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비들은 11월 3일 새벽 울진 북면 고수동 주민이 울진경찰서에 무장공비 출현을 신고하였다. 내용인 즉 이날 아침 무장공비 30여명이 산간마을인 고수동에 나타나 주민들을 강제로 집결시켜 놓고 북한을 찬양하는가 하는, 이에 반항하는 주민들을 칼로 찌르고 돌로 쳐서 죽였다는 것이다. 또 신고할 경우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노동당, 여성동맹 등에 가입하도록 총검으로 강요하였다는 것이다. ... 군경과 예비군은 본격적인 토벌작전에 착수,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계속된 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여 침투한 120명 모두를 소탕 ...
1.당시 주장은 120 명의 무장 공비가 내려와 당시 강원도
삼척,울진 지역에 (박정희로 부터)해방구를 만들려고
총,칼로 위협하고 북한 찬양을 강요했다함.
2. 이후 신고를 접수한 한국 군,경은 113명의 공비를 소탕하고 7명은 생포했다함...
당시 북한이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형편이나 됐을까? 울진.삼척 사건이 일어났을 때 북한은 미 첩보함 푸에블로 승무원 82명의 미국 송환 문제를 놓고 10달째 미국과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그 해 1월 23일 푸에블로호가 나포됐을 때 미국은 원산 앞바다로 핵추진 항공모함을 보냈고, 오키나와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전폭기 수백 대에 발진 대기 명령을 내리면서 북한 침공을 공언하고 있었다. 이처럼 미 본토와 일본, 오키나와, 한국 등 태평양지역 주둔 미군이 일제히 비상대기체계에 들어갔고 일본 자,위대까지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이처럼 일촉즉발의 위험한 국면 끝에 협상이 시작돼 10달째에 접어든 상황에서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개시하는 위험한 행위를 했을까?
그렇게 여기는 이들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울진.삼척에 북괴 무장 게릴라들이 떼로 나타났다고 선전하면서도 사실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제2의 6.25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박 정권이 시종일관 태연자약할 수 있었던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이들은 박 대통령이 두려움을 모르는 지도자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박 정권이 1967-1968년 2년 동안 수시로 38선 부근에서 대북 도발을 일삼았고, 미국 존슨 정권은 박 정권이 무모한 행동이 자칫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전쟁에 준하는 국난(?)을 당해서도 저들이 태연자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건이 불시에 당한 도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박 정권은 1967년 내내 ‘북괴 무장공비의 1968년 대량 남침’을 떠벌렸고, 특히 1967년 8월부터 ‘봉쇄.섬멸 작전’을 공언했다. 1968년이 되면 북한 무장 유격대가 대량으로 남파될 것이고 이들을 봉쇄해 섬멸할 것임을 일찌감치 공언해 왔다는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예언하고 준비한 사건이 바로 (1.21 청와대 기습 작전과) 울진.삼척 작전이다.
즉 독재를 정당화 하기 위해 이런 연극을 한거다.
물론 그 야욕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해에 성탄에 심판 당하지.
이런 비슷한 짓을 이승만도 했었다.
자기 편한테 인민군복 입혀서 사상검증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전쟁 중 자국민 120만명을 학살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