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화해 사기단” 과 “인권 사기단”의 같은 공식은 영웅우상화를 들어줘서 그렇다.
다음 달에 보나마나 좌익들이 칼 바르트의 화해론 운운하면서 쑈를 벌일 것이다.
그런데, 칼 바르트는 결코 예수를 무당으로 만들지 않았다. 좌익들은 무당예수를 말할 것이다. 성도의 교제로서 유대기독인과 비유대기독교인을 통합하는 교회는, 한국에서 쉽게 구성되지 않는다. 한쪽이 그렇게 살려해도 다른쪽에서 뒷통수를 많이 맞는다. 그래서, 쉽게 한국 교회는 이른바 ‘목사교’형태의 조직을 승낙하는 편이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巫敎적 인간관은 인간의 상호관계가 매우 약하다고 한다.
교회에서 십자가 희생이 아니라 뭔가 심리적 위로와 안심을 얻는 정신행위를 지향할 때, 하나님-매개자-신자의 구조를 취한다. 가톨릭과 분화됐으면서도 사실상 가톨릭 조직을 가게 된다.
1) 십자가 예수를 바라보고 쌍방이 잘못을 회개하고 화해하는 행위 (쌍방행위-수평적
2) 목회자가 무당지위로서 굿으로서 예배를 통해서 쌍방에 통하게 하는 행위 (단독행위-수직적)
쌍방에 회개와 화해가 일어나는 현상은 영적으로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쌍방행위를 모두 목회자에 안겨버리고, 신자를 수동형태로 만들어 버린다.
인권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가치로서 평가받을 문제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배려 문제다. 로마 민법의 기본관계가 상호성실의 문제다.
이런 차원으로 헌법 평등권은 국민주체 모두가 국민주체 상대방에 대한 약속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합리적 사고에 약하다고 ‘무당 지위’인 국가인권위에 맡기고, ‘무당지위’인 전교조에게 맡기기 공식이 있다.
이렇게 무조건 맡긴 영역에서 한미동맹파괴와 대한민국 파괴 지향으로만 흘러간다.
이러한 인권 담론 자체가 아닌 게 인권담론이라고 말하는게 세계적이라 믿는 교육감 후보가 있다. 견적이 불가능하다.
전교조 반대 차원으로 교육감후보를 단일화하는 자리에, 전교조와 각이 안 서는 후보가 단일화로 몰아가는게 우파 시민단체이긴 한가? 대리권 자체 및 권위의 자폭일 것이다.
세계적 추세가 위임되지 않은 귀족 과두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