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를
'평화와 쫒겨난 자들의 복수- 그리고 끝없는 투쟁!'
'국제정치의 현실과 이슬람 원리주의'
'피의 역사와 압박박는 약자들의 저항'
중에서 고민하다 걍 막 붙임.
■중동 평화의 진정한 첫걸음
feat: 지도자의 피로서 새긴 평화
미 대통령 별장에서 (강금당한 상태로?) 12일간 회담(?)결과
3,4차 중동전의 적대국인
이스라엘(베긴 총리)-이집트(사다트 대통령)는
1978년 9월 17일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을 맺는다.
아랍민족과 유대민족 간의
중동의 평화를 조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1979년 3월 26일 워싱턴 D.C에서,이스라엘군이 시나이 반도를 양도하고 완전 철군하는 이스라엘-이집트 영구 평화 협정에 서명한다.
그러나,
아랍의 무슬림들,
아니 이집트 무슬림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과 증오는
그런 방식으로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사다트가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에서 유대인들에게 외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한
보호와 양보를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그들은 결국 이 평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81년 10월 6일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은
라마단 전쟁(4차 중동전) 기념 열병식 도중 군인 신분의무슬림 형제단, 이슬람 원리주의자와 2명의 공범에 의해
(잔인하게) 암살 당한다.
평화와 동시에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지하드)도
피를 먹고 자라는 화려한 꽃을 피워올린 것이다.
그 피는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숙적 - 또 다른 피의 꽂
페르시안, 이란인들의 시아파 무슬림 혁명의 완성이란혁명1978년 1월 7일 – 1979년 2월 11일 (1년 1개월 4일)석유생산량 감소로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한다.(중화학 공업 과잉투자에 오일쇼크가 겹친다.땅콩장수의 높은 도덕심(?)과 국제정치 변화로 국내 소요사태가 겹쳐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결국 암살된다.)
1979년 11월
왕을 쫒아낸 이란은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공화국 체제의 새 헌법을 채택하여
시아파 이슬람 신정국가로 변모한다.
신의 뜻을 전하는 사제들의 나라이다!
(백두 개족보의 위대성이 떠오른다.
그들은 개족보의 시조를 신으로 만들었다!
10대 원칙과 조선 노동당 규약은
거의 신정국가의 경배문이다.
요즘 좀 바뀌긴 했더만!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1980년 9월 22일 – 1988년 8월 20일(7년 10개월 4주 1일)■제1차 인티파다(Intifada)와 하마스1987년 12월 8일~93년 오슬로 협정https://en.m.wikipedia.org/wiki/First_Intifada
●하마스의 탄생87년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가자 지부가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 후 이집트와 결별하고기존 대이스라엘 투쟁 스피커들과 무장투쟁가들을 규합,효율적 기능을 위해 조직화 되어 하마스를 결성한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목표로
무장 투쟁을 추구하기 위한
군사 조직인 이즈 알 딘 알 카삼 여단(Izz al-Din al-Qassam Brigades)을 창설한다.
팔레스타인 정부 인정을 위해
이스라엘과 협상을 시도하는 PLO의 온건노선을 비판하며
지하드를 주장한다.
국제정치 구조속에서는 그런 협상을 위해서는
일단은 '2국가 해법'을 수용해야 한다.
만약, 2국가 해법을 부정한 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존재부정이며,
결국은 공멸적 투쟁만 남는다.
그들은 유대민족은 자신들의 적이 아니며
시오니스트(?)만이 적이라고 주장한다.
(근데, 시오니스트는 누가 정하니?)종교적 관용을 지향하지만이슬람의 원리주의의 변형(?)은 불가하다.
초기 88년 하마스 규약은
이러한 대이스라엘 극렬투쟁 노선이 뚜렷해
대량학살선동이라고 평가받기도...
2005년 가자지구 컨트롤을 포기,
가자거주 이스라엘인을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철수.2006년 팔레스타인 입법 선거(의회)에서 부패한 PLO주류인 파타(Fatah)를 이기고 승리 (PLO 지도부의 후원금의 편취와 축재가 패인)하마스 이외, 더 극단적인 무장투쟁 조직들도 생겨난다. 가자지구에서 파타당과 무력충돌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Palestinian National Authority, PA)가 붕괴.이제는 팔레스타인 독립정부(State of Palestine)의 가망성은 없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정치적으로 분리되고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정부 역할을 하게된다.
쫒겨난 파타당은
가자를 억악통치하는 하마스에 저항할 것을 종용하지만하마스는 비판 세력에게 자비가 없다.
(자신이 곧 정의이고 법이다.
삶은 소대가리와 똘마니들의 '촛불 혁명정부' 구호가 떠오른다.)
2017년 새로운 하마스 규약은
다소(?) 다듬어져 정치적(?효율적)이다.정치투쟁과 무장투쟁을 병합하여 활동하면서 제도권 정치화의 이점도 염두에 둔 듯 하다.
통상 조직은 목표에 의해 정의 되는데,
그들의 목표는
서안지구와 가자에서 이스라엘을 몰아내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며
레반트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소멸시키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이는 사실 레바론을 장악한 시아파 정당이며
무장조직인 헤즈볼라(신의 정당),
시리아, 이라크의 카타이브 헤즈볼라(신의 정당의 군대),
이란과 동일한 목표이다.
Hamas Covenant 1988 (생략)
종교 복음서와 정치구호가 혼재한다.이게 뭔 소리야? 정도!Charter of 2017(생략)
상당히 잘 읽힌다. 표현도 세련(?)되었다.팔레스타인 지도부의 권력ㆍ노선 투쟁 참고(아산정책연구원 PDF 자료)https://www.asaninst.org/wp-content/themes/twentythirteen/action/dl.php?id=82829
■걸프전쟁쿠에이트 침공(1990.8.2~8.4)미국의 쿠웨이트 수복 작전 (1991년 1월 17일:5주간)인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이 개시
(인류 역사에 다시는 없을 지상 최대의 성공적 군사작전/
드레스덴처럼 무고한 민간인들은 하나도 안죽었을거야! 그치!
뭐! 모든 원숭이 종류들은 좀 역겨운 면이 있으니까! )■독일 재통일 1990년 10월 3일■소련 붕괴 1991년 12월 26일■1993년 다시 피를 먹고 전진(?)하는 중동 평화(?)
인티파다와 국제 여론전, 무장투쟁에 힘입어서PLO는 이스라엘과의 정치적 협상을 이끌어낸다.1994년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다.팔레스타인의 자치를 인정하고
'2국가 해법'의 평화안을 수용.
단계적 해결을 통해 2개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라빈도
95년 11월 4일 과격한 극우파 유대인에게 암살 당한다.평화를 위해 노력한이집트, 이스라엘의 양쪽 지도자들이 암살당했다.
아랍인과 이스라엘의 피의 원한과 적대감은그만큼 깊다는 반증이고
구성원의 감정적ㆍ이성적 편차는 크다는 것이다.
어쩌면 상대를 위협으로 느끼도록삶이 조건화 되어 있는 것인 까닭도 작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경제적 삶의 질, 증오의 부추김, 종교적 신념,아랍인 또는 유대인의 막연한 프레스티지(?)이던지간에!웃기는 것은UN결의안 181호의 분할안을1947년 당시에 이스라엘인들이 2보 전진을 위한1보 후퇴개념으로 접근했다면(?)1993년에는 최초분할안에 기초한,UN 결의안 242호와 338호를 통한 분할안을PLO 측에서 똑같은 개념으로 접근한 듯 보인다는.....하마스는 유대인 중에(시온주의자라고 누가 정해?)시온주의자는 무조건 박멸!사실상 팔레스타인에서 추방!
서안지구는 어두운(?)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지 않냐!?
팔레스타인 군도! 참 이름도..... 젖같이 잘 짓네!
93년 오슬로 협정 당시 서안지구 거주 유대인 약11만명여전히 안보리 결의안 242호와 338호를 들먹이며....1995년 오슬로 2차 협정 (Oslo II Accord) 체결2020년 서안지구 거주 유대인 약 45만명2022년 2월 초 서안지구 거주 유대인 49만명(추정)
참고)
웨스트 뱽크https://en.m.wikipedia.org/wiki/West_Bank오슬로 2차 협정https://en.m.wikipedia.org/wiki/Oslo_II_Accord
오슬로 협정은이스라엘 측에 서안지구 정착촌 철수와 골란고원 포기를팔레스탄인 아랍인들에게는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 포기할 것을전제로 요구하기 때문에최근에는 양측 모두에서내심 협정폐기를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서로 적대감이 높은 적을 앞두게 되고
컨트롤 할 수 없는 제반 상황은 자연 악화되고 강경파가 정치적으로 유리해지긴 하지....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봐도불가능한 안인듯 한데
평화는 무슨 개뿔!....1947년에 이미 깔린 낡은 무대에서 연출하는창의성 존나없는 smart boy(?) 백악관의 로맨티스트의화려한 국제정치 쇼맨쉽!(?)"오빠!"하고 환호 하면서 다들 "뻑!"간다!하여간 운은 억세게 개졸라 좋은....!■2차 인티파다(Intifada) 2000년 9월 28일 ~ 2005년 2월 8일https://en.m.wikipedia.org/wiki/Second_Intifada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소거 현황
■911 테러와의 전쟁 시대 2001년 9월 11일■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10월 7일 – 2021년 8월 30일 (19년 10개월 3주 2일)■이라크 전쟁 2003.3.20~2011.12.15■시리아 내전 2011.3.15 ~ 현재■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14년 2월 20일 ~현재■미국의 시리아 내전개입2014년 9월 22일 – 현재 (9년 2주 5일)■아랍의 봄 (Arab Spring) 2010년 12월 17일 – 2012년 12월 설명 불가(무슬림들께서 설명을 좀!)■2차 아랍의 봄(Second Arab Spring) 2018년 1월 1일 – 현재 설명 불가(무슬림들께서 설명을 좀!)■‘2국가 해법’과 현재 미국의 정치
●2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제3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1967년 이전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UN의 분할안을 기초로 각각 독립된 국가로 공존하자는 구상이다.
(결의안 181호에 기초한 242호와 338호)2011년
버락 오바마 전 미대통령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선은
1967년 경계선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2국가 해법을 지지했다.
2018년트럼프 전 미대통령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땅으로 인정한다는 뜻에서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2019년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땅이라고 선언했다.
2국가 해법? 좀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잘 모르겠다!
Alz 조 바이든 현 미대통령토니 블링컨 현 미국무장관
온 몸에 피칠을 하고 싸우는 둘 아니 셋 앞에서,
(아니지 도데체 몇 명이야!
씨방새들은 좀 빠지지...!)
"2국가 해법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민주적인 유대인의 국가로서 보장하고,
이스라엘이 독자적이면서 민주적인 팔레스타인 국가와
평화롭게 공존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라고!
차라리 3개로 나누면 더 현실성이.....
아니지!
47년 UN 원안처럼
북부에 하나 더 만들어서 레바논에
골란공원은 떼서 시리아에 ....
씨벌 기지도 내준 요르단 요르단에게도 뭔가....
아! 이집트가 서운하겠네...!
이럴 때
무식한 놈의 습관이 나온다!
"처놀고 자빠져 있네!" 또는 "조옷까고 있네!" 라고
보통 말려도 듣지 않고 죽을 듯이 싸우는 놈들은
뭐, 둘다 개독종이라 하나가 죽던가 아니면
피터지게 싸우다가 서로 적당히 힘이 빠지면
둘 다 구경하는 이쪽 놈들을 자꾸 쳐다본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