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갤에서 펌___________________
요새 자꾸 생각나는 일화야. 이번 사태는 갑자기 터진 게 아니야.
수십년간 빌드업한 결과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약 20년 전 겪은 일을 바탕으로 작성했으니깐. 마음에 들면 개추해줘.ㅡ.신문사에 들어가고 싶었다.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이념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편견에도 기대지 않는 언어로 세상을 해부하는 사람.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문장, 그런 것을 쓰고 싶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교내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입회를 원한다고 말하자, 선배는 대뜸 말했다.“논술시험부터 봐야 해요. 주제는… ‘맥도날드를 제국주의 시각에서 비판하라.’”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그러나 선배의 표정은 진지했고,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춘 채 글을 써 내려갔다.뭘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그리고 두 번째 관문. 교수 면접.
면접실 안, 중년 교수는 다정한 미소를 띤 채 내게 질문을 던졌다.북한과 남한을 형제에 빗댄 뒤, 끊임없이 유도했다.“형이 동생을 위해 폭력을 휘두를 수도 있지 않겠나?”“동생이 너무 삐뚤어졌다면?”“살짝 한 대쯤은 괜찮지 않겠나?”
나는 끝까지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어느 순간, 무심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뭐, 살짝 때리는 정도는 되겠지요.”
그렇게 나는 ‘합격’했다.그리고 며칠 뒤, 환영회라는 이름의 술자리에 초대됐다.
그 술집은 학교 근처 지하에 있었고, 테이블 대신 숨겨진 작은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그 방 안은 좁고 눅눅했지만, 이상하게도 기밀한 분위기에 흠뻑 취해 들어가게 됐다.소주가 돌고, 웃음이 터지고, 목소리가 커질 무렵—한 선배가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던졌다.찰랑거리는 금속의 소리.김일성과 김정일의 얼굴이 새겨진 뱃지, 그리고 인공기 뱃지들이었다.
“하나씩 골라.”
당시엔 무슨 의미인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그저 기념품처럼 느껴졌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 친구는 그냥 구경만 했다고 한다.그 판단의 차이가 지금까지도 이상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그날 밤, 한 여자 선배가 내게 다가와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북한에서 찍은 사진, 어린아이와 함께 찍힌 선배 자신의 모습이었다.“정말 불쌍하지 않니?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어?”나는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선배의 마지막 말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너도 열심히 하면 갈 수 있어.”
그것이 그 밤의 끝이었다.그리고, 무언가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는 내 주머니에서 뱃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붉은 색이 도드라진 금속 조각.
“이건 내가 알아서 버릴 테니, 다시는 이상한 짓 하지 마라.”
그제야 전날 밤의 뱃지가 떠올랐다.인공기였는지, 김일성-김정일의 얼굴이었는지… 지금은 모른다.이제는 확인할 수도 없다.아버지는 돌아가셨고, 그 뱃지도 함께 사라졌다.
그날 저녁, 또 다른 술자리가 있었다.입회를 축하한다며 술이 돌았고, 나는 어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소주를 마셨다.그때, 동기인지 후배인지 모를 누군가가 다가와 말했다.
“난 그냥, 니가 강남 사는 게 싫다.”
이유도 논리도 없는 분노.이념보다 더 날것의 혐오.“그게 이유가 되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말은 단순했다.“그냥 싫어.”그리고는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내랑 싸우자.”
나는 차분히 말하려 애썼다.“주먹으로 싸우는 건 유치하니까, 술로 싸워보자.”
그렇게 우리는 선배들 사이에 둘러싸여 잔을 주고받았다.몇 잔째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필름이 끊겼고, 마지막 장면은 양팔이 들려 어딘가로 끌려가는 내 모습이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반지하의 낯선 방에 누워 있었다.코를 골며 자는 선배들과 동기들 사이,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여길 벗어나야 해.
숨이 막혔다.구토기가 올라왔고, 나는 문을 열고 나와 무작정 큰길을 찾아 걸었다.그러나 나는 그 길을 다시 찾을 수 없다.그때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바닥만 보며 걸었다.
그리고,그게 끝이었다. 내 신문사 활동은.
그 이후 신문사를 다시 찾은 건, 탈퇴를 통보하러 단 한 번이었다.내가 꿈꾸던 언론은 거기에 없었다.진실에 다가가는 글, 불의에 저항하는 언어, 편견 없는 시선—그 모든 건 환상이었다.
두 번의 술자리. 그게 전부였다.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나는 떠났다.
그런데,요즘 들어 그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STOP THE STEAL.부정선거.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말.다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러나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는 조작의 흔적들,언론의 침묵,무표정한 진실 왜곡의 구조를 보며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 그때부터였구나.
그 뱃지, 그 논술, 그 면접 질문, 그 술자리에 뿌려진 구호와 사진들—그 모든 게 지금을 위한 ‘빌드업’이었다.우리는 그저 이용당했을 뿐이었고, 나는 너무도 오래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제야,붉은 뱃지의 밤이현재의 어둠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밤을 더 이상 잊을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