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은 《황성신문》의 주필인 장지연이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이 날에 목놓아 우노라"라는 의미이다. 장지연은 이 글에서 고종 황제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을 규탄했다.
민영환(閔泳煥, 1861년 8월 7일 (음력 7월 2일) ~ 1905년 11월 30일)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척신이다. 종묘배향공신이 되었다. 본관은 여흥이며, 민치구의 손자이자 민겸호의 친아들이며, 고종에게는 외사촌 동생이다. 명성황후 민씨의 친정 조카로 알려지지만 실제로는 13촌지간이 되는 먼 친척에 불과하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자결하였다.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桂庭),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민영환은 친일적인 대신, 관료들과 수차례 대립하였고, 일본제국의 내정 간섭을 성토하다가 주요 요직에서 밀려나게 된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의 체결을 크게 개탄하며, 조병세와 같이 을사늑약 반대 상소를 수차례 올렸으나 일제 헌병들의 강제 진압에 의해 실패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국민들에게 남기고 11월 30일 자결하였다. 유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에서 모두 진멸당하려 하는도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돕기를 기약하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배 더욱 기운내어 힘씀으로써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그 학문에 힘쓰고, 마음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1]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
오호라, 나라의 수치와 백성의 욕됨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에서 모두 진멸당하려 하는도다. 대저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하는 자는 삶을 얻을 것이니, 여러분이 어찌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영환은 다만 한 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하노라. 영환은 죽되 죽지 아니하고, 구천에서도 여러분을 기필코 돕기를 기약하니, 바라건대 우리 동포 형제들은 억천만배 더욱 기운내어 힘씀으로써 뜻과 기개를 굳건히 하여 그 학문에 힘쓰고, 마음으로 단결하고 힘을 합쳐서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은 자는 마땅히 저 어둡고 어둑한 죽음의 늪에서나마 기뻐 웃으리로다.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