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잔엽 주체사상 창시자
주체사상에 대해서
우리 한국에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 탈북자 동지들도 북한에서 무의식적으로 강제생활을 하다보니까
주체사상이란 어떤 사상인지 여기에 대해서 똑똑한 인식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여기 한국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잘못 얘기하는데 대해서 옳게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탈북자 동지들이 주체사상이란 무엇인가?
주체사상과 김정일주의하고 무엇이 다른가,
그런 것들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주체를 세운다는 것
한마디로 말해서 남을 무조건 존경하고
남을 무조건 모방하는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반대하자는 것입니다.
사대주의와 교조주의가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하면, 레닌이 조직한 국제공산당에서부터 나왔습니다.
레닌은 세계의 당을 하나로 만들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스크바에 중심이 있고 그 중심에 국제공산당의 모든 나라의 당들은
다 국제공산당의 지부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국제공산당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당들의 활동을 국제 공산당 본부에서 지시하다보니 제일 손해 본 것이 중국공산당입니다.
중국공산당은 그때 벌써 해방투쟁을 시작 할 때였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중국공산당에 자꾸 쓸데없는 지시를 하다 보니 손해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 후 43년인가 국제 공산당이 해산 되었습니다.
각국 공산당끼리 자유롭게 혁명을 진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레닌이 죽고 스탈린 때인데 형식상으로 해산해 놓고 스탈린이 가만 있습니까?
딱 틀어쥐고 계속 간섭을 하였습니다. 형식상 각국 당이 독립적인 당이다 해놓고도 계속 간섭하였습니다.
또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의 지시는 국제주의적인 지시다 그러니까 복종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제일 여기에 대해서 기쁜 나쁘게 생각한 것이 모택동이었습니다.
자꾸 소련에서 쓸데없는 것을 지시하고 간섭하고
그래서 모택동 여기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가지고서서 논문을 써서 당내에서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것이 정풍운동[整風運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그들의 전략전술에서 주체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중국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과의 투쟁에서 이긴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우리 힘으로 해방이 못 되었습니다.
남쪽도 그렇고 북쪽도 그렇고 북쪽에서는 순전히 소련 군대가 나와서 소련의 고문들이 나오고
소련에 있던 조선인 2세가 나와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김일성은 국내 지반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또 중국에서 김일성이 가담한 빨치산 부대도 중국의 판도에서 보게 되면
동북지방에서 빨치산이라고 하는 것은 조그만 군에서 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 총책임자는 주보중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수 민족 출신입니다.
나는 58년에 김일성이와 같이 가서 만난 일이 있습니다.
조선인 부대가 중요하게는 김일성이 부대가 하나 있었고
김책, 최용건 부대가 제일 큰 부대였고 7군단장이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는 중국 사람이 많았고. 김책이나 최용건은 김일성의 선배이지만
조선 사람이 많은 부대는 김일성 부대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41년도에 하바로프스크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에서 중국 사람들, 조선 사람들이 만주에서 들어간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걸 모아서 소련군대의 한 부대로써 88특수여단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인원은 한 200명가량 되는 데 다 합해서 거기에서 5분의3은 중국 사람이고 5분의 2는 조선 사람이고.
최용건은 그때 직위가 소좌이고 참모장을 해서 좀 높고
김일성은 대위고 대대장이고. 그런데 김일성은 머리가 좋고
소련 말도 괜찮게 하고 그래서 소련 사람들한테 신임을 받았고,
(같이) 일하던 사람한테 들으니까 그래요.
거기서 한 60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소련 태생의 사람이 12명이고
조선 태생은 48명이고. 그 부대에 있던 사람은 그 사람들 밖에 없었어요.
일본에 대한 선전 포고를 소련이 하게 되니까, 스탈린은 지시를 내립니다.
88여단 사람들은 소련군대가 나가서 점령한 지방에 나가
점령군 사령관들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들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때문에 소련 군대가 북조선에 진주할 때 조선 사람은 하나도 참가 못했습니다.
김일성도 9월 17일에야 원산항을 통해 나왔습니다.
김일성을 내세운 것은 순전히 소련 군대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김일성이 세력은 아무런 권한이 없었습니다.
전부 소련 고문들이 (북한을) 모두 장악하였습니다.
우리 대학에도 전부 소련 고문들이 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주체’ 생각을 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31년 카륜회의부터 주체사상을 생각했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됩니다. 19살에 주체사상을 알겠습니까?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면서 김일성은 최고사령관이 됐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전쟁 때, 소련 군대가 나오지 않고 중국 지원 군대가 나왔습니다.
중국지원 군대라는 것은 단순한 지원군이 아니고 진짜 단련되고 또 단련된 우수한 군대들이 나왔습니다.
소련 군대하고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조선 사람들의 뜰을 다 쓸어주고 밥도 같이 먹으며 어린이들이 물에 빠지면 그들을 다 구원해주었습니다.
우선 중국 군대가 나와서 조선 사람과 관계가 좋았고 거기다가 소련 군대는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53년 3월에 스탈린이 죽었습니다.
그 후에 김일성이 스탈린의 예속에서 벗어나 자체의 독재를 세우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맑스.레닌주의를 조선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된다,
이것이 주체사상이었습니다. 그 후 김일성은 스탈린 만세를 김일성 만세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내가 소련에서 유학할 때도 학생들은 모임에서 스탈린 대원수 만세를 부르고서야 김일성 만세를 불렀습니다.
중국은 리몽 이라는 학생이 책임자였습니다.
5.1절 행사 때는 학생 책임자를 다 부른 자리에 소련의 공청비서가 나오곤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이것해라 저것해라 하고 지시하였습니다.
스탈린이 죽자 김일성은 자기 독재를 세웠습니다.
먼저 남조선에서 온 남로당 계통을 자르고 중국 계통을 잘라 냈습니다.
소련 계통은 자르지 못하고 소련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자기의 독자적인 체계를 완전히 세운 것은 58년이었습니다.
이렇게 처음엔 주체를 세운다고 하다가 그것이 주체사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주적인 입장에서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된다고 하던 데서,
사상에서 주체를 세우고 자기당의 사상을 가져야 한다,는 데로 발전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맑스.레닌주의를 자기 수령을 숭배하는 사상과 결합시켜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는 자립경제로 해야 한다. 정치는 다른 나라에 예속 되지 않는 자주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
국방에서는 자위 노선을 견지해야 한다.
그래서 사상에서 주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 이런 구호를 내세운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주체사상입니다.
원래 주체사상이, 그 자체는 하나도 나쁜 것이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맑스.레닌주의 자체가 잘못 되었고, 그것을 자기나라의 현실에 맞게 하자고 하면서,
스탈린 독재를 김일성독재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나쁘게 된 것입니다.
김일성이 남로당, 중국에서 나온 사람 소련에서 나온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 했다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스탈린주의자는 다 같습니다.
스탈린도 레닌이 죽은 다음에 반대파들을 다 숙청했습니다.
전부다 간첩, 지주, 자본가들의 앞잡이라는 이름을 씌워서 다 숙청했습니다.
특별히 주체사상 자체를 자꾸 나쁘다고 할 필요는 없고,
그것이 소련식 독재를 실시하는 데서, 북한이 봉건잔재가 더 농후하다 보니
더 심해졌고 그런 점은 우리가 비판할 수가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그런 것은 주체사상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자기네가 실정에 맞게 맑스.레닌주의를 적용하자는 데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집행하는 데서 잘못된 것이지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체사상 자체는 한마디로 말해서
소련에 대한 사대주의와 소련 경험에 대한 교조주의적인 모방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해석해야 됩니다.
봉건잔재가 농후하다보니 소련에서 보다도 북한의 독재가 더 심했습니다.
김일성이는 일을 열심히 했고 머리도 좋았지만 스탈린주의자인 데다
봉건사상이 농후하여 독재가 더 심했던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다른 당들의 수령보다 못하다 나쁘다하는 것은
봉건사상이 농후하고 가족주의적인 그런 경향이 있고, 다른 것은 민족적인 것은 무시하고
계급적인 걸 내세운 것이 잘못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련에서는 러시아의 위인들도 다 사진으로 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북한만은 이순신장군, 을지문덕장군 강감찬장군 등
역사적인 위인들의 (사진을) 다 떼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이만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북한의 체제가 달라진 것은 언제부터인가? 김정일 때부터입니다.
나는 두 사람하고 40년 동안 일했고 지도사상을 담당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스탈린주의에 따라서 노동 계급이 가장 선진적인 계급이기 때문에 독재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수령이 있고서야 공산당이 있다. 공산당은 수령의 것이다.
그러니까 수령에게 충성과 효성을 다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다.
이런 식으로 완전 봉건화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봉건적 가부장주의 그런 것입니다.
부모가 없이는 자식이 있을 수 없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다.
봉건 시대에는 부모의 승인 없이 결혼도 못했고
부모의 명령에 절대 복종 받고 말을 듣지 않으면, 막 죽여도 괜찮았습니다.
이것이 가부장적인 봉건 잔재입니다.
그러니까 스탈린주의에다 봉건적 가부장주의까지 결합 시킨 사람이 김정일입니다.
김일성 통치는 스탈린독재를 받아들인 것이라면,
김정일은 철저하게 수령절대주의를 조직화하고 제도화 하였습니다.
김정일은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마치도 김정일 이는 새 세대이기 때문에 좀 나을 것이다,
심지어 아무개는 날 염두에 두고 김일성이 서기를 했으니까
김일성이는 욕하지 않고 김정일만을 욕 한다고 한답니다.
이건 전혀 북한 실정을 모르는 말입니다.
김일성이 있을 때 굶어죽었습니까?
김일성인 그래도 밥이나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는데 다 파괴한 것이 누구인가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의 독재는 감탄할 정도입니다.
그전에는 연회가 있으면 연회 초대장을 바치고 갔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때에 와서는 초대장을 받을 때
회의를 열고 맹세문을 채택하고 철저하게 제도화하였습니다.
김일성이 있을 때는 생활총화가 없었는데 김정일이가 들어서면서
매주 꼭 사회 보장받는 사람까지 모두 (총화를) 다하도록 강요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종합대학은 유급당 일꾼이 3명이었는데 김정일이 들어서고는 60명이 되었습니다.
안전부도 그렇고 보위부도 그렇고 모두 늘어났습니다.
보위부에서 온 사람한데 물어보니 (대학에서) 20명 중의 한사람은 첩보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데서는 (첩보원의 숫자가) 혹 평균일 순 있어도
김대(김일성 종합대학)처럼 중요한 데는 첩보원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자꾸 김정일이 독재를 주체사상의 독재다,
주체사상 하면 김정일이 독재,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김정일하고 주체사상하고 인연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천리마 운동도 김정일이 다 마사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주체사상이자 곧 집단주의이고 집단주의이자 곧 공산주의 사상이다.
공산주의 사상과 김정일이와 같다 하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김정일의 독재정권은 공산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에 나쁜 것만 같다놓고
이제 말한 봉건적 가부장주의를 결합시킨 것입니다.
이런 특성을 가리지 않고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김일성이 에 대하여 말한다면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죽었으면 크게 비난 할 게 없습니다.
자기 아들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나서 사람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자꾸 옹호하다보니까 나쁘게 된 것입니다.
현재 북한을 저렇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이의 수령절대주의하고 주체사상하고 같은 것이 아닙니다.
중국하고 경쟁 대상이 안 되는데 중국이 잘되는 걸 얼마나 질투하는지 모릅니다.
(김정일은) 질투심은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자기 주민들이 잘사는 것도 질투합니다.
그래서 지금 김정일의 독재사상 수령절대주의, 군사적인 독재
이것은 주체사상하고 인연이 없고 스탈린주의 하고도 인연이 없습니다.
공통성도 조금은 있지만은 최악의 독재사상이고
반인민적인 민족반역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