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소름끼치는 빛!
나를 스쳐간 시간들이 나를 쇠하게 한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나는 아무래도 빗나간 점(占)이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함부로 켜지는 건널목의 파란 신호등이 불안하여 한쪽 발을 절며 서둘러 건너가는 것뿐이다.
나는, 너무, 낡았다. 그리고 내 안의 숱한 그 짐승들 누가 내 귀에 대고 지겹도록 속삭인다 어이, 털 없는 짐승, 넌 너무 이상하게 살았어
그렇다 나는 쥐불처럼 내 맘속 짐승들을 데리고 저 어둠 속 쥐구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나는, 헐떡이며, 내 비상등(非常燈)을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