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까지는 반 30명 중에 15등 정도 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도 못하면서 학원 다니는 게 의미 없다 생각하셨고,
엄마는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 하지 않겠냐며 아버지와 자주 다투셨다.
어머니 아버지 싸우시는 것 보다는 솔직히 말하면,
어차피 공부에 취미도 없고, 학원 다녀도 3,4등급 언저리라
공부를 하기 싫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아버지 편에 서서 엄마와 이야기를 했다.
아빠 봐라, 고졸인데도 월 1000넘게 벌면서 살지 않냐,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기술자에게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버지는 20살부터 지금까지 현장 밥을 40년 먹은 배관공이다.
배관만 해온 것은 아니고 토목부터 비계 크레인 안해본 일이 없다.
작은 회사가 하청을 따내면 아버지한테 제일 먼저 연락이 왔다.
노조의 파워가 그닥 쎄지 않던 시절이라 아버지가 일 잘하는 사람들 꾸려서 데려갈 수 있었고, 평판이 좋아 현장소장들이 줄을 서서 먼저 연락을 했었다.
내가 일했던 곳은 대산 유화단지다.
오일뱅크, 엘지, 한화토탈, 당진 화력발전소 등 여러 현장을 전전하며 아버지를 따라 일을 배워왔다.
그라인더질 하는 방법부터, 일을 못할 때면 다음 현장은 공구실에 박혀서 공구 마스터가 될 때까지 공부를 했다.
아버지와 일이 끝나고 같이 집에 오면 항상 저녁시간에 공부한 것들을 설명해야 했다.
이 공구는 뭐고 어떻게 쓰는거고 뭘 주의해야하고...
그러다가 조공으로써 일을 하게되었고 이후에는 도면 보는 방법부터 캐드까지 성실하게 공부해서 왠만한 새끼반장 이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겼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 때 나이 25살 현장밥 5년차였다.
내 통장에 매달 450씩 들어오는 걸 보고 학벌에 대한 불안감은 완전히 사라졌다.
셧다운이라도 있는 현장이면 쩜오해서 900넘게 들어오는 달도 있었고
내 평균 연봉은 사대보험 떼고 못해도 7000,
많으면 1억이 찍히는 해도 있었다.
현장 분위기는 이렇다.
대부분 50대와 60대가 많고 30대는 가끔가다가 보이는 막내고 40대는 그보단 아니지만 거의 없다.
그런 곳에서 20살 꼬맹이가 왔으니, 거기다 반장 아들이라고 왔으니 어른들이 얼마나 챙겨주고 알려주고 했겠냐..
나는 축복받은 최적의 환경에서 배워왔고, 내 평판이 곧 아버지 평판이기에 욕 안먹으려고 최대한 얼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반생이 하나 갖고와바라 라는 말 들으면 뛰지말라는 소리를 들어도 안뛰는 척 어른들 눈 돌면 최대한 달려서 빨리 가져오고 쉬는시간에도 폰 보다가 어른들 오시면 배관 묶는 연습 하는 척 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나 욕먹는 건 괜찮아도 내 아빠가 욕먹으면 내 일에 지장이 생길거라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면서 8년차가 된 28살에
새끼반장으로 처음 내 에리어를 맡게 된다.
존나 열심히 했다. 그냥 밥도 안먹고 일하고 10일 걸릴 거 우리팀은 5일만에 끝냈고
말했다시피 20대가 현장에서 일하는 건 드문데 그 중에서도 반장급이니 내 이야기는 흡연장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
흡연장에서 내 얘기가 나올 땐 정XX? 걔 일 잘하지~ 에이스여
이런 칭찬들이 가득했고
아버지는 건너건너 그런 이야기를 들으시곤 총반장으로 일을 가시면 나에게 작업을 안시키고 자기 옆에서 발주넣고 업체들 컨텍하는 방법 등을 배우게 하셨다.
나는 29살에 현금 7억을 모았고, 돈에 미쳐서 몸이 갈려나가도록 일을 했다. 안먹어도 되는 쇳가루 내가 다 먹고
우리팀이 조금 못하면 내가 연장들고 나가 마감쳤다.
그런데 노조 파워가 점점 쎄지면서 노조 현책이나 간부들한테 술한번 안사고 일만 열심히 하던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더니
언제부턴가 포주 하다 온 50대 중고차 팔던 양아치 40대들이
현장밥 2년도 안 쳐먹어본 주제에, 반생이 하나 못 묶는 주제에 현책 타이틀 달고 연장도 안 들고 현장을 기웃기웃 거리더라.
웃긴게 이런 개 좆밥 짬찌새끼들 뒤에 민주노총이 있기 때문에
원청도 하청도 현장소장도 반장도 아무 말 못하고 입 다물어야한다.
자기들 맘에 안들면 일 못하게 하고, 이력서 안받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새끼가 있었는데 얘기하자면 진짜 너무 길다.
아무튼 이런 추세로 점점 변질되어 일 하는 작업자는 놀고, 버러지 간부들은 일 안하고 돈 벌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우리 아버지 밑에서 6개월 일하다가 힘들다고 도망친 버러지가
우리현장 노조 현장책임자로 오더라 ㅋㅋ
아버지 성격상 일 안하고 노는 사람들 못봐서
쉬는시간이 아닌데 흡연장에서 신호수 아줌마들이랑 담배피고 떠드는 그 노조간부한테 한마디 했다가 다음날부터 출근 못하게되셨다
농담 아니고 40년 일한 사람이 노조 간부 한마디에 3개월을 쉬었다
아버지는 노조 없는 현장 알바를 다니시거나, 다른 현장에 그낭 기공으로 일 다니시거나 하다가 얼마 전 은퇴하셨다.
그 노조 간부를 나는 다른 현장 흡연장에서 우연히 또 만나게 되었다.
정XX이~ 누가 어른들이랑 맞담배하래 <
이 한마디에 나는 눈깔이 돌아서 맞담배 피기 싫음 꺼져이새끼야 하고 욕을 박았다.
솔직히 배운게 그거라 아빠닮아서 나도
나이 몇을 먹던간에 일 못하면 내친다는 주의였고
그런 버러지가 노조 간부달고 우리 아버지 백수만든 장본인이었으니까
더 그냥 빠꾸없이 욕을 박았다
나를 노조 블랙넣던 말던 어차피 현장에서 나만큼 기량 되는 사람 없는데 지가 어쩔거야? 이런 마음이었고
실제로도 좆같은 반장들 많은데 일 안돌아가서 노조에서도 그냥 쓰는 분위기였다.
작업자 맘에 안든다고 내치면 일은 누가 함?
근데 세상이 달라졌다.
미국에 짓는다던 배터리 공장은 취소되고
대산에 짓던 배터리 공장도 취소되고
태양열 염병 한다고 뭐 취소되고
발전소도 이제 안짓는다고 하지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에 반도체 밀려서 공장도 더 못만들게 되고
여러 악재가 겹쳐왔다.
나는 실력 되니까 어딜 가든 벌어먹을 줄 알았다.
근데 일자리가 줄어드니까 제일 먼저 정리되는 건
실력 없는 작업자들이 아니라 노조 말 안듣는 작업자들이었다.
일 잘해도, 민노총이 하라는대로 안하는 작업자들이 먼저 짤려나갔다
나랑 친하게 지내시던 형님들도 노조 참석 안했다고 아웃되시고
몇날 며칠 술 처먹고 형님들이랑 하소연만 하다가 결국
나는 개 좆같아서 그냥 일을 그만뒀다.
수중에 현금만 10억 넘게 있었으니 장사라도 하자는 생각이었고
노조 탈퇴하고 타지로 가서 몇달은 친구들이랑 놀았다.
1년간 5000만원 정도를 생활비로 막 썼다.
처음 한두달은 편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보니 일이 너무 하고싶더라
배운 건 없어서 노가다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민주노총 좆같은거 가입은 다신 하고싶지 않고
이래저래 골머리를 썩다가 결국은 다시 신규로 가입하고 들어갔다
나때랑은 다르게 요즘은 무슨 좆같은 교육들을 막 하더라
윤석열은 병신이고 이딴소리를 실제로 건설노조 가입때 강사가 영상 틀어놓고 얘기함
시위꾼들 투쟁 투쟁 염병하면서 깝치는거? 다 거기서 처음 배운다.
나는 진짜 무슨 공산당원 가입 그런 건 줄 알았다.
일에 대해 교육하는 게 아니라 사상을 주입시킨다.
좆같아도 일은 해야하니까 라는 생각에 일제에 부역했던 대다수의 조상님들처럼 내 가정 지키기 위해 일을 하기위해 순응했다.
근데 염병ㅋㅋ 1년 놀고 오니까 일자리가 더 없어졌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고있고, 짬 10년 먹은 아재들도, 현장에 유일하게 20대였던 두 친구도 언제부턴가 일을 못나가고 있다더라
뉴스 기사나 커뮤 댓글같은거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쉬운 일만 찾고 돈 많이주는 일만 찾아서 백수가 많은거다 라며
일자리 0.28 통계와 기싸움을 막 해대는데
씨발 대체 남들 안하려는 그 힘든일이 뭔지 좀 알려줬음 좋겠다
내가 좀 하고싶다. 31살에 자차있고 월세살지만 현금9억 있어서 이제 돈 많이버는 그런 거 집착 안한다 그냥 일만 하고싶다.
아무것도 안해도 취업된 개꿀세대가 사다리 걷어차놓고 헌다는 말이 대가리 쥐어박고싶어서 참을수가 없다
이제는 누구를 탓할것도 없고 그냥 내가 대학을 나왔으면 좀 달랐을까 싶다
대학을 나왔으면 지금 안놀고있겠지
이제서야 그냥 별 생각이 다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