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에 잿더미가 된 레바논의 헤즈볼라 거점들)
이번 이란 전쟁에서 최대 수혜국은 레바논이다.
레바논은 헤즈볼라가 결정하던 나라, 지금은 정부가 말한다.
43년 동안 이스라엘과 협상 한 번 못 한 나라가 있다.
레바논이다.
그 레바논이 지금, 전쟁 중에 이스라엘과 합의를 했다.
2026년 4월 16일, 트럼프가 발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걸 얻은 건, 레바논 정부>다. 전쟁터가 된 나라의 정부다.
수십 년간 헤즈볼라 눈치를 봐야 했던 그 정부가, 처음으로 헤즈볼라를 배제하고 이스라엘·미국과 직접 협상 당사자가 됐다.
왜 43년 동안 못 했나?
이유는 단순하다.
<레바논에는 정부 위에 또 하나의 권력이 있었다>.
헤즈볼라다.
이 조직은 정당이면서 동시에 군대다.
1989년 레바논 내전이 끝날 때 다른 민병대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정치권에 들어왔다.
그러나 헤즈볼라만 총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아직 레바논 땅을 점령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총을 쥔 채 의회와 내각에 들어왔다.
<2018년 총선에서는 동맹 세력과 합쳐 128석 중 71석, 과반을 차지했다>.
<내각의 3분의 1 이상을 장악해 헌법상 거부권을 항상 유지했다>.
마음에 안 들면 정부를 무너뜨렸다.
2011년엔 실제로 내각에서 집단 탈퇴해 정부를 붕괴시켰다.
2022년엔 마음에 드는 대통령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선출을 2년간 막았다.
의회에서 12번 시도했고 12번 모두 실패했다.
이스라엘과 협상?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였다.
레바논 정부는 국가였지만 결정권자는 아니었다.
이게 깨지기 시작한 게 2024년 이후다.
이스라엘이 계속 공격했다.
헤즈볼라 대원들의 삐삐와 무전기를 동시에 폭발시켜 수천 명을 한꺼번에 부상입혔다.
<32년간 헤즈볼라를 이끈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를 베이루트 지하 벙커 공습으로 암살했고 핵심 지휘관 수십 명이 연쇄 제거됐다>.
보유 로켓과 미사일의 상당 부분이 소진되거나 파괴되어 처음으로 헤즈볼라가 “이기는 조직”이 아니라 “버티는 조직”이 됐다.
그 틈에서 정치 구조도 같이 흔들렸다.
<2022년 총선에서 헤즈볼라 동맹 세력은 128석 중 60석 안팎으로 과반을 잃었다>.
<2025년 1월엔 헤즈볼라가 반대한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
전직 레바논군 총사령관 출신 조제프 아운이다.
128명 의원 중 99명이 찬성했다.
헤즈볼라는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2주 뒤 총리도 헤즈볼라가 원하지 않는 국제사법재판소 소장 출신 나와프 살람으로 결정됐다.
<헤즈볼라의 반대를 뚫고 대통령과 총리가 동시에 선출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1992년부터 국회의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헤즈볼라의 시아파 동맹 아말 대표, 나비흐 베리도, 2026년 3월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에 아말 소속 장관들에게 침묵·기권하도록 지시했다.
30년 동맹에 균열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시리아를 통한 이란의 보급선도 끊겼다>.
<헤즈볼라는 창설 이후 줄곧 이란의 무기와 자금을 시리아를 통해 받았다>.
2024년 말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이 무너졌다.
<새 시리아 정부는 헤즈볼라 편이 아니다>.
한 번도 끊긴 적 없던 무기·자금 통로가 처음으로 막혔다.
2026년 2월엔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암살됐다.
창설 이래 매년 헤즈볼라에 수억 달러를 쏟아붓던 후원자가 사라져 처음으로 레바논을 챙길 여력을 잃었다.
돈줄과 뒷배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이다.
거기에 경제까지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2019년 금융위기로 파운드화 가치가 90% 이상 폭락했다.
2020년 8월엔 베이루트 항구 창고에 6년간 방치된 폭발성 화학물질 질산암모늄 2,750톤이 폭발하여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전쟁까지 겹쳤다.
<지금 레바논 국민 80%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 있다>.
세계은행은 재건 비용을 최소 85억 달러로 추산한다.
미국·프랑스·사우디아라비아는 이 돈의 지원 조건으로 헤즈볼라 무장 통제를 내걸었다.
레바논 정부로선 거부할 수 없다.
결정적인 건 따로 있다.
헤즈볼라가 스스로 명분을 무너뜨렸다.
레바논 정부와 약속했다.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
하지만 2026년 3월 헤즈볼라가 그 약속을 깨고,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로켓을 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 정부와 아무런 협의가 없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보복이 시작되었고 헤즈볼라 거점 200여 곳을 타격당해 헤즈볼라 대원 2,100명 이상이 죽었다.
그동안은 “레바논을 지키는 저항”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란을 위해 레바논을 끌어들인 조직”이 돼버렸다.
레바논 총리 살람은 즉각 말했다.
“<헤즈볼라가 우리를 이 전쟁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면 이 고통을 피할 수 있었다>”.
<43년간 어떤 레바논 지도자도 공개석상에서 하지 못했던 말이다>.
그래서 지금 레바논 정부가 얻은 게 이거다.
2025년 3월 헤즈볼라 무장해제 계획을 공식 승인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레바논 내 활동을 전면 금지하였고 이란 대사 지명자에게 떠나라고 했다.
<헤즈볼라 군사활동을 공식 불법화하고 레바논 군이 헤즈볼라 거점 수백 곳을 해체했다>.
2026년 4월엔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가 직접 주재하는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직접 협상이 열렸다.
헤즈볼라는 협상 테이블에 없었다.
헤즈볼라는 즉각 성명을 냈다. “우리는 이 협상의 어떤 합의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헤즈볼라가 실질 당사자였고 레바논 정부는 형식이었다.
지금은 뒤집혔다.
레바논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헤즈볼라는 빠졌다.
43년 만에 처음이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정부를 유일한 협상 상대로 인정했다.
국제사회가 레바논 문제를 헤즈볼라가 아닌 레바논 정부와 다루기 시작했다. 재건 자금을 받을 구조가 처음으로 열렸다.
그런데 여기서 끝났다고 보면 틀린다.
4월 10일 휴전 합의문에는 조건이 있다.
<레바논은,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공격을 막아야 할 의무를 진다>.
이스라엘은 공격을 중단하되 자위권은 언제든 행사할 수 있다.
협상에서 진전이 있으면 연장 가능하고 없으면 다시 전쟁이다.
<헤즈볼라는 무장 그대로이고, 레바논 시아파 150만 명의 지지도 그대로이다. <레바논 군은 헤즈볼라를 강제로 해체할 힘이 없다>.
무장해제는 군사 작전이 아니라 정치적 과정이다. 그게 얼마나 길고 복잡한 일인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그래도 이번은 다르다.
헤즈볼라를 지탱하던 모든 축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군사력, 정치력, 보급선, 후원자, 명분, 국제적 지위. 창설 이후 이것들이 동시에 무너진 건 처음이다.
그동안은 레바논 정부가 말했고 헤즈볼라가 결정했다.
지금은 레바논 정부가 처음으로 그 결정권에 근접한 위치까지 올라왔다.
43년만에 레바논에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