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버리지 못한 불신앙 (누가복음 14:1-6)"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사복음서에 나오는 몇몇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우선 살펴보고 나서 본문을 보아야 하는 필요성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한 사건, 혹은 한 문장이나 구절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것을 전체 문맥에서 떼어 내어 설교 주제로 사용할 때도 반드시 그 구절과 관련된 사건과 앞뒤 문맥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잘못하다 가는 하나님의 진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음서 같은 경우에서는 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다른 일련의 사건들을 같이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성경을 보는 눈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 집에 가셔서 수종병이 걸린 여인을 고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할 사안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일을 행하신 날이 안식일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누가는 오늘과 비슷한 사건을 과거에 두 번 기술하고 있고 그 두 번의 사건은 역시 다른 사건들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과거에 수많은 유대인과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신다고 공격을 받으셨다는 점입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신다고 핍박을 받으시게 된 계기는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여 주신 일부터였습니다 (요한복음 5:16). 이 일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귀에 들어갔고 그들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행적을 비판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었을 때, 그들은 그 일을 들어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마태복음 12:2).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마태복음 12:8). 누가는 또 다른 안식일이라고 말하지만, 마태는 이 사건 직 후,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다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때, 많은 소망 없는 악한자들은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긍휼히 넘치고 사랑이 많은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 그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면 그것으로 인하여 율법을 적용하여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율법을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녀이자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양심은 묵살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옳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려는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범하는 죄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긍휼이 넘치는 분이시란 사실을 알고 그것을 역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였기에 예수님께 있는 완전한 순전을 미워하였으며 긍휼 넘치시는 예수님의 성품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그런 예수님의 그런 성품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런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노하셨다고 마가는 기술합니다 (마가복음 3:5).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노하셨지만 그들을 경멸하신 것이 아닙니다. 스펄전 목사님에 표현을 빌리자면 그분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신 것은 그들에 대한 경멸이라기보다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완악함을 슬퍼하셨습니다. 그들이 비록 소망 없는 악한 자이더라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모여서 예수를 어떻게 죽일지 의논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승냥이와 도덕은 쓰레기통에 버린 자를 추종하는 여우들이 손을 잡고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 중에도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은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아마 그들이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보게 하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논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요한복음 9:16). 그리고 그들의 논쟁은 이 사건으로 잠시동안을 일단락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얼마 후,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18년동안 귀신 들려 등 굽은 여인의 질병을 안수하여 낫게 하셨습니다. 그때 거기 있던 회당장이 분노하여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며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회당장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를 외식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시며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러면 18년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을 푸는 것이 합당치 않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했다” 말합니다 (누가복음 13:17).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바리새인들 역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옳은 일을 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아니 여도 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반대하던 자들이 부끄러워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안식일에 기적을 베푸시는 일에 관한한 더 이상 책잡히실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식사를 하시려고 들어가셨다가 수종병에 든 한 사람을 마주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엿보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집에 수종병이 든 여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 여인이 바리새인의 먼 친척일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이 여인은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사전에 이곳에 있기로 준비되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리새인들의 의도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18년동안 몸을 펴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셨을 때, 그분의 말씀을 듣고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 수종병 걸린 여인을 준비하면서까지 예수님으로부터 얻어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수종병이 걸린 여인을 고쳐주고 돌려보내십니다.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치 않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잠잠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또 그분께서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냐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수종병에 걸린 여인을 준비하면서까지 예수님을 찾은 이유는 그분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한 번쯤은 예수님께서 진정한 안식일에 주인이신지 구도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려 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구도자의 입장에서 아직 회심하지 않는 자들의 상태를 극명하게 나타냅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여러분은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저 예수를 찾는 것에도 일종의 희망 비슷한 것은 있습니다. 일종의 어떠한 의식이 깨어 있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예수를 찾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는 그분의 필요성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징조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소망의 불씨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당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는 찾음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명령이지 주 예수를 찾으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믿으라는 것은 명령이고 그 명령이 바로 믿음의 보증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어서 우리들의 보증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지식과 의지로 받아드리고,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기며, 그리스도를 나의 모든 것으로 삼고, 그런 후 다른 어떤 것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기독교를 탐탁치 않아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으나 개중에는 분명히 진리를 찾는 구도자 분들이 계신 줄로 압니다. 그러한 분들은 마음이 열려 있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고민하며 심지어 그분을 “찾기”까지 합니다. 그분들은 나름 성경을 읽고 고민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다시 한번 “정당하게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찾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분은 찾아야 할 분이 아니라 믿고 바라보아야 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질문은 “어떻게 사람이 죄에서 깨끗해질 수 있는가?”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타락하였고 악이 이 세상에 창궐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존재라는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당신의 죄처럼 여기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하여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참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의해 현혹당하여 예수를 찾아 그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왜 죄인이고 왜 죄가 이 땅 가운데 존재하는지 고민하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예수께 나아가 그분을 붙드는 것이 희망을 발견하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예수를 찾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약을 찾기만 하고 그것을 복용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병에서 나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찾기만 하고 믿지 않는다면 찾는 행위로 인하여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단순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하신 것, 즉 그리스도께서 죄의 속죄를 위한 제물이며 죄인들의 구주이신 것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단순한 믿음을 깊은 신비라고 생각하며 접근하려 합니다. 믿음에 접근하려 하지 마시고 그냥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믿기를 원한다면 그 자체로 여러분은 이미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예수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당신은 예수를 찾을 뿐 아니라 그분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한 순간은 양심이 각성 되었었지만 회개하지 않았기에 곧 다시 예수님을 대적하고 그분이 이 번에는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하여 비난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5:2). 이제 저는 예수를 찾는 상태의 위험에 대해 구도자 여러분께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때 진지하게 예수를 찾았으나 예수를 소유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찾는 것조차 포기해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바라보고 그분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도 읽었고 기도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참된 의미에서 그것은 기도가 아니었고 성경을 읽음에도 그 어떠한 생명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구도자인 것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꾸준히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고 말합니다. 언제나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고 있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그 자체에 안주하고 예수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의로운 것이고, 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자각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어떤 만족감을 얻고 자신을 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느낌을 신뢰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신뢰하고 오직 그분 만을 바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저는 예수를 찾는 여러분을 위한 지침을 전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지침은 당신이 믿게 될 때까지 즉 예수를 소유하게 될 때까지 절박한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찾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예수께 피하여 그분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를 찾는 것 만으로는 그 어떠한 혜택도 누릴 수 없음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죄를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눈을 열어 여러분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 여러분은 그저 예수를 찾기만 할 수 없고 반드시 예수를 붙잡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예수께 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당신은 당신의 불신앙을 하나님께 아뢰고 당신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주님께 고해야 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불신앙을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하실 때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절대 불신앙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회개의 영이 임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내가 믿나이다. 나는 반드시 내 불신앙을 극복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속히 임하여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