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1차 침입- 몽골이 쳐들어온뒤 씹막장 고려는 진짜 개같이 털리고 개경 포위당함.- 수도 포위당한 상태에서 고려 정부는 항복선언함. 인질을 보내고 공물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함.- 고려의 약속을 믿고 만족한 몽골군은 돌아감. 원래 몽골도 유목민족 특징상 항복은 순순히 받아주고, 항복을 한 적은 약탈은 하더라도 웬만하면 죽이질 않음. 다 죽여버리면 다음에 약탈을 못하잖아.- 아무튼 번외로 1차 침입 중 고려 의병들은 항쟁을 시작하는데- 충주성 같은 경우 관리들 다 튀고 백성들만 남아서 몽골군 막은게 대표적 사례임.- 이후 1차 침입 끝난 뒤에 성안에 있는 식량과 재물을 도망간 관리의 허락 없이 손댔다며(싸우는 동안 관아에 있던 군량먹음)- 군량에 손댄 반역죄를 저지른 충주성의 의병들을 고려 정부에서 처벌하는 아름다운 한민족의 기상을 보여줌.결론 : 고려정부 항복 후 강화. 몽골 승리.
몽골 2차 침입
- 지난번엔 개경에 있어서 졌으니, 왕과 귀족은 강화도로 튐.- 싸움을 해서 이길 순 없으니, 유목민족인 몽골놈들 돌아갈때까지 버티면 된다는 생각.
- 결국 정부는 싸우지 않고 백성들이 의병일으켜서 알아서 막다가 승병인 김윤후가 살리타 저격해서 죽이고 승리. 관군이 아니라 의병이 몽골군을 물리쳤음.
결론 : 총대장 살리타가 의병에 죽었고, 몽골군 철수. 고려 승리.몽골 3차 침입- 몽골군이 물러가길 기도하며 고려정부는 강화도 섬에서 불경을 만들고, 부처님께 몽골군이 물러가길 기도 드림.- 총 4년간 몽골군이 구석구석 고려를 초토화하고 약탈 한 뒤 돌아감. 이번엔 경상도 전라도 끝까지 남김없이 약탈.
- 그러는 동안 강화도 무신정권의 수장 최우는 전국에서 세금을 걷고 잣나무와 향나무등을 강화도로 싣어와 대저택 지음,
여기서 궁금해야할게
- 나라가 씹창인데 세금은 어떻게 걷고 저택은 어떻게 짓겠냐고?
세금 안내는 촌락에는 삼별초를 보내서 세금거둠. 백성들은 고려와 몽고 두군데에 세금을 바침.
몽골에게 죽든 말든, 고려의 백성인 이상 세금은 내야 하는 것임.왕과 무신이 강화도에서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죽더라도 세금은 내고 죽어야 하는 것임.
그래서 재물과 사람을 섬으로 데려와야했음.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 사람 데려와서 농사시키고, 나가서도 주기적으로 약탈했음.
먹고 살아야 하니깐.ㅡㅡㅡ
"장군 송길유(宋吉儒)를 보내어 청주(淸州)의 백성을 섬으로 옮기게 하였다. 길유는 백성들이 재물을 아껴 옮기기를 싫어할까 염려하여 공사(公私)의 재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이 일보다 먼저 최항이 사신을 여러 도에 보내어 주민들을 모두 몰아서 섬 안으로 들어가는데, 명령을 좇지 않는 자는 집과 전곡을 불태워서 굶어 죽은 자가 열에 여덟ㆍ아홉은 되었다."─ 고려사절요 1256년 ㅡ
송길유가 경상도 수로방호별감이 되어 각 고을의 인물을 검찰(檢察)하여 섬으로 들여보내는데, 영을 좇지 않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때려 죽이고, 혹은 긴 새끼로 사람의 목을 잇달아 엮은 다음 별초를 시켜 양 끝을 잡고 끌어서 깊은 물 속에 던져 거의 죽게 되면 꺼내고 조금 깨어나면 다시 그와 같이 하였다."─ 고려사절요 1258년 ㅡ
ㅡㅡㅡ
- 별초들이 저렇게 바깥세상에서 템 파밍해오는데, 고려가 풍족한 국가는 아니라도 좁은 강화도 하나 먹여 살린다면야 풍족하기 그지없지.- 그렇게 무신 정권의 최우와 문신들은 수만명의 별초들이 튼튼히 지키는 지상낙원 강화도에서 주기적으로 주지육림 즐기면서 시짓기 대회하고 자기들끼리 술마시며 즐겁게 놀았음.
ㅡㅡㅡ오랑캐 종족이 완악하다지만 어떻게 물을 뛰어건너랴.저들도 건널 수 없음을 알기에 와서 진치고 시위만 한다오.누가 물에 들어가라 명령하겠느냐. 물에 들어가면 곧 다 죽을 텐데.어리석은 백성들아, 놀라지 말고 안심하고 단잠이나 자거라.그들은 응당 저절로 물러가리니 나라가 어찌 갑자기 무너지겠는가.이규보 - 동국이상국후집 권 5 고율시 89수ㅡㅡㅡ
- 최우와 술친구이던 이규보가 지은 이 시만 보더라도, 당시 지배계층들이 상황 어떻게 보았는지 실감 남.
- 무신들은 수만의 사병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별초는 이와같이 대몽항쟁이 아니라 촌락민들 진압하며 지상낙원을 영속하기 위해 삥뜯는데 주로 쓰임.
(미리 말해두는데, 무신정권은 삼별초를 대몽항쟁 기간 내내 거의 쓰지 않음. 나중에 이야기할 대몽 항쟁 최후반기 쯔음에(고려 완전 항복하기 직전에) 몽골이랑 몇백명 단위로 싸운게 서너번나오는 정도)- 아무튼 이후 좀 더 버텨보다가 고려가 몽골에 다시 항복하고, 이번엔 고려왕이 몽골에 입조하기로 약속함.
결론 : 왕이 입조하기로 약속 했으니, 3차 침입은 몽골의 승리.
몽골 4차 침입
- 고려왕은 당연히 입조 안하고, 고려 정부도 개성으로 천도 안하고 계속 강화도에 있음. 누가봐도 너네말 들을 생각 없다는 것.- 조운제도를 통해 고려정부는 열심히 세금을 걷으러 다니고 섬에서 안나옴.- 또 통수맞은걸 알게 된 몽골은 빡쳐서 고려에 다시 군대를 보냄.
- 근데 이번엔 원정중에 몽골 왕이 죽음.- 몽골은 왕이 죽으면 군사 이끌던 장수들이 전부 돌아가야 함.- 고려는 "돌아가면 저희가 이번엔 진짜 입조할게요 ㅎㅎ" 하면서 이번에도 약속을 함.- 몽골군 회군.
결론 : 솔직히 4차 침입은 시작하자 마자 끝나서 내용이 없는데 고려에서 강화 제의한 것도 사실이지만, 몽골에서도 딱히 전투(하나 있긴한데 소규모 전투임) 치르지 않고 철군해야 해서 철군한거라 좀 애매함. 싸운것도 없어서 걍 무승부로 침.
몽골 5차 침입.- 아직도 고려는 출륙(개경으로 돌아감)을 하지 않고 강화도에서 뱃놀이하며 뻐기고 있었음.- 몽골이 강원도 지역 싸그리 털고 슬슬 충주로 가는데- 충주에 있는건 2차 침입때 살리타 죽였던 김윤후와 그때 김윤후 도와서 싸웠던 의병대들.- 1개월간의 치열한 공성전 끝에 몽골에서 충주성 함락 실패.- 몽골군은 개성에서 목가적인 살육의 나날을 즐기고 있는 와중- 고려 고종이 육지로 나와 몽골 사신과 만남.- 이번엔 진짜 항복하겠다며 왕자를 인질로 보내겠다고 하고 실제로 보냄.
- 몽골에선 고려에서 드디어 말을 듣는다며 왕자를 후히 대접하고, 이번엔 진짜 고려가 부하가 된거라 믿음.- 근데 사실은 왕자가 왕의 친척이었고, 왕의 친자가 아니었음. 통수 씨게 맞은 몽골에서 이 부득부득 감.
결론 : 통수는 예술 적으로 잘 쳤지만, 어쨌든 항복하고 왕족 인질로 보낸거라 몽골 승.
몽골 6차 침입
- 이번엔 고려 왕이 직접 입조해야하고, 무신정권 최고 집권자인 최항도 같이 몽골에 오지 않으면 전부 죽이겠다고 몽골에서 선언.- 몽골도 드디어 느낀게 있었는지, 아니면 이때 쯤 되어서야 수군이 양성된건지 이번 6차 침입엔 수군을 동원함.- 강화도에 짱박혀서 시짓기 대회하고, 술쳐먹고 고려 전역에서 백성들에게 걷어온 세금으로 호화로운 저택 짓고 뱃놀이 하던 귀족들과 무신들도 이번엔 진짜 좆된거 같다고 느낌.
- 그 전에는 그래도 항복하라는 식으로 세금이나 뜯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마주치는 족족 다 죽이면서 내려옴.
(포로가 된자 20만 이상, 죽은자는 셀 수도 없다고 사서에 기록 됨)
- 충주 다인철소 전투에서 의병이 몽골군 격퇴, 상주에서 몽골군 격퇴.- 몽골 왕의 명령으로 회군.결론 : 가장 많은 고려민이 죽긴했지만, 몽골에서 일방적인 회군을 한거라 고려 승.
몽골 7차 침입~9차 침입
여기서 부터가 중요함. 7-9차침입은 개별적인 침입이라기보단 한번의 침입이라 보는 시각도 있음. 이전처럼 몽골군이 와 하고 내려와서 고려에서 싸우다가, 이후엔 완전 철수하고 이런개념이 아님.이 때부터 몽골군의 성격이 바뀌는데더 이상 고려정부를 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단, 그냥 저 병신새끼들 강화도에 처박히든 말든 '우리는 고려를 다스린다.' 라고 선회.
유목민들 특유의 전술인 존나 때리고 빼앗은 뒤에 물러가서 회복할 시간 주고, 회복하면 다시 가서 존나 때리고 빼앗은 뒤에 다시 물러감이 아니라몽골에서 진짜 관리파견하고 고려땅을 다스리는 통치를 시작하는 시점임.즉 이전까진 일종의 지방정권이 된 강화도 고려정권과 외부자 몽골이 고려를 두고 표면성이나마 대립하는 상태였다면
이때부터는 고려 본토가 몽골이 제대로 통치하는 땅이 되고, 강화도 고려정권이 일종의 괴뢰정부처럼 됨.
몽골이 유목 국가가 아니라 정주 국가로 변모한 영향이 크기도 하고몽골 입장에서도 고려는 한번도 만난적 없는 기묘한 항전을 하는 국가였음.보통 저런식으로 전국토 유린하고 백성들 죽이면지배자인 영주가 군사 이끌고 나와서 회전을 붙거나, 정부에서 전 병력을 끌어모아서 결전을 하길 마련인데지배자들이 몽골군이랑 똑같이 세금 걷으러 다니면서 백성들 약탈하고, 몽골군과 항전한 백성들까지 식량들 니들 마음대로 손댔다며 죽이는건몽골군 입장에서도 선넘은 짓이고 예측이 안갔던 짓임.
몽골군도 항전한 적은 죽이지만, 항복한 적은 죽이진 않는게 법칙이고 그거 어기면 엄히 처벌받거든. 약탈도 법칙은 있게 했었다는 거임.그리고 지배자에겐 지배자의 의무나 자존심같은게 있는데, 고려 정부같은 경우는 백성들을 지키겠다는 의무도 없고, 석년 강조처럼 내 밥그릇에 숟가락 넣는 외적과 싸우겠다는 자존심 같은것도 없었음. 오히려 몽골보다 더 몽골스럽게 백성들 약탈만 하는거임.
수만명이나 되는 삼별초가 강화도에 있는데도 적과 싸움을 안하고 자기네들 백성들 죽이는데 동원을 한다는게 몽골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갈 수 밖에 없음. 거기에 항복의사를 수차례나 밝혔음에도 항복을 안하고 가짜 인질을 보내대니 다시 쳐들어 오는거지.
항복이든 전쟁이든 몽골 입장에서도 고려정부랑 뭔가 협상다는게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
- 6차침입 때부터 수군을 본격적으로 운용한 몽골군은 강화도에 상륙을 꾸준히 시도함.- 이 때 쯤 부터 무신정권에서도 삼별초를 대몽항쟁에 조금씩 써먹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니고 몽골군에서 조운 수로를 끊었던 거임.
- 그 이전까지 육지에서 말타고 다니는 몽골군이 무섭긴해도, 배타고 다니며 조운선으로 세금걷으면 되니깐 고려정부에서도 강화도에서 잘먹고 잘살 수 있었는데- 이 시기 부터는 몽골군이 각 포구들 습격하고, 수군 돌리면서 고려의 세금 라인, 즉 조운선이 다니는 수로를 막기 시작함.- 1256년 몽골군이 서해안의 요충지들을 하나하나 점령하고 군선들을 동원하는데, 이 때부터 강화도가 고사되기 시작함.- 본인들 세금 걷는길이 막히니, 비로소야 고려 정부와 무신 정권측에서도 아껴뒀던 사병집단인 삼별초를 몽골군과 싸우는데 써먹기 시작함.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세금 걷고 약탈하는곳의 지배자가 몽골이었던 거에 가깝지만, 아무튼 이때즈음 부터 고려 정부군이라 볼수 있는(사병이긴해도) 별초들이 몽골군과 소규모 교전함.
- 여튼 세금이 안걷히니 지상 낙원 수준이던 강화도에서도 무신정권에 대한 민심이 슬슬 안좋아지고
- 최의 정권 때는 그게 막장으로 치달아서 '강화수획사'라는 벼슬이 생겨나는데- 고려군이 백성들 살던 촌에 들어가서 집과 마을을 불태우고 백성들을 학살한 뒤에 세금을 걷어오기 시작함. 몽골군 보고 배웠는지 몽골군 스럽게 고려 전역을 누비며 '명목상이나마 세금 걷는게 아니라 대놓고 약탈'을 시작.- 이렇게 곡식 뜯어도 몽골에서도 몽골대로 세금 걷을 길을 철저히 차단했기에 강화도는 차츰 굶주려가기 시작함.- 굶주리기 시작한 사대부들과 권신들은 더 이상 무신정권을 신뢰하지 않고, 최의를 죽여야겠다며 반란을 일으킴.
- 최의는 반란군에게 도망치던 중에 뚱뚱한 몸으로 담장을 넘지 못하고 잡혀서 죽음.
- 섬에선 더 이상 희망이 없기에 고려왕과 남은 권신들은 이제야 진짜 항복을 하기로 결정함.
- 그렇게 고려 원종(태자)이 몽골에 가서 정식으로 항복을하던 와중 몽골의 몽케칸이 사망하고- 새로운 대칸이 누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원종은 쿠빌라이칸에게 가서 항복함으로서 쿠빌라이칸이 대칸이 되는데 공훈을 세움.- 그동안 지독하게 항복하지 않았던 고려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는건 나름대로 상징성이 있는 정치적 제스쳐였기 때문에 쿠빌라이가 대칸이 된 뒤 후히 보답하겠다고 약속을 함.- 이후 대칸이 된 쿠빌라이칸은 원종의 성의에 감격하여 '고려의 풍습은 지켜주겠다.'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고려는 몽골의 풍습을 따르지 않는 특권이 생김. 원종이 나름 역베인 쿠빌라이칸을 선택하여 고려의 풍속이 지켜지고 고려 또한 자치권을 지닌 상태에서 몽골천하에 살아남게 된거임.
(솔직히 섬에만 짱박혀있던 원종이 진짜 항복하러가다가 쿠빌라이측을 먼저 만난건지 능동적으로 선택한건진 알수 없지만 운도 이 정도면 실력이라 봐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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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외로 삼별초의 항쟁에 대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을 이야기 하자면.
삼별초는 고려의 항복 이후
승화후 왕온을 왕으로 세우고, 강화도, 진도, 제주도로 이동하여 몽골 + 몽골의 번국이 된 고려정부와 맞서싸웠고
우리는 이걸 삼별초의 항쟁이라고 아름답게 봄.
근데 개인적인 사견이긴하다만, 나는 저 몽골침략 내내, 수십여년간강화도에서 몽골군이랑 싸우는게 아니라 자국민들 살육하고, 삥뜯고 으악죽이던 삼별초가
갑자기 고려 정권이 항복하겠다고 하자 애국심과 민족정기가 솟아나서 몽골과 투쟁하려했을 가능성을 그렇게 높게 보진 않음.
그들이 젊은 시절, 어린시절 부터 보아왔던건, 섬의 지상낙원이었고 몽골이라는 세력이 쓸고간 바깓의 축생도였음.
그런 그들이 진짜 몽골과 맞서 싸우기 위해 난을 일으키거나 제대로된 세력을 구성하거나, 왕을 갈아치우려 개성 진격하는게 아니라
하필 섬을 옮겨다니면서 저렇게 기묘한 항쟁을 했던것도 솔직히 좀 이해가 안감.
정말로 기록도 그다지 없어서 이건 뇌피셜이고 추측일 뿐이지만,
난 삼별초들이 원했던건, 이제 더 이상 갑사들에 불과한 자신들의 기반이 사라질거란 것에 대해 두려움도 있겠지만.
허수아비 왕 하나 세워놓고 고려에서 마음껏 삥뜯던 지상낙원 강화도를자신들의 것으로 다시 재현해보고 싶었던 가능성도 좀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함.
그게 그들에겐 세계였을 테니까.
물론 진짜 권력의 주구노릇을 하다보니 애국심과 민족정기가 수십년만에 불같이 솟아올랐고, 고려백성들이 몽골에게 억압받는게 미워져서어느날 갑자기 대오각성하여 민족적 애국심으로 항쟁했을 가능성도 있음.
각자 생각해보고 믿고 싶은거 믿으면 된다고 생각함.
ㅡ아무튼 이렇게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외왕내제의 황제국 고려는 끝나고, 몽골의 부마국이 되었음.이게 우리가 대몽항쟁이라 부르며, 세계 최강국 몽골과 용맹히 맞서싸웠다고 하며
몽골과 이렇게 잘싸운 국가는 없었다며 자랑스러워 해야한다고 말하는
자랑스러운 한반도의 최전성기 고려의 역사임. 물론 실제로 몽골과 맞서싸워 망한 국가도 많지만 살아남거나 이긴 국가도 있긴있는데.
우리나라에선 그건 안가르침. 고려는 놀라운 투쟁을 해서 속국이 아닌 부마국이 되었고, 그러므로 세계에서 몽골을 상대로 가장 잘싸운 국가여야 하기 때문임.
물론, 바로 교과서 다음장에 고려가 몽골에 공물과 공녀를 바치고 지배층은 부원세력들이 차지해서 국가에서 전횡을 저지르고(속국이 아니라는데 왜 부원배들이 이러는지, 왜 왕의 이름엔 몽골황제에게 충성한다는 충자가 붙었는지는 알 수가 없음.)
왕조차 몽골여자와 결혼해야 하며, 몽골에서 왕을 갈아치우고 몽골보다 심양왕이 좋다고 말하는 고려왕의 역사또한 나오지만, 어쨌든 그건 속국이라는 증거가 아니며 부마국이 얻는 일종의 혜택이라고 우리는 주장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음.
왜냐하면 고려는 속국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임.
위대한 한민족의 국가가 속국일 수는 없는거임.
그래서인가 교과서를 보면 이런걸 그대로 적을 순 없기 때문에
몽골 항쟁부분은 유독 지배층에 대해서 적기보단 본토 백성들의 의병항쟁을 주로 서술함.
- 충주성 전투 백성들이 막았음.
- 공주 다인철소전투 백성들이 막았음.
왜냐하면 진짜 좋게 적을게 거의 없고, 그나마 저렇게 의병 항쟁한게 가장 좋은 기록이라서임.
못믿겠으면 귀주성 전투나, 안시성 전투처럼 정부에서 몽골 상대로 싸운 기록 있었는지 생각해보셈.거란 전쟁같은 경우엔 정부가 수만 수십만명 상대로 제대로된 싸움을 했지만
세계최강 몽골을 상대로 처절한 투쟁을 했다고 가르치는 몽골상대로는
정부가 도망만치고 진짜로 한거 없음. 처음쳐들어온 1차때 이후론 정부는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쳤고 아무것도 안했음.
그렇지만 우리는 이게 아름다운 투쟁의 역사라 배웠고, 위대하다고 믿고 있음.왜냐하면 고려는 위대한 국가이고 한민족은 위대해야하기 때문임.
그러므로 고려시대는 한반도의 최전성기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