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6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자들이 쌀과 생필품등을 싣고 북으로 가려다 무산됐다. 개성공단 출입이 금지된 개성공단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물품을 가득 실은 차량이 빠져나오고 있다. 중앙포토“북한에 끌려다닐 수는 없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4월 26일 개성공단의 인력 철수를 지시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통일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협의할 남북당국 간 실무회담 개최를 제의하며 ‘응하지 않을 경우 중대한 조처를 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만에 내린 조치였다.박 전 대통령은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서비스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에 연재 중인 ‘박근혜 회고록’을 통해 개성공단과 목함지뢰 사태 사건을 비롯한 임기 전반 대북 정책의 비화를 8~9일 이틀에 걸쳐 공개한다.2007 7월 24일 개성공단에 있는 신원(의류업체)의 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있는 북한 근로자. 사진공동취재단북한은 박 전 대통령의 당선 직후 각종 도발로 긴장 수위를 끌어올렸다. 당선인 시절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협정 백지화(3월 5일),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 철수(4월 8일) 발표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새 정부를 테스트해보려는 듯했다”고 회고했다.북한의 ‘길들이기’에 맞서 박 전 대통령은 개성공단 철수라는 강공으로 거침없이 맞불을 놨다. 박 전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은 공단 폐쇄 협박을 하면 군사훈련 축소·연기와 같은 유화적 조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을지 모르겠다”며 “아무리 협박해봐야 얻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2013년 8월 14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에서 제7차 개성공단 남북당국실무회담이 열린 가운데 김기웅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왼쪽)과 대표단들이 도착을 하자 북측 수석대표인 박철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부총국장이 마중을 나와 인사를 나누고있다. 중앙포토개성공단에 대해 가졌던 불안감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연간 1억 달러를 북한에 주는 것인데, 상당액이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핵 개발에 쓰일 수도 있었다”며 “남북 관계 악화시 개성공단 인력이 고스란히 인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강공 작전은 효과를 봤다. 북한은 6월 6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먼저 제안했고 9월 공단은 재가동됐다. 9일에는 2015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 뒷 이야기가 이어진다.2016년 9월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순간 ‘이제 북한과는 모든 게 끝났다. 우리가 더이상 뭘 더 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이 도발하더라도 우리가 손을 내밀어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현실을 도외시한 위험한 주장”이라며 “북한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연대해 왔고, 유엔 안보리의 규제들이 겹겹이 쌓여 왔다. 대북 제재는 국제사회의 동의 없이 우리 단독으로 풀거나 완화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