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유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 참 교인 때모씨와 사과씨는 맹목적인 추종이란 점에선 그 궤를 같이하나 정작 이들이 섬기는 '주인'은 판이하다.
전편의 주인공인 비운의 가장 때모씨는 광신도 목사의 자의적 해석이 다분한 변질 성경을 믿는다면
오늘의 주인공 사과씨는 글쎄?
그가 진정으로 '성서'를 한 번이라도 정독해본적이 있을까?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아니라고 본다.
그의 성경은 때x때x의 말씀이고 그의 야훼는 곧 때수님이다.
아니, 과연 얼마나 멍청해야 이 같은, 다소 어처구니 없기까지한 추태를 부릴 수 있을까?
혹시, 행여나 그도 때모씨처럼, 자연히,
관통상을 입은 병정이 몰핀을 찾듯, 그렇게 종교에 빠지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이내 그의 일생을 머리 속에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정 계시라도 받은 듯 뚜렷하게 드러나는 애처로운 그의 삶.
잠시 눈물 좀 닦고.
자, 다시금 시작해보자!
우리는 오늘 공미게 대표 신학자이자 포스트 토마스 모어, 사과씨의 일일을 분석해보려 한다.
물론 그의 일상은 얼추 예상했듯, 썩 유쾌하지만은 못하지만, 속단하지 말자.
행복은 늘 상대적인 법이니까. 마치 그들의 성경처럼.
사과xxx담씨, 줄여서 사과씨의 하루는 비좁은 고시원에서 시작된다.
시끄럽게 조잘대는 오래된 탁상시계에는
'오늘도 화이팅'이나 '내일을 위해 '
따위의 다소 진부한 문구들이 쓰여있다.
그는 흔히 장수생이라 불리우는 공무원 시험 수험생이다.
변변찮은 대학을 졸업하고 어리숙한 차림으로 이곳 저곳 이력서를 보냈지만 글쎄?
21세기는 바야흐로 스펙의 시대.
활자보다 빈칸이 더 많은 사과씨의 이력서는 대게 서류 검토 1단계에서 불구덩이에 들어간다.
그는 곧 작전을 바꾸었다.
도전 종목은 무려 9급 공채.
그래도 고3때 배워둔게 있으니 괜찮겠거니, 하는 나태하고 미련한 마음가짐.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연이은 낙방.
점차 줄어드는 생활비.
주름살이 늘어가는 부모님.
사과씨가 처한 상황은 하나같이 비관적이기만 하다.
그러던 201x년의 어느날.
그는 우연히 그가 즐겨찾던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이며 동시에 보수적인 모순 투성이 사이트의 한 귀퉁이에서 재미난 글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므로 생략하겠다.-
때모씨라 알려진 이른바 열성 신도의 설교.
그 내용은 너무나 달콤해 당장 수 일 앞으로 다가온 시험마저도 잊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 이때 그는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낙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사과씨가 일전에 캉디드를 읽어 보았다면 그가 지금 처한 상황을 단 한 번 쯤이라도 의심할 수 있었을까?
안타깝지만 타인의 독서생활엔 흥미가 없다.
사과씨는 믿는다.
그것도 아주 굳게!
'휴거가 찾아오면 난 구원을 받는다'
예정된 유토피아로의 여정이라, 사과씨는 벌써부터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비록 먼 옛날 주위 민족들부터 탄압과 멸시를 받던 유대인들의 몽상적 계시록 그 어디에도 해당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뭐, 무슨상관인가?
지금 우리 사과씨는 비로소 잊고 있던 행복과 자존감을 찾았거늘.
성경이란 때때로 절대적이며, 또 상대적이기도 하다.
우리의 사이비, 아니 사이버 전도사 때모씨는 말했다.
"성경 말씀은 항상 옳으며 내 해석이 정확하다.
반박이 제시된다면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니 p목사, 아니 내 설교를 믿어라"
편하디 편한 마음가짐이로다.
존재론적, 우주론적 논의 따윈 모른다.
조선시대 연산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불쌍한 농민이 있었듯이 지금 관악구 고시촌엔 야훼를 믿으며 보편자도 모르는 우리의 사과씨가 있다.
좋다. 보다 솔직해지자.
사과씨는 거울 앞에 섰다.
여드름 투성이에 이곳 저곳 푹 패여 뵈기 싫은 얼굴이 미묘하게 꿈틀거린다.
'사이비, 아니 사이버 목사님은 좋으신 분이야.
솔직히 하루에 한 번 그분 말씀을 듣는다면 성경이야 안 읽어도 장땡 광땡 아니겠어?'
허허, 개탄스런 일이로다.
지금 구원을 바라는 고시 낭인 사과씨의 비루한 마음가짐은 이미 근면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야훼의 그것과 오 억 광년은 떨어져 있으니.
파스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의 단초가 여기 있소.
야훼께선 세상의 모든 도박사들을 사랑해도 이 역겨운 핏덩인 즈레 지옥불 속에 던져버릴지어다.
아, 잠시 감정의 격양이 일었다.
당사자인 사과씨에게 사과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때목사의 미개한 무신교도들을 향한 일갈이 길어져 갈 수록 그는 지혜를 얻고있다 생각했다.
그는 점차 그 아찔한, 흡사 어렸을때 훔쳐본 어머니와 아버지의 질펀한 섹스와도 같은 금단의 진리에 다가서고 있다 믿었다.
그의 전도사가 몰매를 맞을 땐 제일 먼저 달려가 고기방패를 자처했고
가끔씩 열띤 토론이 끝나갈 때 즈음 튀어나와 장작을 집어 넣기도 했다.
의구심을 표출하는 배덕자는 지옥으로!
나는 성인의 발걸음을 좇아 진리의 제단을 향해 달려가는 건장한 당신의 어린 양!
새삼스레 하는 얘기지만.
사과씨,다소 괴팍한 구석이 있다.
지금 그의 논리력은 여호와의 화롯불에 녹아 내렸다.
마치 불꽃이 꺼지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모른채 신나서 자신을 불태우는 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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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씨는 흠,, 글쎄,, 뭐랄까, 자기 자신을 21세기판 루터나 칼뱅으로 여기는것 같군요.
아니오. 저는 그 분의 제자입니다.
사과씨가 말했다
네 좋습니다 사과씨.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사과씨는 자신의 메시아이자 제 2의 예수인 때x때x님의 가르침을 망설임 없이 설파한다.
정신과 의사 A.Christ 씨의 안색이 어두워진다.
그는 슬그머니 처방전에 항 정신성 약물의 이름을 무더기로 집어 넣는다.
진정제니 각성제니, 더 이상 중요치 않다.
그는 오로지 환자의 수명을 깎는데 주력할 뿐이었다.
'이 자는 해로운 자다.'
저기, Anti 박사님.
예 사과분.
약이 너무 많지 않나요?
허허, 우리 사과씨의 말 대로 곧 랩쳐가 다가온다면 약 따위 좀 많이 먹어도 어떻겠습니까.
깨달음을 얻으셨군요 안티 크리스트 박사님.
-자, 잠시 스톱!
무려 석 달이나 방에서 나오지 않아 온몸에 때가(때임 아님 ㅎ) 덕지덕지 낀 우리의 주인공 사과씨가 웬일로 정신병원에 나타났을까?
이는 그의 부모, 개중 특히 부친의 결단이었는데,
독실한 불교 집안의 독자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저 먼 오지의 절에 의탁당해 동자승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빌어먹을 절이라는 것도 고려 말 횡행했던 땡중의 그것과 같아서 그는 적잖은 고생을 했다.
산길에서 마주친 천주교 신부와 각자의 성물을 걸고 벌인 1:1 맞다이 역시 그 고난중 일부였다.
그가 이겨 은십자가 목걸이를 얻었다지 아마?
여하튼 상기한 이유 때문인지 사과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에게만큼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 주고파했다.
사과의 아버지(이하 사과부친)이 겪은 맹신의 우매함을 자신의 아들마저 답습하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뭐.
아무튼, 우리 비운의 주인공 사과씨는 속 타는 애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일베 삼매경.
자신이 믿는게 정녕 야훼인지, 아님 세 치 혀를 가진 간악한 뱀 새끼인지 분간할 능력도, 의지도 없이 하루하루 악당 A역할을 맏고있는 때모씨 특별 제조 마약에 찌들어가는 사과씨의 눈은 언제나 쾡하다.
'구원은 곧 온다. 근거는 성경'
'성경의 당위성은 차치하고, 우리 해석의 문제를,,'
응 좆까. 반드시 휴거는 일어난다.
응 아냐 병신아.
달력좀 보려무나. 시험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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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애미 소 여물로 희생된 개미친 운마 씹창년님.
소설일 뿐, 결코 특정인을 명시한 적 없음을 명심하시오.
소설 속 등장인물은 100% 가공의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