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출신이다. 공익이 일은 안힘든데 사람때문에 힘든경우가 좀 있어.
최근 공익썰이나 공익글 많이 올라오길래 그동안 참아왔던 공익썰이랑 개씨발 사회복지사년 썰좀 풀어본다.
내가 그동안 친구들이랑 노가리 까면서 군대얘기 나오면 공익은 뭐하냐 했었던 말을 인터넷에 싸지르는건 이번이 처음이네.
내가 공익했었을 때는 옷이 검은색이었을 때였음. 밑에 적을 후임은 파란색 옷 입고 오더라. 얘는 멸공이라 물려주지도 못함.
지금은 사회복무요원이라 부르지만 나 입대할때까지만 해도 공익근무요원이었고 공익 근무중에 공문 와서 이젠 공익근무요원이라 부르지 말고 사회복무요원이라고 부르라는 공문 왔었다.
나같은경우 흔히 말하는 돼공이었다. BMI지수 턱걸이 수준이어서 신검받을 때 재검때려줄까? 아님 4급 공익받을래? 하길래 닥후 선택해서 12월달에 근무지 선택하고 공익으로 갔었다.
공익계의 최전방이라는 요양원 공익이었는데(복학문제때문에 여기밖에 자리가 없었음) 일이 힘들고 안힘들고 떠니서 사회복지사랑 좀 마찰이 있었다.
일단 내가 2년근무중 1년5개월동안 후임 없이 혼자 일했다. 근무지 오자 마자 개막내에 최선임이 된거지.
원래 내가 있던 근무지가 4명이서 근무하던 곳인데 나 오기 바로 전주에 쌈박질 나가지고 원장이 4명을 다 뿔뿔히 흩어놨음. 한명이라도 남겨주지 ㅅㅂ...
이것도 개빡칠 사항인데 1년5개월을 후임없이 4인분의 일을 하다 드디어 후임이 와서 요양보호사 대빵이 그동안 고생했다고 나 좀 편한자리로 옮겨준다고 함. 요양보호사 대빵이 복지사한테 공익 보직에 관해 건의하니깐 그걸 왜 당신이 정하냐며 사회복지사가 요양보호사 대빵이랑 싸움남.
안타깝게도 나이는 요양보호사 대빵이 많아도 직장 내 권력서열에선 사회복지사가 더 위었기 때문에(아무래도 지어진지 몇년 안된 요양원이다 보니 다른데는 몰라도 내가 있었던 곳은 복지사가 요양보호사보다 급여도 더 높고 직급도 높았음)
결국 요양보호사가 져서 나 다시 하던 일 계속함. 그 편한자리는 새로운 신입 공익이 갔음.
결국 소집해제 2달 남기고 새로운 후임 왔는데 그때서야 다른 편한자리로 옮겨줌.
공익 말년을 좀 편히 보내려고 했지만 그 복지사련이 쉬지도 못하게 하더라. 후임생겼냐고 풀어졌냐면서.
언제는 한번 복지사가 날 우수공익으로 추천해준다고 하더라.
나름 포상금도 기대해 보고 병무청 가서 사진도 찍는 그런건줄 알았다. 존나 멍청했지.
어느날 나한테 대전가서(나는 충청도가 근무지었기 때문에 교육을 대전가서 받았음) 교육받으라는 공문이 왔음. 소양교육 직무교육때 교육가서 1주, 2주간 개꿀빨았던 기억이 있어서 즐겁게 3일간 휴가아닌 휴가를 받아서 돌아왔는데 포상금이나 사진은 개뿔 나중에 알고보니깐 사회복지사 실적에 포함되는거랬더라. 이 씨발년 지 실적 올릴려고 이 교육이 사람들이 잘 안가려고 하니깐 사회복지사가 추천해서 이름 올려서 교육 받고 오면 복지사(그러니깐 공익 담당자) 실적이 오르는 그런 시스템이더라. 지 실적때문에 나 팔아먹은거임. 그나마 이건 덜빡치는게 차라리 교육받는게 요양원에서 있는것보다 더 낫고 식비+교통비+교육비에 집이 멀다고 숙박비까지 지원됐기 때문에 3일 교육받는것만으로도 한달 급여의 절반정도의 보상금이 떨어졌기 때문.
아무튼 이 실적관련된건 소집해제 이후에 안 사실이었기 때문에 근무 당시엔 복지사와 마찰은 없었다.
진짜 가관은 소집해제 당일이었는데 소집해제 전날 내가 내일 일정 물어보니깐 그날 원래 하던대로 일 하고 들어가라고 함.
그러니깐 한마디로 현역한테 제대날에 아침점호 받고 부대에서 아침점심 다 먹고 위병소 근무까지 서고 저녁먹고 제대신고 하라 라고 하는거랑 마찬가지임.
원래는 12시 전에 근무지에서 인사 하고 군청가서 공익담당 공무원한테 소집해제 신고만 하면 되는거임.
존나 개같은 상황에 이런일이 어딨냐고 따졌더니 공익도 군인이라며 개지랄을 떰. 시발. 군인도 제대날엔 아침밥 먹기 전에 보내준다고 하니깐 그러길래 왜 현역가지 공익왔냐고.
23개월동안 요양원에서 진짜 착하고 성실한 청년 이미지로 살아왔고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이런아들 뒀으면 할 정도로 좋은 이미지었는데 진심 이날 그 이미지 다 깨부수고 사람한명 때려 눕힐뻔했다.
담당 공무원한테 좀 하소연 해보려 했더니 담당 공무원 휴가...
내 성격상 사람은 칠순 없어서 SNS에 존나 하소연했더니 아뿔싸 재단 사무총장(재단 No2)이 아는분인데 그분이 그 글을 보고 요양원 원장한테 나 빨리보내라고 말한거임.
원장을 통해 그 소식을 들은 사회복지사 개씨발년이 나한테 찾아오더니 이거 직권남용(?)이다 빽써서 뭐하는거냐 지금 나랑 해보자는거냐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 등등 개 면박을 주길래 진짜 한대 날릴뻔한거 욱욱거리며 참아서 겨우 다음날 점심먹고 가는걸로 쇼부봤다. 시발 내가 개호구지.
대망의 소집해제날 출근해보니 오후에 바쁜일 생겼다고 시발 그거 해놓고 가라네? 거기다 또 한마디 양념해서 원래 군인은 제대하는 날 밤 12시까지는 군인신분이라며 안해놓고 가면 군청에 신고해서 복무연장시킨다고 개협박(이년은 평소에도 복무연장으로 수시로 협박한 년이다)
결국 4시에 끝나고 군청가서 담당공무원한테 소집해제 신고하러 갔더니 이년도 퇴근. 전화해서 물어보니깐 왜 그시간에 왔냐고. 시발년 지 담당 공익근무요원 소집해제일도 까먹었나? 그날 소집해제 한 사람이 4명인데 인원체크도 안해봤나?
아무튼 1년11개월 중 그 시발년이 사회복지사로 온 약 1년3개월정도의 기간동안 사람 한명때문에 개고생했었다.
공익썰 풀어보랬더니 씨발년썰만 존나 싸질러놨네. 내가 그년한테 맺힌 한이 좀 많긴 한가보다.
또 원장으로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3사출신에 중령전역한 전직 군인이었던거임.
난 분명 공익으로 갔는데, 출퇴근 하는 사람인데... 점호라고 부르던게 있었다. 출근점호 퇴근점호...
그냥 간단히 "출근했습니다. 오늘 예상 일정 무엇무엇입니다.", "퇴근하겠습니다. 오늘은 무슨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외 이상 없습니다." 등의 신고를 매일마다 했음. 식사인사도 "식사맛있게하십시오" 였음.
그래도 이아저씨는 괜찮은 아저씨여서 얼굴 붉힐일은 없었다. 한 보다는 좋은 기억이 많지. 단 공익을 군인정신으로 길렀다는것 빼고는.
사실 공익하면서 남직원들하곤 사이좋게 지냈다. 워낙 여초직장이다 보니 남자들이 귀해서 남자들끼리 똘똘 뭉쳐서 그랬는지도 몰라도 남자들끼린 형동생 비슷하게 지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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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공익이 헬공익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진짜 헬 맞다. 지금 이 글을 보고있는 예비공익들아 공익 신청 할 때 나처럼 복학기간 맞추려는 사유가 아니라면 요양원 상하수도는 무조건 피해라.
내가 있던 요양원은 정원이 80명정도 되는 나름 그 지역에선 큰 요양원이었다. 요양병원이 아닌 요양원 치곤 많은 인원인거지.
그정도 크기의 요양원에 근무기간 반 이상을 나 혼자 있었음.
첫 근무지 왔을 때 복지사는 남자였다. 이분이랑은 형동생같이 지내며 즐겁게 보내고 나름 일할때 유드리있게 챙겨주고 최대한 뺄껀 빼줬음. 이때까지만 해도 내 할 일만 했으면 됐었는데... 사회복지사가 바뀌고 나서는...
일단 요양원 공익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입무는 이렇다.
난 현관에서 근무했는데 보호자가 오면 내선전화로 요양보호사에게 누구누구 보호자 오셨다 하고 방문기록부 작성. 식사시간 되면 밥차 나르고 배식 및 식사보조(그러니깐 밥먹여주는거)
1주일에 2회 있는 목욕시간때 목욕카트 이송(사실상 이게 제일 힘든일인데 하루에 오후일과를 다 여기에 투입되는데 이걸 한주에 두번씩이나 함)
씻기는 일은 요양보호사 몫이었고 나는 목욕 대상자 목욕카트에 실어서 목욕탕 앞에까지 끌어주고 상의 단추만 풀어주고 담요 덮어주고 목욕 끝난 어르신 다시 침상에 옮겨주는 일만 했었음. 목욕카트 무게가 진짜 어마어마 해서 두명이상이 끌었어야 했고 턴이라도 하려면 온몸을 다 써서 턴을 했어야 했다.
원 외부 청소(거미줄제거나 쓰레기 제거 낙엽제거 등)
눈오면 눈치웠는데 하필 여기 요양원이 마당이 존나 큼. 대형 복지재단 내에 요양원이 같이 있는곳이어서 눈만 왔다 하면 재단 전 남직원이 투입돼서 제설작업하는데 복지재단 특성 상 남직원이 얼마 없음. 재단공익 전체 인원이랑 재단 내 남직원 인원이 삐까삐까함.
물리치료 시간표 맞춰서 입소자 물리치료실 데려다 주고 끝났다는 연락 오면 다시 데려다주기
하루 한차례 이상 있는 놀이행사나 이발, 각종 행사에 어르신들 데려다주고 프로그램 보조(어르신 휠체어에 태우는게 장난아니다.)
어항관리
휠체어 상태 체크하여 고장 수리 및 바람넣기, 휠체어 닦기
식당 보조(무거운거 날러주거나 식당 물기제거)
입소자 수발 들어주기 등등
출근 후 퇴근 전 일일히 병실에 방문해서 인사하고 갔는데 인원이 인원인지라 이것만 30분 이상 잡아먹었다. 문제는 이 퇴근인사를 5시30분이 아닌 6시에 하고 가랬던것.(전임 복지사는 알아서 5시반쯤에 어르신들한테 인사하고 원장한테 퇴근인사 하고 가라고 했는데 복지사 바뀌고 나서 원장한테 퇴근인사 하고 어르신 퇴근인사 하라고. 그러니깐 앞뒤를 바꿨다)
지역 내에선 나름 큰 요양원이라 기부물품도 엄청 오는데 이런 기부물품대장이라던가 물품 정리를 나랑 요양보호사중에 남자 한명이 다 했다. 이 형이랑도 좀 친했는데 요양보호사 부대빵이었음. 이형이랑 사회복지사 뒷담 존나많이깜.
목욕을 비롯해서 제일 힘든일중 하나가 쓰레기 정리
요양원 내 입소자와 직원을 포함하면 150명이 넘는 직장의 쓰레기는 정말 상상도 못할정도로 많다. 거기다가 요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대부분 뭐다? 똥기저귀다.
아참 요양원 공익이면 거기 환자들 똥치워주고 똥닦아주고 하냐고 가끔 친구들이 물어보는데 그건 요양보호사들이 할 일이지 공익들이 할 일이 아니다. 단지 그 똥기저귀 담은 쓰레기봉투를 내가 치워야 한다는것.
요양원 내에 청소부가 따로 있어서 똥기저귀를 치우는건 내 몫이 아니었지만 그분이 100리터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들을 넣어서 압축하는 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이 쓰레기봉투는 100리터를 가득 채우고도 기저귀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100리터 봉투 위에 올리고 테이프로 감아 사실상 120리터가 넘는 그런 쓰레기봉투였다.
똥기저귀가 압축된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는 정말 엄청무겁다.
웬만한 쌀 한포대 무게에 냄새는 또 어휴...
그 쓰레기를 1주일에 3일씩 수거일에 맞춰서 쓰레기수거장에 운반하는 작업인데 냄새에 장난아닌 무게에 이것도 위에 써져있는 요양보호사 형이랑 같이 했었다. 여름만 되면 냄새가 장난 아니었지...
거기다가 요양원 특성상 남자직원이 거의 없다.
내가 근무할때만 해도 복지사가 여자일때 기준으로
공익 한명 남자에 요양보호사 남자 3명(이것도 파트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한명에서 두명) 원장
이렇게 전체 남자만 5명이었다. 요양보호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무원 복지사 조리원 등등 전체 직원이 60~7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공익 포함 딱 5명만 남자인거임.
요양원 내에서 힘써야 할 있으면 당장 나부터 찾음. 그냥 군말없이 힘쓰는 일 다 해줬음.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라는 심정으로 했음. 이러니깐 요양보호사 내에서 평판이 좋았던거지.
거기다가 한달에 한번씩 있는 생신잔치에 노래불러주는 자원봉사자분들 안오면 내가 마이크 잡고 노래불렀어야 했다.
언제는 한번 도지사가 우리 요양원을 방문했었는데
사단장이 부대 방문할 때 병사들의 심정을 그때 알겠더라고.
요양원 내외부 대청소에 도지사 방문날 의전셋팅까지 싹다 하고 정작 이시종(도지사) 얼굴은 못봤음.
요양원이 몸적으로 힘든게 아니라 마음적으로도 힘든게 있는데
내가 불과 바로 어제 퇴근인사하면서 저 들어갑니다. 오야 조심히 가라 했던게 불과 몇시간 전인데 다음날 출근하고 보니깐 병원에 실려갔다 하고 곧이어 사망소식 전해질 때.
진짜 이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내가 근무하면서 보내드린 어르신들이 30~40분 정도 될거다. 근무하면서 송장도 몇번 봤었다.
특히나 겨울철같이 추운날씨가 되면 하루에 두세분씩 병원으로 후송되는 경우도 있었다. 병원에 후송될 때 구급차가 오면 구급대원을 안내하고 현관 나갈 때 문 안닫히게 잡아주는 일도 내가 맡았었는데 구급차에 실려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제발 이 모습이 마지막이 아니길 하면서 빌었었다.
양손이 묶여있는 치매환자를 보면서 처음에는 꼭 저렇게 해야만 했을까 했는데 불과 며칠 안지나서 깨달은게 손을 안묶으면 자해를 하는 환자였다. 아니면 보이는 사람을 닥치는대로 공격하는 환자도 있었고 침대 사이드 안전바를 자기 스스로 풀고 낙상하는 사고가 발생해서 손을 묶어놓은 환자도 있었다. 이 일을 겪고나서 가끔 뉴스에 나오는 환자 손 묶어놓는 행위는 인권침해다 라는 말을 이젠 개소리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환자 인권이 아닌 환자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었기 때문.
요양원 공익하면서 수많은 치매환자분들을 봤다.
수도때도 없이 배고프다며 밥달라고 하던 분
날보고 형이라고 부르던 분
나만 보면 맨날 웃어주던 분
현관에 10분마다 한번씩 와서 우리딸 안왔냐고 물어보던 분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갔다오신 썰 풀어주신분(이분은 치매가 아닌 뇌졸중으로 오신분)
빨갱이는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나한테 귀에 박히도록 예기하신분 (이분은 내가 인사하러 갈때마다 너 빨갱이지? 빨갱이는 돌로 쳐죽여야돼 라고 하셨다. 진짜 때리시는분이라 손을 묶어뒀음.)
소아마비로 고생하시다가 요양원까지 오게 되신 50대 내 친구 아버지...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셨던 정정하셨던 분이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요양원에 오신분.
23개월간 요양원에 있으면서 먼저 가신분들, 다른곳으로 이원하신분들, 퇴원하신분들, 소집해제때 요양원에 있으신 분들 다 합하면 200여명이 넘는 어르신들이랑 같이 생활하면서 나는 공익근무요원이었던 동시에 그 사람들의 손주였었다.
마지막으로, 공익때 받은 신발이랑 바지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공익 초기에 신발 2셋트 총 4켤레, 상하의 동하복 각각 2벌씩 총 4벌, 야전상의 같이 생긴 두꺼운 잠바(이거 은근히 따숩더라) 등
바지는 몰라도 신발은 복무기간동안 아얘 신은적이 없는데 생긴게 완전 단화랑 똑같기때문에 가끔 양복입을 때 단화나 구두 대용으로 신으면 가까이서 봐도 이게 공익신발인가 싶을정도로 시중에 있는 단화랑 별반 다를것 없다.
2셋트 줬는데 아직 1셋트는 한번도 안신은 새거임.
사단 신교대에 입소하던 어리버리 훈련병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내년이면 예비군 6년차네.
복무하면서 겪었던 어르신분들.
살아계신다면 행복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고
돌아가셨다면 명복을 빌어들이고 싶다.
그리고 주변에 치매나 뇌졸중 등으로 고생하는 환자 있다면
요양원 보내는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요양원 가기 전만 해도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같은 그런 인식이 있었는데 요양원에서 있다 보니깐 그런 편견 대신 요양원은 어르신판 유치원같은 곳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월 30~50만원에 먹여주고 재워주고 약도주고 병관리도 해주고 똥도치워주고. 집안에서 병간호인 불러서 수발시킬거 아니면 요양원 보내라. 괜히 효도한다고 개고생 하지 말고 요양원이 효도다.
프로그램 보조하면서 그렇게 해맑게 웃으시던 어르신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끝으로. 요양원 밥은 진짜 끝내줬다. 위생사 선생님이 식단도 기똥차게 잘 짜고 조리원 선생님들 요리실력은 얼마나 뛰어나던지 가뜩이나 돼공인데 밥을 워낙 잘먹어서 오히려 찌고나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