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석사나 박사 대신 졸업후 곧장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반도체 연구 인력을 길러내는 서울대 공대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이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올해 전기·정보공학부 석·박사 통합 과정 정원은 168명이었는데 입학생은 145명(등록률 86.3%)에 그쳤다.
반도체 호황이 본격화한 지난해에는 정원(165명)을 넘는 169명이 입학했다.
통상 반도체 업황이 좋아지면 관련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도 늘어난다. \
하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낼 올해 오히려 대학원 지원자가 줄었다.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내는데 관련 연구 인력을 길러낼 대학은 비는 ‘호황의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서울대 대학원 등록률 현황’을 보면, 올해 전기·정보공학부 석·박사 통합 과정 등록률은 86.3%였다.
미달이 된 다른 과 정원 일부를 전기·정보공학부가 넘겨받은 지난해(102.4%)보다
16.1%포인트 떨어졌다.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 과정은 2022년 등록률 65.5%, 2023년 69.3%로 정원을 못 채운 적이 있다.
다만 당시에는 IT 수요가 꺾여 반도체 재고가 쌓이는 등 불황기였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도 2022년 1292억달러에서
2023년 986억달러로 줄었다. 반도체 업황이 나빠지자 관련 대학원 인기도 함께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확산하면서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AI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2024년 한국 반도체 수출액은 1419억달러로 전년보다 43.9% 늘었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 등록률도 덩달아 2024년 91.6%로 뛰었다. 반도체 수출액이 1734억달러로 늘어난
2025년엔 등록률이 102.4%까지 올랐다.
하지만 올해는 반도체 기업이 초호황을 누리는데도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 신입생 모집에서 23명 미달이 발생했다.
올해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9월까지 3403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액의 두 배 수준이다.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는 동안 함께 높아지던 대학원 등록률이 초호황에 접어들자 오히려 꺾인 것이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반도체 기업의 파격적인 성과급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성과급 상한을 없애고 전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기로 했다.
삼성전자 노사도 지난 5월 DS 부문 사업 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특별 경영 성과급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두 회사 임직원들은 향후 수년간 1인당 수십억 원대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학생 입장에서는 대학원에 남아 공부하는 데 따른 기회 비용이 커진 셈이다.
이에 따라 박사 학위를 위해 수년을 더 공부하기보다
석사만 마치고 취업하거나 학부 졸업 후 곧바로 기업으로 향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
고교 축구·야구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프로리그에 바로 뛰어드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대 전기 정보공학부 학생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생 A씨는 “석사만 마치고 곧바로 취업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지금 입사하면 당장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데, 학위에 매달리다 채용 문이 좁아질까 불안하다”고 했다.
반도체를 연구하는 서울대 공대 교수는 “학술 연수를 온 대기업 직원들도 학기를 다 채우지 않고 회사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며
“학생들에게 연구를 더 해보라고 권하는 게 사실상 수억 원대 연봉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돼버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로 R&D(연구·개발) 인력 기반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에서 배출되는 박사급 연구 인력이 줄면 수년 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고급 R&D 인력이 연쇄적으로 부족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도체는 미세 공정과 차세대 메모리, AI 칩 등 장기간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업계에서도 인력난을 우려한다. 정부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인력은
2021년 17만7000명이었는데 2031년엔 30만40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연간 국내 반도체 산업에 공급될 인력은 5000명 수준이라고 한다.
매년 12만명 넘는 인력 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 반도체 산업 역량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