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은 1653년 제주도에 표류하여제주도에 10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한양으로 압송된 후 1655년 청나라 사신의 행렬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구원을 호소하다 실패하였고 1656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1666년 여수를 탈출하기까지 11년간 줄곧남원, 여수, 순천, 해남 등 전라도에서 생활했다.특히 강진에서는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을 보냈다. 이 인연으로 강진군은 하멜의 고향인네덜란드 호르큼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2007년 하멜기념관을 강진에 세웠다. 하멜은 13년의 조선 생활 중제주도에서의 1년 정도 감옥 생활, 한양으로 압송되던 기간,그리고 한양에서 전라도로 압송되던 기간을 제외하면 전 조선 생활을 전라도에서 했다.따라서 그는 전라도인을 조선인으로 인식하고전라도인의 특성을 곧 조선인의 특성이라 믿고 서양에 소개했다.그가 조선생활 13년 중 11년간 겪고 본 조선인은 오직 전라도인이었기에그가 말하는 조선인은 전라도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교 대상인 다른 지역이 없었던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멜은 전라도인을 어떻게 말했고, 전라도를 통해서 조선인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출처] 헨드릭 하멜의 하멜표류기와 전라도 기질|작성자 랄프위검<조선인은 절도의 버릇이 있고, 또 사기와 거짓말을 일수 잘하야도모지 그들을 신용할 수 없는 정도이다>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전라도는 조선을 대표해 하멜 일행에게 사기치고 뒤통수치며결코 믿을 수 없는 그들 특유의 전형적인 근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그들은 남을 한 번 속여 넘긴 때에는 한 훌륭한 일이나 한듯이 생각하고그리하야 사기는 그들 사이에는 하등의 불명예가 되지 않는다.> 정말 기가 막힌다. 남 속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오히려 훌륭한 재능으로 믿고 가르치는 추한 기질은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난중일기, 성호사설에 그 무슨 경상도 욕이 있다며되지 못한 한자까지 짖어 발겨 파다하게 퍼뜨리고 흐뭇해 하는 기질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그런데 누구던지 만약 자기가 우마 기타 어떠한 물건의 계약에 있어남에게 기만되었을 것 같으면 그는 비록 삼사월이 걸릴지라도 법적으로 보복할 수 있다.> 근데 남은 속이더라도 자기가 속으면 끝까지 보복하는 사람들이다. 정말 희한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하고 또 경신적일 뿐더러이국인을 대단히 조와하는 자들인 까닭에우리는 맘대로 그들을 곧이 듣게 할 수가 있었으며특히 승려에 잇어 그러하였다.>그러나 그들은 외국인이라면 환장을 하고 좋아해서승려를 위시해 동족은 속이고 살지라도 오히려 외국인에게는 속고 사는 모습을 보인다. 전라도의 많은 승려들 이야기는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 제8권 인사문 생재 편에도 나온다. <3형제를 둔 집에서는 아들 하나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역사를 피하게 하기 때문에 도내 곳곳에는 대소(大小)의 사찰(寺刹)이 널려 있다>는 지적처럼 전라도는 아전들의 학정과 납세, 병역을 피하기 위해가정마다 한 명씩은 승려가 되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http://blog.daum.net/ikdominia/59) <그들은 일종 유약한 국민이라 일단 완급의 경우를 당하면 제법 용기와 결심을 내지 못한다> 전라도 평의 하일라이트이다.그들은 남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속이는 데 성공하면오히려 영리하다 자랑스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한편 극도로 비겁해서 위급한 경우를 당하면용기와 결심을 내지 못하는 쓸모 없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이른바 풍전세류란 것이다.위 성호사설에도 똑같은 시각이 등장한다.전라도의 사기 근성에 관한 <사람들은 방술(方術 방사 술법)을 좋아하고 과사(夸詐 큰소리치고 남을 속이는 것)를 잘한다>는 지적, <풍속이 사나워서 나그네가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데, 전주가 가장 심하고,기질(氣質)이 나약해서 추위와 주림을 참지 못하는 것은 도내(道內)가 모두 마찬가지다>는 유약하고 쓸모 없는 기질까지 헨드릭 하멜과 전혀 다르지 않은 전라도인에 대한 평판은 이미 조선 내에서도 파다했던 것이다.
<그들은 비겁한 것을 수치로 여기기 아니하고그리하여 당연히 싸워야될 경우의 불행을 매우 비탄한다.>하멜은 계속해서 전라도의 비열한 기질을 매우 적나라하게 지적한다.알만 한 독립운동가 단 한 명 찾기가 불가능하고 625 참전율은 부끄럽게도 전국 최악의 비율만을 기록한 전라도,그러나 웬갖 독립운동과 구국운동을 지네 혼자 다 한 척나라가 들썩일 만큼 희한하게 사기를 쳐 대는 저력과 근성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추한 인간성에 대한 천년의 전국적 차별을 켜켜히 가슴 속에 쌓아 두었다가마침내 그 앙심에 불이 붙을 때에만 나라가 뒤집어지도록 들고 일어나는 용기를 발휘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피를 대단히 기하여(꺼리어) 무슨 피든지 보면 곧 달아나 버린다>역시나 부끄러운 기질이다.하멜이 전라도를 보고 유럽에 소개한 조선의 이미지는 참으로 형편없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 기타 하멜의 전라도에 대한 평은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병이라면 여간 무서워하지 아니하며,특히 전염병에 있어서 그러하여 시읍이나 촌에서 환자가 발생하면곧 그를 천동하여 들 가운데의 조그만 모옥속에 넣어 둔다...만일 환자를 간호할 동무가 없을 때는다른 사람들은 차라리 그를 죽게 내버려 둘지언정 가까이 하려고(돌보아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병이 들 때엔 자국산의 약초를 복용하는데보통 평민들은 그것을 충분히 알지 못하며모든 의원은 거의 상류인간에 소용되고그리하여 의원을 쓸 형편이 못되는 빈자들은그 대신 맹인과 복자(점쟁이)를 쓰나니 이들에 대하여는 절대의 신용을 바치어 이를 따라 도처로 내와 바위를 넘어 특히 우상신전에 나아가 귀신에게 원조를 빈다.> 당령 전미가 타도에는 없는 오직 전라도만의 풍습임을 적시하며 <그들은 귀신을 숭상한다. 정조관념이 박약하여 인륜을 어지럽히는 일이 허다하다>라며성종대왕에 상소한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http://blog.daum.net/ikdominia/65 하멜의 동상은 여수시 종화동 해양공원에도 세워 놓았다. 무어 그리 기념할 것이 있어 기념관을 짓고 동상까지 만드는 것인지, 매우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