과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은 애초 제2공화국 구상의 범위를 명백히 넘어서는
박정희 정부의 독자적인 국가 개조 청사진
이었다.
[주석]
4) 이는 장면 총리의 정치•사상적 유산을 연구•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운석장면기념사업회’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5)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역시 이승만 정부 말기 ‘부흥부(復興部)’가 수립한 「경제개발 3개년 계획안」을 승계•보완한 구상이었다. 따라서 한국형 경제개발계획의 계보는 ‘이승만 정부의 3개년 계획 → 장면 정부의 5개년 초안 → 박정희 정부의 제1차 5개년 계획’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역사적 연속선 위에서 이해해야 한다.
6) 이처럼 새롭게 조정된 1차 계획마저도 1963년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외환 부족 사태를 겪으며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었고, 이는 계획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박정희 정부가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그대로 베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그 논리는 오히려 모방론의 약점을 드러낸다. 1차 계획의 실패가 곧 장면 정부 구상 자체의 한계를 뜻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2공화국의 계획안은 재원 조달 능력과 실제 집행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초안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박정희 정부의 실질적 전환은 바로 이 실패를 딛고 이루어진 전면적 방향 수정에서 비롯되었다.
본문 출처: 이재훈, 『박정희는 역사이다』,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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