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부모가 됐다.
그땐 그랬단다.
이유 불문이었단다.
손만 잡아도 결혼했단다.
결혼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란다. 사람이면 마땅히 숨을 쉬고 밥을 먹듯, 애를 낳아야한단다.
잘났든 못났든 수준 맞춰 낳아야하는거란다.
단칸방 반지하에서라도 시작해야한단다.
그게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고, 부모께 보은하는 길이란다.
'왜?'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난 이렇게 태어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챠우셰스쿠의 아이들이나 레벤스라움 고아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본능때문에'라고 했으면 차라리 솔직해서 좋았을것을...
그렇게 말하는게 터부시되는 이상한 조선의 문화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결혼과 출산의 정당성을 대기 바쁘다.
그러다보니 본능이라는 솔직함보다 이런 저런 이유가 더 '먼저'가 됐다.
마땅히 애를 낳아서 국가에 봉사하고 부모께 보은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됐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게서 태어날 아이의 의사와 행복을 고려하지 않은 '출산'이 진짜 '이기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인생길을 내달려야한다.
사실 출발선이 모두 다르고, 도달할 수 있는 한계도 모두 다르며, 심지어 그 길을 달리는 수단과 속도가 모두 제각각임에도 불구하고,
이 비인간적인 조선사회가 요구하는 '스탠다드 코스'를 달성하기 위해 무작정 등떠밀려진다.
'너'를 위해서란다. '너'를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돈을 벌고, 밥을 먹여주고 재워준단다.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거란다.
다 '너'를 위한거라면서도, 잠시 뒤엔 또 "성공해서 '나'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라고 한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가 되라고 한다.
다른 길은 없단다. '너'는 다른 재주가 없기 때문에, 오직 '공부의 길'을 달려야한단다.
오만가지 의문이 일어난다.
그들은 왜 만났을까?
그들은 서로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으면서, 왜 서로를 원망할까?
그들은 왜 평생 단순노동을 하면서 '잘' 살기를 바랬던걸까?
그들은 왜 자식에게 '오로지 공부'를 강요했으며 그리로 유도했던걸까?
그들은 왜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걸까?
그들은 본인들이 전혀 자랑스러워할만한 사람이 아니면서, 왜 자식이 '자랑스러운 구원자'가 되길 원했던걸까?
그들은 왜 인생의 대부분의 요소들이 사실 날때부터 결정돼있다는 사실을 극구 부정하는걸까? 왜 그걸 '패배주의'라고 매도할까?
그들은 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을 그리도 싫어하는걸까?
사실 의문은 소용이 없다. 의문의 표출은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부모에 대한 '패륜'이기 때문이다.
조금의 결정론적인 관점조차 그들에겐 '패배주의'다. '노오오오오오오력'으로 안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면 된다."
"해봤어?"
조선 부모, '그들'로부터 태어난 이 땅의 수많은 '나'는
이제 '낳지 않음'으로 그들에게 대답하고있다.
아무나 부모가 됐기에, 아무도 낳지 않게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