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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가 풍요로웠던 이유
서대구방랑자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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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이 아닌 일반 조선백성들에게 일제시대는 축복이었다.
조선시대때 신분제도는 악명이 높았다. 1~2%불과한 양반들이 모든권력과 부를 독식하는 구조였다. 특히 노비제도가 공고하여, 전국민의 절반이 노비(노예)였는데, 노비는 사실상 인권이 없어서, 물건처럼 취급받고 양반이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나라가 가난하여 공무원들에게 봉급을 주지 않자, 양반과 관리들은 백성들을 굶어죽을 때까지 수탈하였다.
조선말기 세도정치기에 세금제도였던 삼정(三政)이 문란해지자 양반과 관리들의 수탈은 극에 달해서 백성들은 말그대로 지옥을 경험하였다. 지옥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조선이었다.
당시의 지옥같은 상황을 백성들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젊은 아낙이 슬피울었다. 죽은 시아버지, 갓난아이 모두가 군적에 올라 군포를 내라고 닦달하니. 남편은 화가나서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자살했다."
- 지옥같던 조선을 변화시킨 일본
이렇게 지옥같은 조선사회를 변화시킨 세력이 일본이었다.
조선왕조는 친중국가였기에, 청나라(중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자나깨나 국민들이 좌익친중파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좌파정당(더불어민주당)에는 언제나 친중파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의 친미, 친일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다.
즉 조선의 양반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세력이 청나라(중국)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악명높은 세금제도(수탈)와 신분제도를 없애고 조선백성들을 노예신분에서 해방시키려면 조선에서 중국세력을 내쫓아야 했다.
1894년 7월 25일 ~ 1895년 4월 17일 일어난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승리하자, 비로소 조선땅에 개혁이 일어났다.
김구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이 청일전쟁에서 김구는 중국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구는 조선의 양반사회를 지지했던 친중파이다.
일본은 갑오개혁(甲午改革)을 통해 조선의 낡은제도와 악법들을 고쳐나갔다.
<갑오개혁 내용>
갑오개혁으로 어느정도 개선은 되었지만 500년동안 조선사회에 뿌리내려온 신분제도와 악법들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비록 일본이 간섭했다고 하지만, 아직 조선이 망하지 않아서 여전히 지배층(양반)들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모든것이 고쳐지려면 조선이 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여론도 많았다.
"왜 자원도 별로 없는 낙후된 조선을 막대한 일본돈을 들여 발전시켜줘야 하느냐?"
라는 반대여론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 일본이 왜 조선같은 곳에 가야 합니까?"
라는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결국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이 일본에 편입되자, 공식적으로 신분제도가 없어졌다. 비록 이완용은 조선왕조에게 매국노였지만, 조선백성들에게는 구세주였다.
한일합방이후 조선백성들을 괴롭히던 악명높은 신분제도, 탐관오리의 수탈 및 세금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아울러 일본군과 일본경찰들이 치안을 잡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안전해졌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산하나 넘을때마다 산적이 나타나서 목숨을 잃거나 재물을 빼앗겼는데, 이런일이 사라졌다. 또한 유해조수구제조치(有害鳥獸驅除措置)로 조선인들을 위협하던 맹수(호랑이, 늑대, 표범 등)들을 퇴치하여, 농민들이 안전하게 밭과 산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한반도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식총: 호랑이에게 잡혀먹힌 사람들의 시신일부들을 찾아서 장사지내고 돌로 쌓은 무덤. 과거 한반도에는 포악한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수많은 조선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일제의 호랑이 퇴치는 조선인들의 목숨과 생명을 구한 좋은 일이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경화된 한국 문화예술계는 호랑이를 미화한 영화 '대호'를 2015년에 개봉하였다. 영화내용은 결국 조선 호랑이는 착한데, 나쁜 일본놈들이 모두 쏘아 죽였다고 일제를 비난하는 것이다. 절대로 좌파는 믿지 말아라.>
- 조선총독부는 가난한 조선백성들을 위해 일본보다 세율을 낮게 유지했다.
좌파민족주의자들은 일본이 조선을 수탈했다고 주장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조선이 농업사회였기에, 일본정부가 조선에서 거둘 수 있는 세금은 대부분 농지세였다.
이 농지세 세율이 조선은
1.3%
에 불과해 일본 (
3%
) 보다 오히려 낮았다. 조선이 일본보다 가난했기에, 조선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 세율을 낮추어 준것이다.
이로인해 조선에서 거둔 세금만으로는 조선총독부 공무원들 월급의 10분의 1밖에 충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총독부 관리들이 일본에 가서 예산을 따와야 했다.
- 토지수탈론도 허구이다.
일제의 한반도 수탈론중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토지수탈론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1910년 일제는 조선의 토지를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토지를 사유지로 인정받고 싶으면 신고기간 내에 신고를 하세요. 신고를 하지 않은 토지는 국유지로 삼겠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문맹률이 높아서 농민들 중에 까막눈이 많았기에 신고기간내에 신고를 못한 농민들이 많았다.
이로인해 많은 토지가 국유지로 되자, 토지분쟁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일본은 이미 에도시대때 글을 읽고 쓸줄 알았던 일본인들은 전체인구의 70~80%에 달했다. 이때문에 조선총독부는 조선백성들도 글을 읽을 줄 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문자 특권층(양반)들이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문맹률을 전혀 개선하지 않아서 문맹률이 높았다.
이후 조선농민들의 높은 문맹률 사정을 파악한 조선총독부는 언제든지 사유지로 신고하면 조선농민의 사유지로 인정 해주었다.
이로인해 전국 484만 정보의 토지 중에 471.3만 정보가 조선농민들의 사유지로 인정되었다. 무려 전체 토지의 97.4%가 사유지로 인정된 것이다. 일제는 절대로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의 백성들을 일본백성으로 흡수하러 온것이기에, 조선땅을 뺏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조선백성들이 사유지를 갖고 농사를 열심히 지어서 쌀을 생산하면, 일본은 그 쌀을 돈을 주고 사먹었다. 조선은 일본으로의 쌀수출 덕분에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삼성도 일본으로의 쌀수출로 성장한 기업이다. 당시 경남 의령군, 진주시 등에서 생산된 쌀이 마산항에 집결하여 일본으로 수출되었는데, 삼성 이병철 회장이 마산에 쌀 정미소를 건설하고 쌀 정미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삼성상회를 만들었고, 이후 삼성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삼성그룹의 시초가 된 삼성상회(쌀정미업)>
일본은 조선을 같은민족으로 여기고 영토와 백성을 흡수하려고 하였기에, 조선사회와 경제수준을 일본과 비슷하게 끌어올리려고 많은 투자를 하였다.
아래사진들을 비교해보면 구한말에 비해 일제시대때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한말 서울거리>
<구한말 남대문 거리>
<구한말 초가집>
<일제시대 서울거리>
<일제시대 명동거리>
<일제시대 커피숍>
일본은 위생사업에도 많이 투자하여 콜레라, 장티푸스같은 전염병 퇴치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일제는 철도건설에도 투자하여, 한반도 전체를 거미줄 같은 철도망으로 연결시켰다. 서기 1908년 부산에서 신의주를 연결하는 한반도 종단철도를 건설한 뒤에, 1911년에는 압록강 철교를 건설하여 한반도 철도를 만주철도와 연결시켰다.
<일제시대 조선 철도망>
일제시대때 특급열차 아카츠키호가 서울-부산 간을 6시간 대에 주파하였다. 부산에서 급행열차를 이용하면, 만주의 창춘(長春)까지 35시간,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9일, 프랑스 파리까지 11일에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 저렇게 빠른 철도망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제국을 세우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경부선 아카츠키호 식당칸>
<경부선 아카츠키호 1등석>
<경부선 아카츠키호 일반석>
- 일제시대 풍요로움으로 인해 일찍 서거한 방정환 선생
방정환 선생은 5월 5일 어린이날을 만든 일제시대 조선의 인권운동가이자 어린이 교육가였다.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
하지만 빙수와 설탕 등 단것을 좋아하는 식습관때문에 비만이었다고 한다.
당시 잡지에 방정환의 식습관에 대한 수필이 게재 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우리 사(社)에 있는 이의 이야기를 또 해서 미안하지만은 방정환 씨는 빙수를 어찌 좋아하는지 여름에 빙수점에서 파는 빙수 같은 것은 보통 오십 그릇은 범 본 사람의 창(窓) 구멍 감추듯 하고 설탕은 또 좋아하야 십오 전짜리 냉면에도 십 전짜리 설탕 한 봉을 넣지 않고는 잘 못 자신다. 그와 친한 분은 누구나 조심하십시오. 약간 돈 가지고 빙수나 냉면 내려다는 큰 코 다칠 터이니."
결국 방정환 선생은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해 31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
당시 한반도에서 설탕냉면은 전국의 노동자들이 여름에 즐겨먹는 식단이었다. 설탕은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까지도 고급선물세트로 틴케이스로 포장되어 팔릴 정도로 비싼 것이었지만 일제시대때는 풍족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이 일제시대보다 떨어졌던 것이다.
일제시대때 풍족했던 이유는 한반도가 일본제국의 거대한 엔화경제권에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엔화는 기축통화로 대접받아서, 아시아 전역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설탕같은 수입품들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때 철공소의 일반직원 월급이 80원 이었다고 한다. 당시 쌀1가마니(80kg) 가격이 13원이었기에 철공소 직원은 한달월급으로 쌀을 6가마니(480kg)나 사고도 돈이 남았다. 1927년도 1원의 가치가 오늘날 3만원에서 6만원이니, 철공소 직원의 월급은 240만원 ~ 480만원에 달했다.
즉 독립운동가들이 주장하는대로 일본에서 독립을 한다는 것은 엔화경제권에서 탈출한다는 의미이고, 한반도 경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경제가 몰락하면, 치안이 안좋아지고, 공산주의 세력이 침투하여 공산화되고, 이념갈등으로 인해 전쟁이 발생한다. 국민들의 생활이 급속도로 어려워 지는 것이다.
일본이 일본열도, 한반도, 만주, 대만땅에만 만족하여 미국과 동맹을 맺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만 했다면, 일본제국이 유지되었을 것이고, 우리민족은 빈곤과 비참한 6.25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민족은 강제로 독립하게 되었고, 경제가 몰락하여 한반도 민중들의 삶은 처참해졌다. 거리에는 굶어죽어가는 사람들, 버려지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북한지역에는 이미 공산주의 세력이 침투하여 공산정부를 세우고 있었다. 당시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내 조국이 일본인데 왜 독립해야 하냐고 의문을 가졌다. 이미 일본인으로 동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제국 지도>
일반백성일수록 일본제국처럼 크고 부강한 나라에 사는 것이 좋은 이유는 그만큼 내수시장이 튼튼해서 경제적 기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 면적보다 5배나 큰 만주는 기회의 땅이었다. 만주는 광활하고 기름진 농토가 펼쳐져 있고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한반도는 만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이로인해 많은 조선인들이 만주에 진출하여 농토를 개척하였다.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으니 한반도 보다 6~7배 넓은 농토에서 경작을 할 수 있어서 쉽게 부농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일본군과 경찰들이 만주를 장악하고 있어서 치안문제도 해결되었기에 조선인들이 안심하고 만주땅을 개척할 수 있었다. 당시 만주 일본군(관동군) 장교였던 인물이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이다. 최규하, 강영훈은 만주국의 관리로 근무하였다.
창춘, 하얼빈 같은 만주의 대도시들은 이미 일제에 의해 서구식 근대도시로 탈바꿈 한 상태였다.
<일제시대 하얼빈역>
아울러 거대한 엔화경제권에 편입되어 있어서 외국의 수입품들을 값싸게 수입할 수 있어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고환율로 인해 고생하고 있고 미국은 단기 통화스와프도 체결해 주지 않고 있다. 결국 인플레이션(물가상승)으로 인해 일반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언제 외환위기가 닥칠지 모르니 불안한 것이다. 작은경제권에 살면 이렇게 불안한 것이다. 부자나 재벌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일반국민들은 타격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일반백성일수록 일본제국처럼 크고 부강한 나라에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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