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스러워진 ‘트럼프’
‘親 김대중’에게도 트럼프는 ‘親김대중’으로 보이고, 反김대중에게도 트럼프는 ‘親김대중’으로 보인다. 기독교인의 정체성보다는, 한국식 농민정서에 가까워 졌다고 보여진다.
김대중은 천주교 교적을 가진 명분상의 천주교인이지만, 실제는 농민신앙인 천도교인이다. 샤머니즘 굿 정서에 빠지면, 상대를 보지 못한다. 굿판 정서에서 원자화된 개인을 ‘흥취’로 불러낸다. 그렇게 대중을 불러내는 방식에 도취된 사람들은 그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김대중 방식을 강하게 비판하고 비하한다.
김대중은 이러한 발언을 남겼다. 북한이 핵 미사일을 개발하면 책임지겠다. 당시의 농민들은 북한이 ‘선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트럼프는 이러한 발언을 남겼다. ‘북한 핵 위기를 끝내고 싶다면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미국 국민 중에는 ‘북한 피로증’이 있나 보다. 소망의 상태를 사실로 믿게 하는 (현실이 사실이 아니라) 표현이다.
한미동맹파 한국인들은 많은 미국 대통령의 편을 들어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역대 대통령과 달랐다. 오히려, 한국 좌파정부 지도자와 사고방식이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 군 장성에 경례를 한 것은 ‘격식 파괴’다. 세계 지배 국가로서는 위치를 지키는 차원에서의 ‘품위’를 잃은 것이다. 이는 한국 좌파정부 지도자들의 ‘이벤트 정치’와 흡사하다.
직감적으로 느낄 거 같다. 트럼프는 재선은 어렵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