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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정희에게 정치란?
사마르칸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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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시대 양적인 성장을 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론
(
異論
)
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경제와 관련하여 박정희를 변호하는 것
은
,
경제 성장이라는
‘
목표
’
가 아닌 그
‘
방식
’
에 집중하면 되는 문제였다
.
하지만
정치는 그렇지 않다
.
보수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
이제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와 관
련하여 박정희를 변호하기 위해서는
‘
수단
’
의 문제가 아닌
‘
본질
’
의 문제에 접근
해야만 한다
.
여기서는 바로 그러한 점들을 살펴볼 것이다
.
그런데 이러한 논의
를 하기 위해서는 박정희가 정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실용주의적 관점이 중요하
며
,
보수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실용주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박정희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민주주의의 기원에 대한 주장이다
.
1.
박정희에게 정치란
?
박정희가 정치
,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
그렇기 때문에 유신체제에서 볼 수 있듯이
,
그는
‘
탈
정치
’
를 시도했던 것이다
.
그러나 박정희가 정치의 본질을 간파하고 그러한 결론
을 내린 것은 아니다
.
사실 박정희의 경우 정치를 체득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
전인권
(2006)
이 말했듯이 그는
‘
반민주주의자
’
가 아니라
‘
몰민주주의자
’
라고 하
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
박정희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원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
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박정희에게 있어 정치란 어떤 의미였을까
?
박정희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메이지유신
(
明治維新
)
에서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개혁을
‘
관념
’
이 아닌
‘
실용
’
의 문제로 이해했다
(
베네딕트
2008, 105).
이러한 메이지유신의
지사들과 마찬가지로
,
박정희에게 있어서도 정치는 그럴듯한 명분이나 이념이
아니라 국민 생활에 직결된 것이었다
.
이는
『
지도자도
(
指導者道
)
』
에서 박정희가
민주주의에 대해 논평한 부분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는데
,
여기서 그는
‘
형식
’
과
‘
실제
’
의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
주권의 연원은 국민에게 있는 고로 국민의 권리는 침범을 당하지 않
도록 보장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다
.
물론 혁명전에 있어서도 제도면
에 있어서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내걸고 국민의 권리는 형식적으로 보
장되도록 되어 있기는 했다
.
그러나 실지로는 주권은 일부 특권층에
있었고 국민의 권리는 그들에게만 있었지 일반국민은 법적으로 보장
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었다
.
⋯
국가가 파멸에 직면하고 국
민의 주권이 비참히 유린되었을 때 여기에 일대 수술을 가하여 국가
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소생시키고자 한 것이 이번 군사혁명이다
.
⋯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을 받고 국가가 파멸하는 순간에 처해 있을
때
,
⋯
국가와 민족의 수난을 피하기 위해 취해진 행위는 정당한 것이
다
(
박정희
2017a[1961], 25-27).
위 인용문에서도 나와 있듯이
,
박정희에게 있어 기성 정치는 국민 생활과 유리
된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
박정희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
그동안의 정치는
“
특
권층의 전매특허적 완상물
(
玩賞物
)”
에 불과했던 것이다
(
박정희
2017c[1963],
281).
물론 앞서도 말한 것처럼 이러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경험의 소산은 아니
었다
.
박정희가 정치에 대해 내린 결론은 한국사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관념
의 결과물이었다
.
박정희에게 있어 한국사는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
퇴영
(
退嬰
)
의 연속
’
일 뿐인데
,
그 중심에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
박정희
2017b[1962]).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는 정치를 국정 운영의 중심에서 배제하는
‘
탈정치
’
야말로
국민 생활을 증진할 진정한 민주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
그가 말한
‘
행정적 민주
주의
’
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
이는
‘
정치
’
와
‘
행정
’
의 분리라
는 박정희식 권위주의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
그가 말했듯이
, “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서구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
행정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
”
는데
,
이는
“
기왕의 부패를 일소하고 국민들의 자치능력을 강화하여 사회정의를 구현
”
한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
박정희
2017b[1962], 229).
박정희는 자신의 정치를 기성 정치와 다르다고 말했지만
,
그 역시 엘리트주의
적 발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
그가 생각한 정치
역시 서민 대중에 착근한
‘
신세력층
’
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박정희
2017c[1963],
150-152).
여기서 우리는 조희연
(2010)
이 말한
“
결손 국가와 결손 국민
”
이라는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서구나 일본의 기준에서 봤을 때 근대적 국가와 근
대적 국민이라 볼 수 없는 후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경우
,
이를 정상 국가
와 정상 국민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 지도자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한마디로 말해 박정희에게 있어 정치는
‘
관념
’
이 아닌
‘
실용
’
의 문제였다
.
그가
『
국가와 혁명과 나
』
에서
“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의 고운 손
”
을 미워했던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이다
(
박정희
2017c[1963], 270-271).
그에게 있어 필요한 사람
은 시집을 읽는
‘
관념론자
’
가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
기능공
’
이었던
것이다
.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문제는 박정희나 그를 추종하는 보수
주의자들이 박정희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한계를
‘
실용
’
이라는 관점에서 정당화
하는 데 있다
.
그런 의미에서 남정욱
(2017)
의 글은 박정희와 공명
(
共鳴
)
하는 보
수주의자들의 정치관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
여기서 그는 박정희가
‘
혁명
가
’
다음에
‘
경영자
’
의 길을 선택한 것을
‘
신의 한수
’
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정치
를
‘
혼란
’
그 자체로 보는 박정희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
남정욱도 만일
‘
혁명가
’
다음 단계가
‘
정치가
’
였다면 한국은 혼돈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사실 그의 글은 박정희의 초기 저작인
『
우리 민족의 나갈 길
』
이나
『
국
가와 혁명과 나
』
에서 정치적 수사로 버무린 주장들을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
는 경향이 있는데
,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책들에서 보이는 상호모순적인 내러티
브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
대표적으로 남정욱도 인용하고 있는 박정희의 개인
의 자유에 대한 강조와 전체
(
공동체
)
에 대한 강조는 상호모순된다
.
정치적 선전
물
(political propaganda)
에 가까운 책에서 개인적 철학이 어떠하든 자유와 같은
규범적 호소력을 가지는 정치 가치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요컨대
,
보수주의자들은 박정희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실용주의적 성격을 높이
평가한다
.
그리고 그러한 실용주의의 정치는 정치 논리를 배제한 채 경제 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에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규범적 관점으로 승화된
다
.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박정희 정권의
‘
탈정치
’
가
‘
탈민주주의
’
를 의미한다
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
끊임없이
‘
자유민주주의
’
를 얘기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박
정희의 탈민주주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게다가 박정희가 탈
정치를 한 배경에 대해 살펴본다면 더욱 긍정의 여지는 없어진다
.
전술한 바와
같이
,
박정희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경험의 소산이 아니라 한국사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관념의 결과물인데
,
박정희의 초기 저작에서 보여지는 한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은
,
송철원
(2020)
이 말했듯이 한국사의 정체성과 타율성을 줄곧 강조한 식민사관의
‘
재판
’
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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