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자가 본 조선 1부
내가 읽은 모든 책들중에 아손 그렙스트만큼 조선의 삶을 실감나고 자세히 묘사한 책은 없다.
관심있으면 반드시 구매해서 보길 바란다.
도쿄에서 신문기자를 하고 있는 아손 그렙스트는 러일전쟁에 관심을 갖고 조선으로 가려고 했으나 기자 신분으로 입국이 거절당하자 양말 상인으로 신분을 위장해서 부산항으로 들어갔다. 일기는 부산항에서 입국하면서 서울로 올라가서 생활할때까지 내용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아손의 사진은 없다.)
코레아인의 인상
전형적인 몽고인 상의 그들은 온화하고 무관심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코레아 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다. 또한 신체가 잘 발달되었고 균형이 잡혀있었다.
일본인의 특징인 비굴함과 지나친 예의 차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부산에서 코레아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거리는 좁고 불결했으며 가옥은 낮고 볼품이 없었다. 일본에서처럼 상점이나 눈길을 끄는 절도 오래된 절도 없었따.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하였으며 문밖에는 집에서 버린 쓰레기가 쌓여있고 개개들 먹을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말라붙은 하수도가 있는데 끈적끈적한 바닥에서 온갖 종류의 오물들이 썩어가고 있었따. 그사이에서는 머리가 지저분한 애들이 노는데 어제 그저께 세수한 얼굴이 결코 아니었다.
코레아 사람들은 낙천적인 민족이지만 이들은 일하는 것을 증오한다.
따라서 코레아 풍부한 어장이 있는것과 코레아인의 생선 수요가 높은것에 덕을 보는 것은 부지런한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다.
경부선
(마침 저자는 경부선 철도의 최초 승객이 되었다.)
코레아인들은 기차를 구경나오러 온 흰색 일색(두루마기옷)이었다.
기관부는 일장기로 치장되었다.
그들 대부분이 처음 역에 나왔고 따라서 기관차도 처음보는 것이었다.
기관차의 역학에 대해 조금도 아는게 없어서 대단히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들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나이가 큰 바퀴중 하나에 손가락을 대다 주위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그 용기 있는 사나이를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기관사가 장난 삼아 환기통을 연기를 뿜어내자 도망가느라고 대소동이 일어났다.
이 무리들은 한뗴의 우둔한 양들을 연상케 했다.
객식 창가에 서서 이 소동을 지켜보았다. 가장 웃음이 나오는 것은 키가 난쟁이처럼 조그만한 일본인 역원들이 얼마나 인정사정없이 잔인하게 코레아의 아이들을 다루는가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본인만 보면 두려워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갔다.
키작은 섬사람들은 손에 회초리를 쥐고 기회만 있으면 맛을 보여주었다. 그 짓이 재밌는 모양이었다.
사실 사람들이 멍청하고 둔할 때 때려주는것만큼 속 후련한일이 또 어디 있을까?
부산 역의 북새통에서 마지막 본 장면은, 그 무리에서 가장 키작은 일본인이 키크고 떡 벌어진 한 코레아 사람의 멱살을 거머쥐고 흔들면서 냉동이치자 , 자빠진 그 큰 덩치의 코레아 사람이 땅에 누워 얻어맞은 아이처럼 징징 우는 모습이었다.
코리아의 시골 모습 그리고 다리
출발한지 한 시간쯤 지나자 창밖의 경치가 변하였다.
동네 어귀에는 여인들이 강가에 꾸부리고 앉아 빨래를 했다.
기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달려가자 , 그들은 하던일을 멈추고 아비규환으로 도망가며 숨을곳을 향해 뛰었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들 뒤를 따랐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달려가자 강가에 있던 한무리의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다리를 건너기 위해 서둘렀다.
그 북새통에 20여명이 물속을 빠져버렸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물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코리아의 시골에서는 다리를 튼튼하게 짓지 않는다.
좁은데다 형편없었다. 이 다리들은 보통 통나무 위에 막대와 지푸라기 나뭇가지를 깔고 진흙으로 덮는다. 보수공사라 보잘것없어서 비만 쏟아져도 무너지기 일쑤다.
일본군 대위가 말하는 코레아
기차에서 일본인 대위가 식사에 초대했다.
그와 재밌게 대화를 하면서 이 나라 민족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망국에 운명에 처한 민족입니다”
그는 대답했다.
“장래성이 없고 중국인보다 더 엉망인 민족입니다. 1천년전 잠든 바로 그자리에 아직도 머물러 있습니다. 더 나쁜건 잠에서 깨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다리로 일어나기를 원치 않으며 독립을 바라지 않습니다. 될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하기를 바라고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무걱정없이 평화롭게 사는것이지요. "
"그들은 일 슬픔 기쁨은 나눠가지려 하면서 수입은 독차지 하려고 하지요.
코레아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는 생존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 코앞에 닥쳐야만 일을 합니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자체를 서럽게 생각하며 아무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야할 시간에 일을 해야하는 것을 시간적인 손실로 여깁니다. “
조선의 양반, 체면 유교 문화
코레아의 선비는 어떤 까다로운 사람의 눈에 노동으로 보일만한 모든 일을 최대한 멀리하는것입니다. 자기 손으로 옷을 입어도 안되며 담뱃불도 스스로 켜서는 안됩니다. 옆에서 거들어 주는 사람 없이는 말 안장에 제 힘으로 절대 오르지 않고 ,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면 누가 와서 일으켜 세우기 전까지는 땅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어야 합니다.
선비는 사사로운 일에 장사에 관여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장사가 노동이고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코레아의 유교 예절은 의식적으로 속이려 들지는 않지만 허무맹랑한 이론으로 결론을 맺는 논법은 사람을 놀라게 할만합니다.
공직자들은 체면을 차리느라 가마를 타고 다닙니다. 그 가마속에서 방석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하루에 10시간을 거뜬히 견딥니다.
나라의 고위층 관리들은 체통을 드높이기 위해 네명의 가마꾼을 둡니다.
공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선비들은 자기들이 가난해보이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허를 보여서는 안되며 반드시 격식을 가추어야 합니다.
조선의 가정 문화
코레아 양반의 예의 철칙중 하나가 부녀자에게 무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내를 부를땐 적당한 호칭이 없고 이름대신 “거시기”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코레아인에게는 모두 소원이 있는데 자신이 죽은후 제사지낼 아들을 두는것입니다.
죽은 부모나 조상의 귀신에게 제사는 코레아 아들들이 받아들여야할 가장 심각한 의무입니다.
백인만 보면 신기해하는 코레아인
코레아에서 백인은 날마다 볼수있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관찰되었고 어디를 가든지 많은 무리들이 졸졸 따라다녔다.
그들은 내가 불쑥 한걸음을 내디디면 그들은 두발짝 물러났고 못된짓을 저지르고 매를 맞을까봐
두려워하는 개에게서나 볼수 있는 표정을 읽을수 있었다.
아손의 일기를 읽으면서 느낀 가장 놀라운점은
그가 당시에 관찰한 조선인이 현대의 한국인과 너무나 닮은점이 많고
그가 얼마나 정확히 한국인을 관찰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